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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성평등디딤돌상을 수상한 청년문화기획단체 면밀의 이단비, 조수현씨.
 3.8성평등디딤돌상을 수상한 청년문화기획단체 면밀의 이단비, 조수현씨.
ⓒ 청년문화기획단체 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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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는 '광주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문화기획단체 '면밀'이 있다. 지난 2019년 프로젝트팀으로 출발한 면밀은 "거듭된 고민의 끝에는 늘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다"며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우리가 그 시대에 다가가 5월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활동해 왔다.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해 전시회를 열고, 각종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8일 면밀이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3.8세계여성의날 기념 광주·전남 여성대회에서 3.8성평등디딤돌상을 수상했다. 면밀은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전시회를 열어 성평등 문화 확산의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9일, 청년문화기획단체 면밀의 이단비, 조수현씨를 인터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5.18, 직접 겪진 않았지만... 당사자들의 소중한 이야기 담고 싶었다"

- 면밀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단비 : "저희는 2019년에 프로젝트팀으로 출발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는 활동을 해보기 위해 팀을 만들었어요. 저희의 첫 프로젝트는 광주의 극작품 아카이브였어요. 그런데, 자료를 모아 보니 대부분의 작품에 '5.18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걸 발견하게 됐어요. 5.18을 주제로 한 작품이 아님에도 80분 공연 중 5분 정도는 꼭 5.18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5.18과 관련된 극작품을 아카이브하기로 하고 2019년에 자료집을 발간했어요. 이후 저희는 프로젝트팀을 넘어 정식 단체로써 활동을 이어가기로 하고 청년문화기획단체 면밀을 만들었어요. '면밀'은 무언가를 상세히 살펴보다는 뜻의 면밀이에요.

저희가 2019년에 극작품 아카이브를 해보니까, 자료가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 당사자분들이라 그런지 정말 소중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후에는 아예 인터뷰집을 만들어 보기로 하고 <오월극 기록기>라는 인터뷰집을 냈어요. 저희는 사람들이, 직접 겪지 못한 현장의 이야기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는 거 같아요."

- 면밀에게 '5.18'이라는 주제는 어떤 의미를 갖나요?

조수현 : "처음에는 5.18이라는 소재가 너무 무거워서 겁이 났어요. 그런데 5.18을 다룬 극작품에 참여한 실연자(연극 작품에 배우, 연출, 감독 등으로 참여한 사람)분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듣기도 했지만 그분들이 5.18을 대하는 태도에서 많은 걸 배운 거 같아요. 이게 무거운 소재라고 해서 두려워 할 필요는 없겠구나, 따뜻한 이야기들을 잘 전파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5.18을 다룬 과거의 극작품들이 항쟁이나 투쟁, 마지막 싸움과 같은 걸 주로 알렸다면 최근에 나온 작품들은 5.18 당시 시민들이 음식을 나눴던 따뜻했던 기억 또한 드러내고자 하는 거 같아요. 저희 면밀은 '5.18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는가'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찾았어요."
 
면밀이 지난 2019년에 만든 5.18 극작품 아카이브 자료집 표지.
 면밀이 지난 2019년에 만든 5.18 극작품 아카이브 자료집 표지.
ⓒ 청년문화기획단체 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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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속아서 일 시작한 여성 노동자들... 불행? 당사자들의 기억은 달랐다"

- 전남방직, 일신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일대기를 기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수현 : "저는 지난 2021년부터 전남방직 기숙사로 사용됐던 그린요양병원에 들어갈 기회를 몇 차례 얻었어요. 이때부터 전남방직 기숙사였던 그 공간에 대한 사진을 촬영하며 아카이브 작업을 했어요. 이를 토대로 2021년에 전시회를 열었어요. 작년에는 면밀의 작업은 아니지만, '잘 진 싸움과 지지 않을 싸움을 위하여'라는 전시에 참여작가로 함께했어요.

이 사업은 1989년 전남방직 노동항쟁을 다룬 희곡 <딸들아 일어나라>에서 시작됐는데, 연극 관련 참여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참여했어요. 1989년 전남방직 노동항쟁은 부당해고자 복직,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여공들이 전개한 활동이에요. 저는 1989년 전남방직 노동항쟁을 주제로 한 노동극 실연자분들을 뵙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딸들아 일어나라>는 5.18 당시 들불야학 활동을 했던 박효선 극작가의 작품이에요.

최근에는 단비씨와 함께 극단 푸른연극마을에서 연극 <안부>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 작품은 로케트전기 여성 노동자들이 1979년에서 1980년 사이에 진행한 노동항쟁과 5.18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 직접 들으신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어땠나요?

조수현 : "전남방직 기숙사에 자주 방문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게 됐어요. 이때부터 그들의 삶이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두 공장은 대단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도 상당히 다양해요. 두 공장은 원래 하나였어요. 일제강점기 당시 가네가후치 방적(일본 기업)으로 운영될 당시에는 속아서 일하게 된 분들이 많았어요. '돈벌 수 있다'는 말에 속은 여성 노동자들을 집에 못가게 하고, 부모님이 찾으러 와도 보내주지 않는 식으로 강제징용했어요.

해방 후 가네가후치 방적은 전남방직이 돼요. 이때부터 생활비나 형제들의 공부를 위해 일하는 소녀가장 형태의 여공들이 많이 일하게 됐어요. 1960년대 이후에는 전남방직이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으로 분리돼요. 하지만 이후에도 두 곳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두 곳을 분리해서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저는 처음에는 두 곳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기억이, 단순히 좋지 않은 기억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980년대에 일신방직에서 일했던 한 어른이 '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당시 광주의 여성이 취업할 수 있는 유일한 공장이었고, 내가 영리해서 공장 안에서도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걸 듣고 세대별 노동자들의 인식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어요."

- 광주의 '성평등', 어디까지 왔을까요?

이단비 : "면밀 역시 여성들이 만든 단체이기 때문에 활동하면서 젠더 영역에서 불편한 지점들을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저는 성격이 무딘 편이라 순간적으로 불편하네,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잘 잊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에 남은 기억들이 있어요. 여러모로 개선된 것들도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난 2017년부터 (광주에서) 작품 활동을 했어요. 당시를 돌이켜보면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야만 했던 불편한 시선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묘한 시선이 있어요. 저는 공적 영역에서 만나는 분들을 '작업자 대 작업자'로 만나고 싶어요. 어린 여성으로서 만나고 싶지 않아요."

조수현 : "광주는 '민주주의의 도시'라고 불려요. 하지만 이 말을 들을 때의 제 마음은 공허했어요. 광주가 그렇다는데, 광주의 민주주의에는 '5.18'밖에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광주의 민주주의는 5.18만을 위한 걸까요? 그런데, 1960년대와 1970년대 광주의 노동운동과 노동극을 조사하면서 무언가 해소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 이번에 3.8성평등디딤돌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이단비 : "그동안 함께 작업한 분들과 같이 받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에게는 의미가 큰 상인만큼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위해 노력해 나가고 싶어요. 저는 광주에 훌륭한 여성 작업자분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다음에는 그분들과 함께 무언가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수현 : "상을 주신다고 하니 굉장히 쑥스럽더라고요. 그동안 저희는 직접적으로 성평등을 이뤄야 한다고 외치는 식으로 작업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저희의 작업에 분명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상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 볼게요."

태그:#청년문화기획단체 면밀, #3.8여성의날, #성평등디딤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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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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