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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꽃 피는 시기가 보름 정도 빨랐다고 한다. 그동안은 복수초와 매화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면 산수유, 목련, 진달래, 개나리, 벚꽃, 철쭉이 그 뒤를 잇고 마지막으로 살구꽃, 복사꽃, 배꽃이 지면 여름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순서가 무너지고 그렇게 많던 나비와 벌이 보이지 않는다. 지천으로 핀 꽃에 눈이 황홀하고 즐겁지만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어 마음 무겁다.

가뭄으로 메마르고 푸석이던 학교 화단도 며칠 전 내린 비로 숨통이 트였는지 촉촉하게 생기가 돌아 새순을 밀어 올린다. 흙이 있는 곳 어디든 가녀린 새싹이 얼굴을 내밀었다. 갈색 빈 가지만 앙상하던 나무에도 어느새 연두색 어린 잎이 하나둘 자리를 채운다. 겨우내 꿈쩍도 하지 않던 덩치 큰 나무에도 삐죽삐죽 돋은 여린 새순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린다.

날마다 점심 먹고 학교 한 바퀴 돌며 화단 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매화꽃과 수선화를 선두로 명자나무, 히아신스, 동백꽃, 튤립이 쌀쌀한 날씨에도 꽃봉오리를 내밀더니 어느새 꽃잎을 활짝 터뜨렸다. 봉긋 오른 철쭉도 터지기 직전이다. 하루하루 몰라보게 변하는 화단에서 활기가 넘치는 교실 만큼이나 생기를 느낀다. 봄은 살아있는 모두를 설레게 한다.
 
봄을 맞아 화단에 꽃을 심는 아이들
▲ 꽃 심는 아이들 봄을 맞아 화단에 꽃을 심는 아이들
ⓒ 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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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봄을 맞아 화단에 꽃심기를 한다고 했다. 특히 정문이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보성여관과 나란히 붙어 있어, 학교 앞 태백산맥 문학 거리를 오가는 관광객이 자주 드나든다. 진입로 양쪽 화단에 오래된 마거릿이 잡풀처럼 아무렇게나 흩어져 눈꼴 사나웠다.

지저분한 풀을 없애고 흙을 골라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잘 번져 사방을 자기 식구로 채우는 마거릿을 양쪽에 그대로 둔 채 가운데로만 꾸민다고 했다. 그랬다간 2~3년 후엔 학생들이 애쓰고 심은 꽃이 결국 죽게 되니 마거릿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전체를 꽃잔디로 채우자고 제안했다.

4월 3일, 마을 단체에서 66제곱미터를 기증받아 5, 6학년 학생 120명이 각각 두세 포트씩 심어 화단이 풍성해졌다. 아이들은 조그마한 모종을 꺼내는 것부터 어려워했다. 혹시 잘못해 어린 싹이 다칠까 봐 양손으로 소중하게 감싸 정해진 자리에 놓고 손으로 꾹꾹 눌렀다.

대부분 교사나 학생은 지금까지 분 갈이 한 번 안 해보고 흙을 만져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서툰 손길이지만 사랑과 정성까지 듬뿍 담았을 것이다. 뿌리를 내리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이들의 온기를 느꼈다면 분명 화사한 분홍 꽃을 활짝 피울 것이라 믿는다.

모두가 감탄할 멋진 화단을 상상하며 일을 마쳤다. 두 식물 모두를 살리고자 했던 일이었지만, 어쩌면 마거릿에게는 폭력이었을지 모르겠다. 자료를 찾아보니 의외로 식물도 인간과 똑같이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 과학자가 많았다.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는 〈식물의 은밀한 감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지만, 지구 생물의 99%는 식물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 생태계는 식물이 떠받치고 있으며, 동물은 식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반면 식물은 동물이 없으면 더 무성하게 번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구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식물인간'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식물이 수동적이고 무능력하며 감각 능력과 운동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오해하지만 놀랄 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식물이 가지는 대사 능력이 대단히 복잡하고 창의적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예로, 사막의 선인장이 물기가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잎 모양을 가시로 바꾸고, 비가 내리면 물이 땅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빨아들이려 뿌리를 아래로 내리지 않고 옆으로 뻗는 것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 물이 적은 환경에 적응해 구조를 바꾸는 이런 행동은 지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돌아가신 친정엄마는 꽃과 식물을 좋아했다. 어디서든 말을 걸었고, 죽어가는 것은 살리려고 애썼다. 그럴 때마다 "그것들이 뭣을 안다고 그러냐!"고 말하면 "네가 한 말 다 듣는다"며 나무랐다. 사람과 똑같이 대했다.

엄마의 그런 행동이 과학자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식물을 키우고서야 알았다. 그것을 믿기에 내가 키우는 나무나 꽃에게도 매번 엄마처럼 말을 걸며 감정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순천


끝없이 이어지는 순천 동천 벚꽃 길
▲ 절정에 이른 동천 벚꽃 순천 끝없이 이어지는 순천 동천 벚꽃 길
ⓒ 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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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눈부시게 장식했던 벚꽃이 드디어 꽃비를 내리며 졌다. 잠깐이나마 위로받고 행복했다면 꽃으로서 할 일은 다 했다. 한철 꽃을 피우려고 늦여름부터 겨울 내내 준비했을 터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며 당연한 일이라 여긴다.

또 시기를 착각해 꽃피우도록 환경을 만들었다. 이런 이기적인 폭력이 무너뜨린 자연 질서의 피해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식물은 제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태그:#식물, #감정,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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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수석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사연을 기사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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