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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사후 2500년이 지났지만, 논어는 여전히 뜨겁다. 24시간이 모자라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굳이 고전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다. 고전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꿈꾸는 부자나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이들, 그리고 부자도 아닌데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면 남들과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1929년 시카고 대학에 총장으로 부임한 로버트 허친스는 '시카고 플랜'을 발표한다. 100여 권에 달하는 전 세계의 위대한 고전을 읽지 않으면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시기가 적절치 않으며 지금 시급한 것은 다른 것이라고 모두가 반대했다. 1929년은 실업률이 32%에 달했던 경제대공항이 시작된 해였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침몰 직전까지 몰아넣은 경제 위기였다. 더군다나 명문대학도 아닌 시카고 대학에서 시작한 시카고 플랜은 웃음거리였다. 얼핏 당시 사람들의 반대가 타당해 보이기도 하다. 소수의 선견지명의 최대 적은 다수의 무지다. 잘못된 계획은 빨라 보이지만 특정 성과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시카고 플랜은 느리게 보이지만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났다. 2022년 기준 시카고 대학은 8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된다. '시카고 플랜' 그 무모한 도전에는 논어도 포함되어있었다.

빈부의 격차가 날로 커지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는 원천봉쇄 수준에 돌입했다. 인구의 대다수가 '흙수저'인 현대사회에서 재벌 2세를 롤모델로 삼아야 할까? 우리의 아이들을 여전히 꿈꾸게 할 이 시대의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 기업가가 있다.
2021년 2월 18일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는 기부단체인 '더 기빙 플레지'를 통해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한다고 발표한다. 더 기빙 플레지는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에 의해서 출범되었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총자산이 10억 달러 이상이어야 하고, 그 절반을 기부해야 한다.

그러나 돈만 있다고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산형성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기부 전 이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부정한 방법이나 불로소득으로 재산을 축재한 자들은 회원이 될 수도 기부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기부왕이며 사업적으로도 눈부신 성공을 거둔 김봉진은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김 대표가 두 번 이상 읽은 책으로 논어를 추천했으니, 이쯤 되면 논어를 읽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렵다. 이제 논어를 펼쳐들 마음의 준비는 마쳤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다른 법이다.

논어를 읽다 중도 포기하는 사람의 수는 논어를 반복해서 읽는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다. 논어와 공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논어를 펼쳐 들었기 때문이다. 논어뿐만 아니라 고전에 대한 프리뷰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논어를 집어들기 전에 

먼저 시대상황과 인간 공자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철기의 발명으로 농업의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 산업인 농업이 발달하자 상업도 융성하게 되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막대한 부를 쌓는 상인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는 천하의 중심이었던 주나라 외의 다른 나라들도 힘을 갖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바야흐로 춘추전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각 나라가 강호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한 나라 안에서도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혈육 간에도 죽고 죽이는 대 혼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춘추는 공자가 기원전 722년~480년 까지 노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240여 년의 기간 동안 486여 차례의 전쟁이 있었다고 하니 그 참상과 시대상을 짐작할 만하다. 이 혼란의 시기는 진시황제의 진 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이어진다.

영웅은 난세에 등장하는 법이다. 칼이 지배하고 살육이 난무하는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중국의 고대철학이 빅뱅처럼 폭발한다. 태평성대의 시기였다면 공자를 비롯한 위대한 철학자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색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나타난 여러 사상가와 학파를 제자백가라고 부르며, 그 선두에 유가를 대표하는 공자가 있다. 유가의 계승자로는 맹자, 순자가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도가에는 노자, 장자가 있고, 법가를 대표하는 한비자, 상앙 등이 있다.

공자는 소위 말하는 4대 성인 중 그 출생이 가장 비천하다. 기원전 551년, 당시에는 노 나라이며 현재에는 중국 산동성의 서남쪽에 위치한 곡부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지금도 공자의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으며, 곳곳에서 공자의 흔적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공자는 사마천의 기록에 따르면 부모의 야합에 의해서 태어났다고 한다. 현감 정도의 하급관리였던 60대 아버지와 10대 어머니였으니 정상적인 결혼의 형태라고 보기 어렵다. 공자와 논어에 대한 연구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공자를 칭하는 영문표기인 Confucius는 공자를 높이 부르는 라틴어식 표기이다.

위대한 바보, 공자

공자는 3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경제적으로 궁핍한 유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세력가의 창고지기나 가축을 관리하는 등의 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19세에 결혼을 하였으나 부인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논어에 시집보낸 딸에 대한 기록이 있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아들이 있었다. 노 나라에서 하급관리를 지냈으나, 현실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10년 넘게 여러 나라를 주유하게 된다. 공자는 평생을 걸쳐 70명이 넘는 왕을 만났으나 끝내 한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할 관직에는 오르지 못했다. 

왜일까? 70여 명의 왕들이 원했던 것과 공자가 그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견해차가 있었다. 왕들은 이웃나라를 당장이라도 함락시킬 군사적 계략이나 왕권강화를 위한 술수를 원했다. 그러나 공자는 이런 왕들 앞에서 인 과 예를 이야기했다. 이런 공자를 두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 일행이 성문을 통과하는데 문지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제자가 공자의 일행임을 밝히자 문지기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 말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류에 편승하였던 이들의 이름은 한 세대도 지나지 못해 소멸되었고, 공자는 영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위대한 생각은 당대에 손가락질받을 수도 있지만, 후대에 두 손으로 받들어진다.

논어에 불이 난 마구간을 보고 공자가 다친 사람이 없는지 묻는 구절이 나온다.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당시는 사람 목숨보다 귀한 대접을 받던 것이 전쟁에서 유용한 말이었다. 또한 공자는 육포 한 묶음 이상만 가지고 오면 가르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스스로 말한다.

육포 한 묶음은 당시 누군가를 찾아갈 때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단위였다. 오늘날 병문안을 갈 때 가져가는 건강음료와 과일바구니 정도가 되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자와 논어는 2500년도 이전의 인물이다.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도 않았으며,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은 혁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위대한 바보였던 공자는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시카고 플랜과 공자의 인생 행보는 우리에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말한다. 멀리 보고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끝내 이를 것이라고. 다음 회에는 논어의 주요 내용을 알아보는 논어 프리뷰가 이어집니다.

태그:#논어, #고전,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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