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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런던 여행 중 서점을 찾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런던 여행 중 서점을 찾았습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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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그 지역의 동네 서점이다. 여행 중에는 보고 듣는 것이 새롭고 다양하다 보니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커진다.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하다 책이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아이는 평소보다 조금 더 큰 눈으로 책 제목을 훑어보며 이 책 저 책을 들춘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말한다.

"마음에 드는 책 있니? 골라봐. 엄마가 사줄게."

여행에서 산 책은 여행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기념품이 된다. 또한 책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갖게 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특효약이 되기도 하고. 유럽 여행을 가서도 서점을 방문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을 가게 돼 어려울 듯했다. 여행사에서 준 일정표에는 수많은 관광지만 있을 뿐 서점은 없었다.

'등대' 같은 동네서점에서 내가 고른 책
 
여행을 하다 책이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아이는 평소보다 더 관심있게 책을 살펴봅니다.
 여행을 하다 책이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아이는 평소보다 더 관심있게 책을 살펴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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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런던에 도착하자 서점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단념하기 힘들었다. 지도앱을 켜고 우리가 관광할 장소와 가까운 곳에 서점이 있는지를 일일이 검색했다. 다행히 영국박물관 앞에 서점이 있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서평지인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서 운영하는 서점이었다. 영국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같은 여행팀 사람들은 뮤지엄샵에 들어가거나 근처 카페를 찾았지만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서점으로 향했다.

박물관과 거리가 가까워 쉽게 찾을 줄 알았던 서점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길을 헤매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 주황 색깔의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 보였다. 이끌리듯 그쪽으로 걸어가 보니 서점이었다.

런던 리뷰 북샵(London Review Bookshop). 김영하 작가는 동네 서점을 등대에 비유하기도 했었는데 런던 리뷰 북샵은 그 표현이 딱 어울리는 서점이었다. 짙은 녹색의 문을 열고 서점에 들어서자 타국에서 가졌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이제 쉴 곳을 찾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점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아늑하고 알찼다. 나는 시집을 사고 싶었다. 얇고 가벼워 여행할 때 휴대하기 좋고, 글이 길지 않아 영어라도 부담이 덜하다. 무엇보다 영시는 영문학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글이니. 서점 안쪽 계단으로 내려가 지하에 있는 'Poem' 서가를 둘러봤다.

여러 시집 중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이 눈에 띄어 그 시집을 꺼내 들었다. 메리 올리버의 <Blue Horses>. 그동안 번역본으로만 읽었던 그녀의 시를 원서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나는 기대되는 마음에 푸른색 표지의 작은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아이도 몇 권을 두고 고민하더니 한 권을 골라왔다. 꽤 두껍고 글씨도 작고 글밥이 많은 책이었다. 나는 아이가 부담없이 볼 책을 고르길 바랐다. 괜히 사놓고 보지 않으면 짐만 될 것 같아 아이에게 물었다.

"정말 이 책 볼 거야?"
"앞부분 좀 읽어봤는데 재밌어요. 사고 싶어요."


나는 책을 다시 훑어봤다. 이 책은 역사나 수학에 관한 배경지식이 좀 있는 사람이 봐야 할 어른용 그래픽 노블처럼 보였다.

"이거 아이가 봐도 되는 책 맞아?"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나를 한번 보더니, 옆에 있는 서점 직원에게 물었다.

"이 책 아이가 봐도 괜찮죠?"

서점 직원은 나와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Of coure! Children read everything(물론이죠! 아이들은 무슨 책이든 볼 수 있죠.)."

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The Thrilling Adventures of Lovelace and Babbage> 책을 사줬다.

첫 영국 여행을 기념하는 물건
 
여행에서 산 책은 여행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기념품이자,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특효약이 됩니다.
 여행에서 산 책은 여행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기념품이자,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특효약이 됩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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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동안 잠들기 전 호텔룸 테이블 앞에 앉아 메리 올리버의 시를 한 편씩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다. 해석이 완전하게 되지 않아도 좋았다. 그녀의 시는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나에게 평화로운 밤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는 여행 내내 런던 서점에서 산 책을 한 번도 펴보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오면 너무 피곤하다며 유튜브로 축구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아이는 그 책을 읽었을까? 얼마 전 아이 책상 위에 두 남녀가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이 그려진 빨간색 책이 놓여있었다. 런던에서 산 책이다. 책을 보니 33페이지에 책 귀가 접혀 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이 책 어때?"
"역사인 것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데. 읽을수록 궁금해지는 책이에요."


나는 아이가 이 책을 33페이지까지만 읽는다고 해도 좋다. 이 책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으니.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놓고 우리의 첫 영국 여행에 대해 두고두고 이야기할 것 같기 때문이다.

태그:#여행, #서점,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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