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대화 "영화 작업을 하는 내내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가? 묻게 되더군요."

▲ 감독과의 대화 "영화 작업을 하는 내내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가? 묻게 되더군요." ⓒ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 모임 <봄>

 
지난 3월 6일 저녁, 부산 '영화의 전당' 소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었다. '학교란 무엇인가.' 아주 오래된 내 마음의 물음 중 하나다. 
 
학교란 무엇인가.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에버레트 라이머의 <학교는 죽었다>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2년이었다. 학교는 왜 죽었는가. 그것은 학교가 국가나 자본이 구축한 기존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공장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붕괴'가 떠들썩하게 사회적 논란이 된 것은 1999년이었다. 그것은 '학교의 죽음'을, 죽은 학교에 참다못한 학생들의 어떤 저항을 동시에 의미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거기에 부응하지 못해 온 학교 체재는 붕괴되어 마땅한 것이었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예비하기도 하는 법이기에.
 
그로부터도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오늘의 우리나라 학교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회색의 학교? 생각하면 조금 무서워진다.  

장편 다큐 <차별>(감독 김도희, 김지운, 2023)은 국내 최초로 재일동포들의 조선학교를 다룬 <우리학교>(감독 김명준, 2006)와 직통으로 이어진 영화다. 일본정부가 외국인 학교로는 유일하게 고교무상화 제도(2010)에서 배제시킨 조선고급학교를 둘러싸고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의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이 벌여나간, 결국엔 대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패배로 끝난 소송 투쟁의 3년 역사(2017~2019)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조선학교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투쟁의 역사를 뜨거운 마음과 서늘한 눈초리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학교의 혹은 울부짖는, 혹은 환하게 웃는 학생들 앞에
 
영화에는 두 개의 상반된 얼굴들을 번갈아 등장한다.  

하나는 일본 법원 정문 앞에서 '부당판결'- 패소 소식을 확인할 때마다 실망하고, 분노하고, 울부짖는 조선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변호사들의 얼굴이다(이 얼굴들은 묻고 있었다. 차별과 배제를 통해 제국의 야욕을 노골화하는 일본 정부, 너는 누구냐고. 재일 '동포'를, 내내 외면해 온 한국의 정부들, 너는 또한 누구냐고-기자주).
 
다른 하나는 '우리학교-조선학교'의 교실과 운동장에서 공부하고 달리고 춤추고 노래하는 유치반, 초급, 중급, 고급 그리고 대학교 학생들의 당당하고, 빛나고 야무지고 씩씩한 얼굴이다(누군가 조선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저 아름다운 얼굴들을 보라고 말해야 하리라. 저보다 더 명백한 존재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고-기자주).
 
 일본 극우단체의 회원들은 조선학교 학생들의 교복인 한복 치마저고리를 거리에서 찢는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 극우단체의 회원들은 조선학교 학생들의 교복인 한복 치마저고리를 거리에서 찢는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봄>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왜 굳이 힘겨운 조선학교냐고. 일본에 살면 그냥 편히 일본학교에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민족의식 같은 건 세계가 하나라는 글로벌시대에 어울리지 않지 않느냐고. 
 
일견 멀쩡해 보이는 이런 말은 유독 재일동포만을 겨냥한 일본 정부의 차별 정책과 일본 극우단체의 증대하는 조선인 대상 폭력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산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재일조선인 학생들이 일본학교에서도 '우리학교-조선학교'에서처럼 차별로부터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문제될 게 뭐가 있을까. 그러나 일본정부는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무려 70년간을 수단과 방법을 다해 조선학교 죽이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 왔다. 이는 재일조선인이 단 한 순간도 조선학교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도 함께 웅변해 주지만 생각하면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조선학교인가에 대한 대답은 
 
"지켜내자, 조선학교" 시사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영화관 안 피켓팅

▲ "지켜내자, 조선학교" 시사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영화관 안 피켓팅 ⓒ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봄>

 
조선학교를 지키는 일은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차별에 굴하지 않고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이며 인간다운 삶을 향한 공동분투의 길인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 시간.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 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두 감독(김도희, 김지운)은 공통적으로 이 말을 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 부끄러움은, 일본정부를 향한 분노 이전에 조선학교를 지키는데 우리는, 우리 정부는 여태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 앞에서 생긴 것이다. '미안함'은 누구를 향한 미안함인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다큐 <차별>을 만든 두 감독은 '조선학교와함께하는시민모임 봄'(상임대표 이용학)의 창립 멥버이자 핵심활동가다. 김지운씨는 총괄사업단장, 김도희씨는 미디어사업단장이라는 사실도 여기에 밝혀두자. <차별>은 두 감독의 운명과도 같은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조선학교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대목이다. 

'지혜있는 자는 지혜를, 돈이 있는 자는 돈을, 힘이 있는 자는 힘을! ' 

전후의 폐허 속에서 재일조선인들이 오직 피와 땀과 눈물로 조선학교를 세우고 지켜나갈 때 외친 구호다. 나는 여기에 하나만 더 보태고 싶다. 

영화를 좋아하고, 유형무형의 차별에 반대하고, 조선학교 학생들을 잊을 수 없는 우리 남녘의 사람은 손에 손잡고 <차별> 관람을! '분노'와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넘어서 말이다! 

<차별> 상연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서울 언론, VIP 시사회 (3월 9일 오후 6:30: 건대입구 롯데시네마)
2. 전국 동시 개봉 (3월 22일) 
덧붙이는 글 인터넷 신문 인저리 타임에 보낼 작정입니다.
조선학교 일본 제국주의 고교무상화 재일조선인 시민모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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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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