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후정의 활동가 이상현씨의 포스코 기후재판 벌금 불복종 노역 입소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씨는 2021년 10월 포스코 국제회의장에서 녹색당 활동가들과 함께 포스코를 비롯한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연설을 하여 벌금 약식명령을 청구받은 뒤 이에 불복하여 기후재판에 돌입하였다.

지난 1월 11일 진행된 포스코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초 300만원이었던 검사의 구형과 비교하면 상당액이 감액되었지만, 150만 원의 유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결국 포스코의 기후위기 책임을 고발한 직접행동에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기에 이씨는 해당 판결에 불복하여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4월 18일~5월 2일 15일간 노역을 사는 것을 택하였다. 앞으로 그 고난한 과정을 연재하고자 한다. 다음은 이상현씨가 기자회견에서 낭독한 입장문이다. - 기자 말

 
4월 1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후정의 활동가 이상현씨의 포스코 기후재판 벌금 불복종 노역 입소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4월 1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후정의 활동가 이상현씨의 포스코 기후재판 벌금 불복종 노역 입소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 포스코 기후재판 시민불복종 연대모임

관련사진보기

 
차마 잊기 힘든 기억들이 있습니다. 농민학생연대활동을 갔을 때입니다. 수확시기가 조금 늦어 속이 못나게 자란 배추를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자란 그 밭에서 바로 칼로 조각조각 내던 광경을 보았습니다. 정성껏 키웠을 밭 한가득 배추가 산산히 부서져가는 충격적인 광경과 함께 농민의 그림자 드리운 참담한 얼굴을 보았을 때 저는 세상이 뭔가 기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4대강 사업이 대구의 제 고향 마을을 덮치자 동네 유원지 한 켠에서 평생 식당을 해오던 친구네가 뿌리뽑혔습니다. 새해면 친구네 뒷동산에 올라 뜨는 해를 보곤 했던 저의 연례행사도 송두리째 뿌리뽑혔습니다. 포크레인이 깊숙히 파헤치던 강이 떠오릅니다. 이 땅의 척추를 부수는 것 같았습니다. 생명의 터전이었던 강물로 젖은 흙은 그 속의 생명들과 함께 뜨거운 태양볕에 내동댕이쳐져 말라 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억의 장소를 박탈당함과 동시에 생존을 위협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밀양에서 송전탑과, 땅을 강제수용하는 국가와 맞서는 할머니들의 굽은 허리, 주름진 손, 그럼에도 강인한 풀뿌리의 저항…. 삼척에서 핵클러스터와 싸우던 농민들…

저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은 뿌리뽑히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돈과 권력이, 생명들을 있는 그 장소에서 쫓아내지 못하도록 함께 버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인 생태환경을 함부로 훼손하고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과 생명들을 뿌리뽑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기업과 산업계 대응이 필요했습니다. 생명보다 이윤 중심 사회의 중심축을 겨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래된 기후재난의 시대, 이윤을 위해 탄소를 끊임없이 내뿜고,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방치하며, 미얀마에서 가스전 사업을 벌이고 군함을 팔며 군부 쿠데타와 시민학살에 일조하는 포스코를 시민들은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포스코는 침묵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포스코 규제가 '기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관련 법안 제정을 막아섰습니다. 국회 역시 미온적이었고 아무것도 바뀌는 것 없이 온실가스 배출과 생태, 시민 학살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행동에 나섰습니다. '누가 유죄인가' 녹색당 기후재판에서 우리가 물었던 질문입니다. 기후위기를 심화하고 생태를 파괴하는 행위를 행하거나 방치하거나 독려하는 기업, 정부가 유죄인지,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은 기후활동가들이 유죄인지 우리는 따져 물었습니다.

재판 결과, 녹색당 기후재판 당사자들은 재판부에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받았지만 '직접행동'이라는 수단의 정당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지워진 혐의는 '폭력'입니다. 그에 대해 다시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폭력입니까. 벌금으로 직접행동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것이 바로 폭력이 아닌가요.

기후부정의, 생태학살을 고발한 직접행동에 몇 백만원의 벌금을 선고한다면, 그 이유인 파괴행위에는 대체 얼마의 벌금이 선고되어야 합니까. '낮은 곳'에 사는 이들이 기후재난에 목숨을 잃도록 방치한 이 사회 시스템에는 또 얼마의 죄를 물어야 합니까.

거대한 폭력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최저임금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절규하며 0.3평 좁은 철창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 이들에게 사측은 470억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바로 오늘도 대량해고를 통보받은 서울시 신용보증재단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지금,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베트남 붕앙의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을 막기 위해 맨몸으로 직접행동을 펼친 활동가들이 검찰로부터 고액의 벌금을 구형받고 기후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질문하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유죄이며, 무엇이 폭력인지 이 재판들에서 살펴 가려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법과 제도가 대체 무엇을 보호하고 누구를 방치하는지, 무엇이 폭력인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일상을 멈추고 함께 물었으면 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 멈추자"는 414기후정의파업의 '파업' 기획을 마주했을 때 저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산업, 기계의 속도로 돌아가는 이 사회의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자율성을 빼앗기고 억압받아왔던 사람들의 삶이 해방되기를 바랐습니다. 세상을 뒤흔들기를 기대하며 모인 사람들을 보니 벅찼습니다.

이제 광장의 일원에서 한 명의 활동가로 돌아와 저의 일상을 온전히 마주합니다. 그리고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침해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멈추자고 제안하는 것이 일상이던 활동가의 일상을 잠시 멈춥니다. 이것이 제가 함께살기 위해 멈추는 방법입니다.

비록 저의 몸은 갇히지만 기후부정의를 고발하는 동료 시민들이 더욱 시끄럽게 활약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유죄와 무죄를 뒤바꾸기 위해, 아직 법정에 선 적 없는 기후위기의 진짜 범죄자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더 크게 목소리 내고 행동할 것입니다. 더 많이, 넓고 깊게 함께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태그:#녹색당, #정치, #기후재판, #시민불복종, #이상현
댓글

‘기후재판 시민불복종 연대모임’(이하 연대모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