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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과제 부연 설명에 그친 권고문

주지하다시피 고용노동부 훈령으로 설치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아래 연구회)가 지난해 12월 12일 권고문을 발표했다. 노동시간과 임금 체계에 관련된 것인데, 주요하게는 연장 근로시간 산정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등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노동시간 유연화 방안과 임금 체계를 개편해서 연공성을 축소하고 직무 및 성과를 반영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연구회의 권고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2022. 7.) 중 "노사의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등 활성화 방안 마련,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 연장 근로시간 총량 관리, 스타트업 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 지원방안 마련)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확산"이 들어있다.

또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2022. 6. 23.)에도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등 합리적인 총량 관리단위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과 "직무·성과 중심 임금 체계 개편·확산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제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관변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회의 권고문은 이미 국정과제로 선정된 내용을 좀 더 부연 설명해서 제출한 것일 뿐이다.

사용자단체 요구 전면 수용, 무엇이 문제인가

권고문이 발표되자 이에 대해 여러 비판적 의견이 개진되었다.1) 연구회의 근로시간 유연화 권고에 대해서는 현재의 장시간 노동 체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할 것이라는 비판이 중심적으로 제기되었다. OECD 국가 평균 연간 노동시간이 1700시간인 데 비해 한국은 여전히 1900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을 못 벗어나고 있다. 따라서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오히려 연장 근로시간 산정 단위 기간을 현행 1주에서 월, 분기, 연간으로 확대하는 것은 기업의 장시간 노동 요구를 전격적으로 반영한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임금 체계 개편 방안과 관련해서는 연공급을 악으로 규정하고 직무급을 선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 접근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다. 어떤 임금 체계이든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으며, 해당 국가의 사회역사적인 맥락이 반영된 것인데, 이에 대해 선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정규직(특히 생산직)의 임금 체계를 흔들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직무급의 경우는 직무 가치 평가나 직무 간 임금 설정의 객관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 하는 고전적인 쟁점이 해소되기 전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권고문 자체가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단체가 그동안 요구해왔던 내용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이고, 노동시간 및 임금에 대한 사용자의 결정권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이에 대한 노동계의 비판은 내용상으로 너무나 타당하다. 이에 더해서 권고문이 비정규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비정규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 : 노동시간

노동시간과 관련된 권고문의 핵심 내용은 "연장 근로시간의 관리 단위를 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개편"하는 것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1주 단위로 연장근로를 12시간까지만 허용하고 있어서 1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인데, 권고문대로 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기존 한 달에 허용된 연장 근로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근무하게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주 근로시간이 92시간(40시간+12시간×4.345)까지 가능하다. 정산 기간을 분기, 반기, 연간으로 하면 1주에 가능한 근무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권고문에서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로 도입하고, 연장근로는 현행과 같이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실시할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노동시간에 대한 결정권이 절대적으로 사용자에게 맡겨져 있는 현실에서 사용자의 경영 계획에 따라 장시간 노동집중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의 집중화 현상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시간 노동(주 36시간 이내 노동)을 제외한 전일제 노동자만 살펴볼 때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이 더 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간 격차는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2020년 기준 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은 42.5시간, 비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은 43.3시간이다. 비정규직이 주당 0.8시간 더 길다.

주당 45시간 이상 근무하는 장시간 노동 비율도 정규직은 24.4%인데 비정규직은 32.6%로 더 많다.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이 정규직보다 더 긴 것은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을 기반으로 임금이 정해지므로 노동자가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원하게 만드는 임금-노동시간 연동체제에 기인한다. 연장 근로시간의 정산 기간 확대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고용형태별 주당 노동시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각년도 비정규직은 단시간을 제외한 전일제만 포함
 고용형태별 주당 노동시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각년도 비정규직은 단시간을 제외한 전일제만 포함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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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형태별 장시간 노동 비율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20년 8월)
 고용형태별 장시간 노동 비율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20년 8월)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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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문의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은 생계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 비정규직에게 악용될 소지도 있다. 기존의 연차휴가도 수당으로 받기 위해 사용하기 꺼리는 비정규직에게 연장근로에 대한 보상을 수당 대신 휴가로 대체하는 것은 장시간 노동을 해서라도 부족한 임금을 벌충하려는 비정규직에게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도입하도록 하고 있으나, 제도가 만들어지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용자가 원하면 도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현재에도 비정규직(전일제 기준)은 정규직보다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데 권고문대로 노동시간이 더욱 유연화될 경우 집중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것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게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비정규직의 낮은 조직률을 고려할 때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로 도입한다"는 조건을 붙이더라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의 대응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과 관련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쟁점은 한편에서는 낮은 시급에 기반을 둔 장시간 노동체제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단시간 및 초단시간 노동의 확산이다. 연구회의 권고문은 비정규직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더욱 강화할 뿐만 아니라 단시간 및 초단시간 노동의 과잉이라는 '쪼개기 노동'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2020년 8월 기준 전체 임금 노동자 중에 단시간 노동이 17.4%인 350만 명이다. 단시간 노동 중에서 초단시간 노동(주 15시간 미만)이 27.9%인 99만 명이다. 4대 보험 가입 회피, 주휴일 및 연차휴가 적용 제외 등을 이유로 노동시간을 쪼개는 일탈이 확대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개선책은 권고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비정규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 : 임금 체계

권고문은 연공급 임금 체계를 직무성과급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주로 연공급 비율이 높은 정규직 생산직의 임금 체계를 공격하게 될 것이다. 입사한 지 1년 차나 10년 차나 임금이 비슷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연구회 권고문은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무급의 도입 경로를 생각해보면 연공급 체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공기업·대기업 정규직보다는 주변부 노동자에게 먼저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직무급 적용은 직무 가치에 기반한 임금 책정이라는 원래적 의미보다는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정규직이 수행하는 업무는 보조적, 주변적인 것이므로 직무 가치가 낮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식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지난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 추진 당시 표준임금체계 논란이 여기에 해당한다. 당시 정부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직무급 적용을 권고했고, 이를 기반으로 청소직, 경비직, 시설관리직, 조리원, 사무보조 등 5개 직종이 직접고용으로 전환될 때 최저임금에서 출발하는 표준임금체계를 적용한 것이다.

표준임금체계는 직무급제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근속기간과 직무에 따라 1~6단계로 나눠 단계마다 임금을 고정시켜 놓고 있다. 직무 가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을 얘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직군 분리와 저임금 구조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연공급이든 직무급이든 상관없이 최저임금 경계를 벗어나서 적정 임금수준을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권고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다. 권고문이 강조하는 직무급제 도입은 앞서 표준임금체계 논란에서 보이듯 비정규직에게는 저임금을 구조화하고 정당화하는 유탄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현 정부가 입에 발린 듯 얘기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임금 정책은 초기업 교섭 활성화를 통한 협약 적용률 제고, 원청의 사용자성 부여,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 근절,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적정임금제 도입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내용 없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겠다는 권고문은 언어도단이다.

추가 과제에 대한 권고

연구회의 권고문은 노동시간, 임금 체계 이외에 추가 과제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과 차별 해소 방안 마련",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적용 등 보호의 사각지대 해소방안을 마련할 것"처럼 귀가 솔깃해지는 표현도 보이지만 한 줄의 서술 이외에 구체적인 주문은 없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대상과 기간의 조정 등 파견제도 전반의 개선방안 마련"이다.

이는 파견법 개정을 통해 파견 대상 직종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이어질 것을 시사하고 있다. 권고문이 '미래 노동시장'을 연구한 결과라고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 구조화, 파견 확대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장의 미래가 이렇다면 암울할 뿐이다.

1) 양대 노총 성명서, 민주노총 긴급 토론회(2022. 12. 21), 양대 노총·정의당 공동주최 토론회(2022. 12. 27.) 등을 참조할 것.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윤석열정부, #노동개혁,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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