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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정신건강복지센터 인식개선 활동가, 조울증 당사자 최효진입니다. 정신질환 당사자, 혹은 당사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쓰는 이들을 인터뷰하고 글로 전합니다. ‘정글탐험’이라는 인터뷰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는 수단인 동시에, 조울증 당사자로서 세상을 탐험하고 만나는 장입니다.[기자말]
두 번째 인터뷰입니다. 인터뷰를 전문적으로 해오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삶에 궁금증을 갖고 들여다보는 일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타인의 발자취를 좇다 보니 문득, '(특정 순간에) 나는 어떤 결정과 답변을 했을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또, 타인의 삶을 묻기 이전에 제 삶에 관해서도 관심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셀프'로 진행해 봤습니다. 제게 스스로 궁금증을 갖고 문답을 해봤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이면서 정신장애인, 회복 과정에 있는 조울증 당사자. 정신질환(자) 인식개선에 관심 가진 활동가로서의 삶과 생각을 기록해 봅니다.

*인터뷰에서 '당사자'는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 '비당사자'는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이 없거나 인지하고 있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최효진 활동가
 최효진 활동가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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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광명시에 거주하고 있는 최효진이라고 합니다. 조울증(양극성 정동장애) 당사자이고, 현재는 광명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질환(자) 인식개선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인식개선 활동가'라는 이름이 색다릅니다.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말 그대로 정신질환(자)과 관련된 선입견이나 편견을 바로잡는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총 5명의 인원이 팟캐스트, 언론기고팀으로 나뉘어 오디오/텍스트로 된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고 있으며 저는 언론기고팀에 속해 지금과 같이 인터뷰를 통해 정신질환과 관련된 정보, 당사자/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 효진님이 생각하는 '인식개선'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인식개선과 관련된 활동이 퀴즈, 피케팅, 문화행사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인식개선의 골자는 '당사자의 삶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경험해보지 않은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씨가 했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나은 거야.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한 거란다'. 

사회에는 정신질환(자)과 관련된 선입견, 편견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분이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졌지만,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약이나 치료의 효과에 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결국 정신질환이라는 이름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정신질환을 숨기거나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분들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대인관계가 끊기거나, 취업 과정에서 불이익을 겪으시는 분도 있으니 당연히 겁이 나고 두려울 거라 생각이 돼요. 저도 겪어온 과정이니까요.

하지만, 저와 같은 활동가들이 먼저 삶의 경험을 드러내어 당사자들의 삶이, 비당사자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리고 이렇게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 살면서 정신질환과 관련된 '잘못된 인식'을 느껴보신 게 있다면?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사건·사고에 '정신질환자'라는 용어가 가미될 때, 혐오가 극대화되는 장면들을 종종 봤습니다. 부정적인 댓글과 반응들이 가득했고, 일부 범죄자로 인해 '정신질환 당사자=범죄자'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실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전체 범죄의 0.6%, 강력범죄 중 2%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이게 낙인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최효진 활동가
 최효진 활동가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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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듣다 보니 효진님의 인생도 궁금해집니다. 당사자로서의 삶을 조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고등학생 시절 처음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대중가요를 좋아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몇몇 친구들과 '조화와 개성'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을 즐기고, 학교 행사에서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보람도 느끼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쯤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 중 한 명이 저에게 '5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저는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2학기 수업료로 부모님께 받은 돈 중 일부를 친구에게 줬죠. 

그런데 시간이 다가오고, 수업료를 내야 할 때가 됐는데도 친구는 돈을 갚지 않았어요. 당시 금액으로 정말 큰돈이었기에 부모님께도 선뜻 말하지 못했고, 마음이 복잡해 계속 잠을 설치고 불면과 우울감이 찾아왔죠. 그땐, 그게 우울증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나중에야 알았죠.

제가 그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거나 밴드 활동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예 다른 학교로 진학했다면 내가 좀 나았을까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계속 곱씹으며 정신과적 어려움이 커졌어요.

어느 순간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어머니가 저를 발견해 병원에 입원했고, 약 두 달간 치료받고 퇴원했지만 학교는 저에게 더 이상 마음 닿는 곳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학교를 자퇴하고 손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또래보다 일찍 돈을 벌고, 한참 뒤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었습니다."

- 어린 나이에 정신질환을 경험해 많이 혼란했을 듯합니다. 그런데 향후에, 다시 밴드를 결성하셨다고요.

"정신질환을 경험한 후, 과거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검정고시를 본 것도 그런 이유였고, 대학 입학도 여러 번 도전했었어요. 잘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워 공무원 시험, 노무사 시험도 준비한 적이 있네요. 물론 뜻대로는 잘 안됐지만요. 

숱한 실패의 경험 속에 우울증은 조울증으로 바뀌었고, 알코올 중독성 조증까지 경험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제 마음 한편에 음악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강하게 남아있던 것 같아요.

입·퇴원을 반복한 제 20~30대에, 음악은 하나의 희망이었고 제 꿈이었습니다. 기타연주가 일상의 낙이었고, 2018년에는 '푸른창공'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대중 앞에서 공연도 하고 자작곡도 냈어요(1집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2집 '그대의 미소').

음악을 통해 정말 큰 치유를 받았어요. 경제적으로는 곤궁했지만, 음악을 통해 세상 앞에 저를 내보일 수 있었고 지금 인식개선 활동가라는 일을 하기까지 저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음악은 기회가 되면 한 번 들어보세요(웃음)."
 
최효진 활동가
 최효진 활동가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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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신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예요. 치료와 회복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어린 날 저로 인해 고생한 가족, 지인들에게 조금씩 보답하며 살고 싶습니다. 특히 저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으신 어머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라는 제 노래 제목처럼, 정신질환을 경험한 당사자, 동료들을 위해 힘쓰고 싶어요. 지금까지 도움을 받기만 해왔는데, 이제는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고 또 미미하지만, 희망의 아이콘처럼 남고 싶습니다."

- 이 인터뷰가 많은 분들께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한 시인의 글이 생각납니다. 정신질환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일상에서 앗아가기도 합니다. 꾸준히 약을 먹고, 주기에 맞춰 병원에 가야 하는 것조차도 일상에 많은 제약처럼 느껴지죠.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봄은 옵니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어린 학생이었지만 검정고시에 합격해 졸업장을 얻었고, 포기했던 음악을 다시금 도전하며 제 목표를 이뤘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또한 꾸준한 치료와 치유 경험을 통해 일하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죠.

정신질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언젠가 이파리를 틔우리라 생각합니다. 정신질환 당사자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정신질환이 주홍글씨가 되지 않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제 일상을 나눕니다."

태그:#최효진, #정글탐험, #광명시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질환, #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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