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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여름이었다. 한창 '노재팬' 운동이 일어나 일본 물건이라면 쳐다보지도 않던 시절. 돌쟁이 엄마들 사이에서 국민템이라고 불리는 매쉬 바디슈트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일본의 유명 의류 브랜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의 '노재팬' 운동을 기억한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이 꽤 있었는지 다행히 대체제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배가 넘는 가격을 주고 대체제를 구매했으나 질이 너무 별로였다. '그냥 일본 제품 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곧바로 온라인 스토어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사지 않으니 재고가 넘쳐났다. 게다가 세일까지 했다.

하지만 선뜻 구매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하고 마음이 걸렸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를 며칠. 결정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아니, 5천 원짜리 바디슈트 몇 장을 사는데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러던 차에 지인에게 여름옷 한 뭉터기를 물려받았다. 그 안에 마침 그 바디슈트가 있는 게 아닌가. 여기저기 토한 자국이 있었지만 전혀 상관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땀띠 없이 여름을 났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일본 불매 운동이 있었지만 2019년 시작된 '노재팬' 운동처럼 강렬한 적이 있었나 싶다. 시작은 일본의 수출 규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반발해 한국 제품 수출규제에 나섰다. 그러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여행도 가지 말자는 운동을 벌였다. 바로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로 유명한 '노재팬' 운동이다.

인터넷 상에서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은 각종 일본 기업 목록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당시의 분위는 마치 온 국민이 독립운동을 하는 듯 결의에 찼다. 열기가 너무 뜨겁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일본 제품을 구매하거나 일본에 여행 간 사람들은 매국노로 낙인찍혔다. 사람들은 일본의 유명 의류매장에 들어가는 이들을 보고 수군댔다. 누가 편의점에서 무심코 일본 맥주라도 집어 들면 눈총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SNS에 일본 여행 사진을 올린 몇몇 연예인들은 뭇매를 맞았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자 일본 브랜드 자동차를 몰던 지인은 도로에서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회 문제도 생겼다. 일본 기업과 관련되어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수수 해고되었다. 일본 제품 매장들이 한국에서 줄줄이 철수했다. 당시 내가 살던 지역에선 갓 오픈을 한 일본 의류 매장 사장님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이쯤 되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들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게 왜 일본 제품 매장을 열었냐"부터 "왜 죽고 난리냐"까지. 비난하기 바빴다.

예스 재팬의 시대
 
한정 출시된 일본산 맥주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가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는 9일 서울의 한 편의점 앞에 재고 없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올해 1분기 일본 맥주 수입액은 1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커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정 출시된 일본산 맥주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가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는 9일 서울의 한 편의점 앞에 재고 없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올해 1분기 일본 맥주 수입액은 1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커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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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사히 맥주가 열풍이다. 일본에서 2021년 처음 선보인 이 제품은 출시 당시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노재팬' 열풍으로 미출시되었는데 최근에 출시와 동시에 품절 사태가 일어났다. 캔 전체를 열 수 있는 방식 때문에 생맥주 느낌이 난다고 하는데, 아무튼 여기저기서 구할 수 없어 난리다.

나는 누군가 맘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인기라는 걸 알았다. 글쓴이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핫' 하다길래 편의점에서 사 왔다고 했다. 머지않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묻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며칠 뒤 눈길을 끄는 글이 하나 더 올라왔다. 노재팬은 끝난 것인지 묻는 글이었다. 글쓴이는 요즘 맥주 품절 사태를 보면서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본인은 묵묵히 노재팬을 실천 중이라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 물었다. 그 글에도 역시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맘카페에 올라온 두 글 중 한쪽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뭐라고 할 권리가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요즘에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다른 편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언제인지. 

일본 영화를 즐길 수 있고, 일본 여행을 갈 수 있다. 일본 맥주 한번 사서 먹었다고 개념이 없다거나, 매국노처럼 취급하는 분위기가 어쩌면 우리가 진짜 맞서서 싸워야 할 대상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결정을 존중하되, 어떤 방향성이 더 나은지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기억할 것을 기억하면 된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에 관심을 가지면 된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와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과 같이 당장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부터,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무수히 많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노재팬, #아사히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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