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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기름통에 기름이 똑 떨어졌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데 큰일이다. 부랴부랴 인근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기름을 주문했다. 다행히 지난달보다는 조금 가격이 내렸다. 그래도 여전히 많이 비싸다.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이 걱정이지만, 한파에 어린 아이들을 춥게 만들 수는 없으니 기름을 꾸역꾸역 넣는다. 올겨울 난방비는 얼마나 들었을까. 지난해 11월부터 넣은 보일러 기름값을 정리해보니, 이번에 넣은 것까지 합쳐 총 100만원이 넘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비용이다.

도시가스요금이 급등했다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이럴 줄 알았다. 도시가스요금이 너무 올라 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와야, 난방비에 대한 언급이 나올 줄 말이다. 여기 난방비 폭탄을 진즉에 맞고도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따뜻하게' 한 달 사려면 50만~60만원은 각오해야
 
등유 보일러 연통이 창문 밖으로 연결돼 있다.
 등유 보일러 연통이 창문 밖으로 연결돼 있다.
ⓒ 박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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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도시가스 보급률은 전국에서도 가장 낮은 15.1%(통계청 2020년 기준)에 그친다. 제주의 대다수 가정에선 도시가스 대신 등유나 LPG, 전기 등을 난방 연료로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등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등윳값이 폭등한 지 오래 됐다. 하지만 정부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이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도시가스만 바라보고 있다.

제주도에 살다보니 주변 지인 대다수가 LPG나 등유로 난방을 한다. 팔순이 넘은 옆집 삼춘(제주도에서 성별 불문 어른을 이르는 말)은 혼자 사시는데 기름값을 많이 낼 수 없다며 난방을 거의 안 하고 지내신다. 그런데도 구옥이라 난방비가 줄줄이 새나간다면서 차마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어로 욕을 퍼붓는다.

어린 아이 넷을 기르는 동갑내기 친구는 지난달 두 드럼의 등유를 넣으며 70만 원 정도를 썼다. 하루 한두 시간 정도 보일러를 틀고 씻을 때만 온수를 사용하는데도 한 달에 한 드럼은 필요하단다. 아이들이 춥다고 하면 패딩을 꺼내 입히고 있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기름값은 가장 높고, 도시가스 공급률은 가장 낮은 지역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2020년 리터당 평균 768.82원(제주도 기준)이었던 등유는 2021년 리터당 977.76원으로 오르더니, 급기야 2022년에는 리터당 평균 1536.45원에 이르게 된다. 바로 전년도와 비교해도 1년만에 무려 36.36%가 상승했고, 2년 만에 99.84%가 올랐다. 등유는 보통 한 번에 한 드럼, 즉 200리터를 주유한다. 리터당 1536.45원이라면, 한 번에 30만7290원의 비용이 든다는 말이다. 이게 평균이다. 최고치일 때가 아니다.

등유를 쓰는 가정에서 이 정도 양은 한 달 치에 불과하다. '따뜻하게 살면서 한 달'이 아니다. 앞서 동갑내기 친구네 사례에서도 이야기했듯, 하루 한두 시간 정도 난방을 하고 온수만 쓰는 데도 이만큼이 든다. 좀 따뜻하게 살려면 한 달에 50만~60만 원은 예상해야 한다. 신축 주택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좀 낫지만, 구옥의 경우 실내온도를 20℃ 이하로 맞춰도 한 드럼으로 한 달을 살지 못한다. 그러니 대다수가 실내에서 내복을 껴입거나 조끼, 얇은 패딩 등을 걸치고, 전기장판이나 온수매트를 켜고 지낸다.
 
털 양말.
 털 양말.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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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유'를 쓴다는 것의 의미... 누가 알아줄까

등유를 쓰는 지역은 주로 어디일까. 통계청의 '거처의 종류별/난방시설별 가구 2020년도 현황'에 따르면, 가장 많은 곳은 경상북도로 27만6000여 가구가 등유를 사용한다. 그 다음으로 전라남도 27만3000여 가구, 경상남도 25만4000여 가구, 제주 10만1000여 가구 등이다. 수도권에도 등유를 쓰는 가구가 있다. 서울 7200여 가구, 인천 2만2300여 가구, 경기도 13만6200여 가구로 수도권에만 등유를 쓰는 가구가 약 16만6000가구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도시가스를 향해 있다. 기본값이 '도시', '아파트'인 사회의 민낯이다. 등유를 쓰는 가정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정부와 정치권에 가닿지 않는다. 그러니 휘발유·경유에 대한 유류세를 낮출 때에도 등유는 쏙 빠졌다. 

도시가스 보급률이 가장 높은 수도권에서 등유를 쓴다는 건,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것을 뜻한다.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시골 주택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등유를 사용한다. 에너지 바우처가 있다지만 있는 줄도 몰라 사용하지 못하거나, 있다 해도 대상이 되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가스요금이 올라 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니, 정부와 정치권은 연일 눈치보기에 바쁘다. 오른다는 건 지난해부터 기정사실화 돼 있었는데도 겨울이 다 지나서야 대책을 내놓는 정부와 그저 비용을 낮추라고만 윽박지르는 정치권까지.

난방비 문제는 서민 경제와 직결돼 있어 예민한 부분인 건 이해하지만, 그 어디에도 근원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를 내도 외면받는 사람들을 알아주는 경우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들은 대체 누가 대변하고, 누가 알아줄까. 봄을 알리는 옆집 매화가 만개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지난 17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 걸매생태공원에 있는 매화가 만개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 걸매생태공원에 있는 매화가 만개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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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난방비, #도시가스, #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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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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