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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발의로 어렵게 제정된 충남 인권 기본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인권조례가 만들어온 변화와 성과, 한계를 살핀다. 나아가 다양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모아 인권조례가 지자체 행정과 시민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기자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이 2022년 8월 18일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윤석열 농업정책 규탄, CPTPP 가입 중단,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하는 농민기본법 제정을 위한 경남여성농민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이 2022년 8월 18일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윤석열 농업정책 규탄, CPTPP 가입 중단,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하는 농민기본법 제정을 위한 경남여성농민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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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 "어이~" 옆집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르는 말이다. '누구 엄마', '뉘집 며느리', '누구 각시'... 동네사람들이 옆집 언니를 부르는 말이다. 시집 와 평생 농사짓고 살면서 자기 이름조차 없이 산다.

새벽부터 들에 나가 몸이 부서저라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남편 손에는 리모컨이, 여성농민 손에는 주걱이 쥐어져 있다. 같이 일했는데 농산물 판매는 남편 이름으로 한다. 남편 통장에 돈이 들어오니 자존심 상하지만 눈치 보며 돈을 타서 쓰는 여성농민들이 많다. 가끔 상품은 남편 이름으로 내고 하품은 여성농민 이름으로 내면서 무척 선심쓰는 듯 생색을 낸다.

농업 인구의 52.5%, 농업노동의 절반 이상을 여성농민들이 차지하고 있다. 밭농사와 노동집약적인 하우스 농사는 여성농민의 단순·반복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과도한 농업노동으로 인해 50대만 돼도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할 만큼 여성농민의 건강상태가 심각하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농산물 값이 좋으면 물가 인상의 주범이 돼 바로 농산물을 수입하고 폭락에는 정부도 지자체도 나몰라라 한다. 농업소득으로 생활이 안되니 여성농민들은 요양보호사, 방과후 교사, 급식조리원 등 겸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4대보험에 가입된다는 이유로 공동경영주로 등록을 못하거나 행복바우처 같은 여성농민 복지제도에서 배제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농민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283분이고 남성은 37분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100으로 했을 때 남성은 13에 그치고 있어 성별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

육아 역시 농촌의 대부분이 장거리 통학으로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통학의 대부분을 여성농민이 담당하고 있으며, 공공교육의 빈자리를 여성농민이 채우고 있다. 가정 내에서 뿐일까? 여성농민의 가족 내 노동은 마을로, 지역사회로 확장돼 지역공동체 유지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마을에서 행정이 미치지 않는 어르신 돌봄노동 또한 여성농민들의 몫이다. 여성농민은 정말이지 '초특급 울트라 슈퍼우먼'이 될 것을 강요받고 있다.

여성농민에게도 권리가 있다

그러나 다양한 역할만큼 지위와 권리가 보장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자기 명의의 재산을 소유하거나 농산물 판매수입 통장을 가진 여성농민은 소수이며 여성농민의 법적 지위 보장을 위해 도입된 공동경영주 제도는 서류상의 공동경영주 수준에 머물고 있다.

농업정책이 주로 농가(세대)단위로 이뤄지고 세대를 대표하는 것은 주로 남성농민이기에 정책대상에서 배제됨은 물론 마을총회 등 주요 의사결정에서조차 1가구 1표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여성농민의 목소리가 담겨지기 어렵다. 가정은 물론이고 농촌 지역사회에서 여성농민들이 돌봄노동, 재생산 노동을 전담하지만 대부분이 무급의 봉사활동으로 여성농민들의 노동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여성농민이 없다면 농업·농촌이 유지될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그 평가와 지위 인정에는 매우 인색하다. 역할은 넘치나 사회적·경제적·법적 지위는 낮은 그림자 같은 존재가 바로 여성농민의 현실이다. 

귀농·귀촌한 청년여성들이 '농촌에 들어오는 순간 20년전 세상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농촌사회는 도시에 비해 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다. 심지어 혈연,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쳐 폐쇄적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성희롱과 여성 비하, 사생활 침해,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고 해결도 어렵다. 이러니 이주여성농민, 이주여성농업노동자의 인권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충남에는 충남도민인권선언이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충남 인권기본조례가 있다. 충남인권조례는 충남도민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지켜져야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결코 폐지돼서는 안 된다. 또 2018년에는 UN에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이 채택되기도 했다.

1. 국가는 여성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근절하고, 남녀평등의 원칙에 근거해 그들이 모든 종류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며, 농촌의 경제·사회·정치· 문화적 발전을 자유롭게 추구하고 참여하며 이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목적에서 그들의 권한을 신장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2. 국가는 여성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음의 권리를 포함해 본 선언과 기타 국제 인권법에 명시된 모든 종류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차별받지 않고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 유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선언' 제4조


정부와 충청남도는 충남인권조례를 지키는 것은 물론 유엔 농민권리선언의 기준을 이행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2020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에서 실시한 성평등 실태조사 의하면 딸에게 농사일을 물려주고 싶냐는 질문에 90% 이상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만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며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의 이행으로, 충남도민선언의 이행으로 편견과 차별이 없는 농촌, 평등한 농촌, 여성이 살고 싶고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촌을 만들어 나가자.
 
정의로운전환을 위한 인권활동가와 농민의 간담회 중 발언하고 있는 모습.
▲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유화영(여성농민) 정의로운전환을 위한 인권활동가와 농민의 간담회 중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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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 논산시 여성농민회 부회장입니다.


태그:#충남인권조례, #농민권리선언, #여성농민, #충청남도, #전여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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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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