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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 나는 아침마다 도림천을 걷는다. 원래는 아주 오랫동안 운동을 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 동네 앞산을 올랐었다. 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아지면서 하루 만보라도 걷기 위해 출퇴근 전후 한두 정거장을 미리 내려 걷는 궁여지책 운동법이다.

도림천을 걷다보면 매일 자연과 만난다. 천변에 늘어선 버드나무와 물고기, 청둥오리, 왜가리 등. 그리고 또 열심히 걷기운동을 하시는 할아버지와 그의 곁을 지키는 할머니도 만난다.

오늘 아침에도 그 부부를 보았다. 70세가 좀 넘으셨을까? 할아버지는 뇌졸중의 후유증인듯 걸음이 불편해 보이는데 참 열심히 걷기운동을 하시고 언제나 그 옆을 할머니가 말없이 동행한다.

건강한 사람도 하기 싫은 겨울아침 운동을, 구부정한 어깨와 걸음걸이가 불편한 다리로 거르지 않고 하시는 초로의  할아버지도 그렇고, 남편의 발걸음에 맞춰 옆을 항상 지켜주는 할머니를 보면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분은 매일 운동을 하지만 눈에 띄게 보행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는 것, 짐작컨대 병환 후 처음 걷기를 시작했을 때보다는 아주 많이 좋아지셨을 것이다. 

잠시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쉬고 있는 부부를 보며 몇년 동안 개웅산에서 본 또 다른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분들도 몇년 동안 새벽이면 야트막한 산을 올랐었다.

근육이 점점 상실되어 가는 병이라던가? 그쪽은 아주머니 상태가 더 심했다. 그래도 매일 새벽마다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매달려 거의 끌려다시피하며 산을 올랐다. 남편이 귀찮아서, 혹은 아내가 힘들어서라도 짜증을 낼만 한데 싫은 내색 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는 그부부를 만나면 가슴이 먹먹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적도 없지만 부부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게 했던 그 애틋한 부부를 지나칠 때마다 돌아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주머니의 쾌유를 기도했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도 거르지 않던 그 부부, 안타깝게도 그렇게 오래 이어지던 부부의 아침운동은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한 해 두 해 나이가 쌓이며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있다. 분명 이전에도 존재했을 텐데 이제야 눈에 보이고 마음에 새겨지는 걸 보면 내 정신의 시야가 조금 넓어졌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각의 방향이 틀어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연로하신 분들, 그 중에도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노부부들을 오랜 기간 지켜보다 보면, 그분들과 전혀 접촉을 하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도 그저 짧은 시간, 단순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스쳤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부부들의 오랜 세월을 느낄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영욕을 함께 겪고 살아오면서 쌓아온, 서로 간의 정이나 신뢰 등이 어렴풋이 전해질 때면 왠지 울컥한 감동이 있다.
 
인왕산의 연리지 ㅂㄷㆍ부소나무
 인왕산의 연리지 ㅂㄷㆍ부소나무
ⓒ 홍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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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는 서로 가지가 연결되어 하나로 이어진 연리지. 부부 소나무가 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함께 해야 저렇게 너인듯 나이고 나인듯 너인,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어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것일까 싶어 한참 동안 부부 소나무를 바라보았었다.

한 나무와 또 한 나무가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 서 있다보면 가지가 이어져 서로 하나가 되듯, 삼십년 가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만나 처음에는 서로 자기 식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려고 싸우고 또 싸우는 시간들. 그러다가 다시 양보와 타협을 거쳐 다시 삼십년쯤 지나는 어느 시간에 이르면 자기도 모르게 서로 닮아져  있는, 그리고 서로의 빈 곳을 서로 채워가는 그 위대한 합(合), 부부!

태그:#도림천에서 만나는 노부부, #개웅산의 부부, #부부소나무, #아침운동, #부부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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