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을 한다. 졸린 눈을 비비고 추위와 싸우며 지옥철을 타고 출근이란 걸 한다. 통장을 스치는 그깟 월급이 뭐라고 가슴에 품은 사표 한 장을 차마 던지지 못하고 꾸역꾸역 참아낸다. 그러니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김훈 같은 거장만은 아닐 것이다.

내게도 회사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지 못해 다녔다.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가 놓고선, 이러다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러니의 연속이었다. 견디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기업의 가치나, 좋은 일 문화 같은 건 나의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배달앱인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피플실 컬쳐커뮤니케이션팀 팀장 나하나는 최근 출간한 도서 <일터의 설계자들>을 통해 회사의 좋은 일 문화를 만드는 부서인 피플실의 치밀하고 세심한 전략을 공개했다.

동료들끼리 소통의 결을 맞추고, 회사와 직원이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잡담을 장려하고, 회사만의 언어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누구도 주저함 없이 질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소속감을 키우는 행사를 기획하고, 팀워크를 높일 수 있는 노하우를 이야기한다. 행복한 구성원이 좋은 서비스를 만든다는 가치 아래, 구성원들이 좀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섬세하고, 꾸준하고, 집요한 과정을 낱낱이 기록했다.

나는 문득 내 첫 회사의 사장님과 이사님께 <일터의 설계자들>(웨일북)을 권하고 싶어졌다. 동시에 소위 '기업의 높은 분'들이나 기업 문화 담당자들이 이 기사를 보길 바란다. 행복한 구성원이 좋은 서비스를 만든다는 건 비단 우아한형제들에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을 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열쇠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상찬일까? 책과 관련해 지난 1일 <일터의 설계자들> 저자 나하나를 만났다.

우아한형제 대표 처음 본 순간... 그가 하고 있던 일
 
나하나 팀장 프로필 사진
 나하나 팀장 프로필 사진
ⓒ 나하나

관련사진보기

 
- 처음 우아한형제들 피플실(당시 피플팀)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

"원래 한 통신사에서 영업 사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일을 했다. 리더십 교육, 영업 교육 등을 기획했는데, 내가 경험하지도 않은 걸 누군가에게 교육한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좀 느꼈다.

오히려 다른 일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 일례로 당시 '펀(Fun) 조직'이라는 경영 트렌드가 유행했다. 내가 일하는 곳을 좀 더 Fun하게 만들어보고 싶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이벤트를 기획하는 등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 문화라는 게 혼자서 애쓴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좋은 일 문화를 좀 더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브랜딩의 관점으로 조직에 접근하면 어떨까 싶어 경영대학원에 들어가 브랜딩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접한 우아한형제들의 일 문화가 굉장히 새롭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우아한형제들의 일 문화와 관련한 내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나에겐 우아한형제들이 흠모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이후 우연히 우아한형제들의 피플팀(2013년부터 2019년 초반까지 피플팀으로 시작, 2019년 후반부터 피플실로 확장했다 - 기자 말)이라는 조직에서 팀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었던 만큼 주저할 이유가 없었고, 결국 2014년 피플팀 채용 1호 멤버로 입사했다."

- 입사하고 보니 어땠나? 멀리서 봤을 때는 흠모했지만, 일하면서 실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마냥 좋은 회사가 어디 있겠나. 다만 우아한형제들은 더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달랐다. 일반 회사나 조직과는 면접 과정부터 많은 점이 다르다. 한 가지만 소개하자면  우아한형제들의 현 의장인 봉진님을 처음 봤을 때, 직원들과 다 같이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웃음) 그때만 해도 직원이 100명이 넘었는데 그 정도 규모의 회사 대표가 직접 청소를 한다는 게 되게 신선하지 않나."

- 최근 도서 <일터의 설계자들>을 출간했다. 어떤 책인지 작가가 직접 소개한다면?

"<일터의 설계자들>은 관리와 통제가 아니라 관심과 애정으로 구성원을 대하는 피플실에서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경험을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꼭 조직 문화 담당자를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일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직장인을 포함한 많은 이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좋은 일 문화는 진심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런 진심과 <일터의 설계자들>이 만난다면 조금은 더 행복한 일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일터의 설계자들 표지이미지
 일터의 설계자들 표지이미지
ⓒ 박정우

관련사진보기

  
"나도 누군가에게 회사다"

- 사실 이 책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나도 어느새 꼰대가 됐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웃음). 회사라고 하면 그냥 월급 많이 주는 게 최고이고, 더해서 이런저런 복지가 많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일 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좋은 일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한 이유는 뭔가?

"당연히 회사에서 급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일 문화라는 것도 급여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한 설문 조사 기관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퇴사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회사의 복지나 연봉이 아쉬워서'라는 대답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 그리고 조직 문화 때문이라는 답변도 굉장히 많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가족보다 회사 동료들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이 개인의 삶에서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일터에서 일하는 게 행복하지 않으면 개인의 삶도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개인은 열심히 일할 수 없다.

우아한형제들의 공간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회사다'라는 문구가 있다. 그 말은 내가 곧 회사이고 나의 동료가 회사라는 의미다. 결국 좋은 일 문화를 만든다는 건 더 나은 회사를 만드는 동시에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일터의 설계자들>에 보면 '일 문화를 만드는 피플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구성원들이 행복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신규입사자를 우아한형제들만의 방식으로 환영하는 것도 인상 깊었지만, 퇴사자들에게도 특별한 이벤트를 열어 아름답게 보내주는 문화는 놀랍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굳이 퇴사자들까지 챙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좋은 일 문화란 구성원이 입사하는 순간부터 퇴사하는 순간까지 양질의 경험으로 촘촘히 채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회사와 내가 어떻게 만났는지 만큼, 어떻게 이별하는지가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다. 미우나 고우나 나와 한 시절을 같이 보낸 회사 아닌가. 그래서 이왕이면 회사도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 준 구성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구성원 역시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에 좋은 추억을 갖고 떠난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회사를 떠나는 사람은 그때부터 우리의 고객이 될 수도 있다. 회사에 좋은 기억을 가진 구성원이라면 퇴사하더라도 기꺼이 그 회사의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앞서 우아한형제들의 공간에 있는 문구들을 소개했는데, 그 중에 '평생직장은 없다. 최고가 되어 떠나라'는 문구도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주는 특별한 퇴사 선물에는 최고가 되어 떠나는 동료이자 앞으로 우리 서비스를 사용할 고객을 응원하는 마음도 담겨 있는 셈이다."
 
우아한형제들 회사에 붙어있는 문구
 우아한형제들 회사에 붙어있는 문구
ⓒ 우아한형제들

관련사진보기

  
좋은 일 문화에 필요한 건 '꾸준한 노력'

- 하지만 결국 기업의 목표는 좋은 성과를 내고,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피플실에서 하는 많은 일들이 기업의 성장과 매출에 도움이 될까?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다(웃음). 말한 대로 기업은 지속 가능해야 하고, 성장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아한형제들은 '배민다움'을 강조한다. 배민다움이란 고객 만족과 더 나은 고객 서비스 창출이라는 '성과', 배려와 협동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뤄내는 것이다. 그래서 피플실이 하는 많은 일은 구성원들이 서로 좀 더 배려하고, 협동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선 구성원들끼리 충분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존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 피플실은 구성원들이 이러한 소통과 존중을 잘할 수 있도록 원동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고객 만족과 더 나은 고객 서비스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 구체적인 예를 들어준다면?

"<일터의 설계자들>에도 소개했지만, 피플실에선 우아한형제들만의 일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많이 고민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우아한형제들만의 특별한 사원증 촬영, 우아한 수다타임, 와우타임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우아한 수다타임을 소개하고 싶다.

우아한 수다타임은 줄여서 '우수타'라고 부르는데 구성원들이 회사에 궁금한 점, 불편하거나 개선하고 싶은 점을 익명으로 자유롭게 질문하면 대표가 최선을 다해 대답한다. 대표에게 무엇이든 물을 수 있고, 구성원들이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소통 문화를 통해 조직의 싱크를 맞춰나갈 수 있다."
  
- 아무리 일 문화를 위해 노력해도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사내 정치 같은 업무 능률을 저하시키는 갈등들이 생길 것이다. 또는 협업해야 하는데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구성원들이 존재할 수 있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조직이 커지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절대 우아한형제들의 일 문화가 모두 이상적이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회사의 꾸준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아한형제들이 제일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아한형제들은 일하기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해 애쓴다.

우아한형제들에 처음 합류했을 때 구성원이 170여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0여 명이 넘었다. 이렇게 규모가 커져도 우리의 핵심 가치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힘은 좋은 일 문화를 지속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꾸준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일 문화에 완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빛도 비추고 물을 주는 것처럼, 끊임없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좋은 일 문화를 만들기 위해 수고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그 당연한 것을 지키고 실행해 나가는 일이 어렵다."

일터의 설계자들

나하나 (지은이), 웨일북(2023)


태그:#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일터의설계자들, #피플실, #일문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을 중심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