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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교육부는 러닝메이트제 도입 관련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개정안과 관련하여 지난 6일 '개정안 불수용' 입장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했으나, 이틀 만인 8일 돌연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단 이틀 만에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교육부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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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논리는 궤변에 가까웠다.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전문성·자주성·정치적 중립성은 교육 '내용'을 말하는 것이므로, 러닝메이트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교육의 전문성·자주성·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침해된다며 러닝메이트 제도에 반대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국정과제 점검 회의에서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주문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미 2011년 8월 당시 교과부 장관으로서 "지자체장과 교육감의 소속 정당이 달라 정책 혼선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공동 등록제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으므로, 교육부가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돌아서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해묵은 러닝메이트제 논쟁, 불쏘시개는 늘 보수 진영

현행 교육감 주민직선제는 지자체장 선거에 비해 유권자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고, 기호 없이 이름 석 자만 보고 찍는다는 이유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자체장과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이 다를 경우 일관된 정책을 펼치기가 어렵다는 문제 제기도 끊임없이 나왔다. 교육감 직선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름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렵게 만들어진 주민직선제의 근간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교육감은 1991년까지 대통령이 임명했고, 그 이후 2006년까지는 교육위원회 또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로 뽑았다. 15년 전인 2007년부터 지방자치제의 확대 시행에 따라 주민 직접선거로 바뀌었다.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일반자치로부터 독립된 교육자치 실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런데 진보 교육감이 대거 탄생하면서 보수 진영의 파상적 공세가 시작되었다. 한국교총은 교육감 직선제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하였고(헌재가 각하), 보수 언론은 2010년부터 앞다투어 직선제의 부작용을 침소봉대하며 흠집 내기에 바빴다. 그들은 주민 직접선거로 뽑는 교육감 선거가 이념 대결의 장으로 전락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러닝메이트 제도 도입하면 이념 대결 사라지나?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널뛰기하듯 일관성이 부족했다. 직선을 통해 보수 성향 교육감이 들어서면 대표성이 충분하다고 말하다가, 이후 진보 성향 교육감이 뽑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 대표성 부족을 물고 늘어졌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고무줄 잣대를 사용해온 것이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총선거, 지방선거, 교육감 선거 등 선거철마다 색깔론을 들이밀었던 세력이 외려 교육감 직선제가 이념 대결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도, 교육감이 시·도지사와 짝을 이루어 출마하면 이념 대결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 자체가 근거가 희박하다. 올해 치러진 교육감 선거만 복기해도, 교육감 후보들은 빨강과 파랑 등 정치적 대결 구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만약 러닝메이트제가 도입된다면, 지자체장 후보가 교육감 후보와 쌍으로 이념 대결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과 여당, 보수 언론의 주장대로 정치적 성향이 같은 자들이 동반 출마할 경우,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거나 예속화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자체장이 교체될 때마다 교육정책의 방향이 달라진다면 교육의 안정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은 교육이 정권에 따라 춤추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소모적 논쟁보다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이 우선

교육감 후보는 후보자등록 1년 전부터 당적을 가질 수 없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는 투표용지에 기호 없이 후보 이름만 기입하고, 선거구별로 투표용지에 적히는 이름 순서를 무작위로 섞는 교호(交互) 순번 방식을 도입하였다. 교육의 전문성·자주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문제는 현행 선거제도 역시 교육의 정치적 독립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법률이 개정되어 만 16세 고1 학생의 정당 가입이 가능해졌고, 만 18세 고3 학생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정작 그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정당 가입은커녕 정치후원금도 낼 수 없다. 심지어, 일과가 끝난 이후에 페이스북 게시글에 '좋아요'조차 마음대로 누를 수 없다. 사정은 대한민국헌법 제31조에 따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교육감도 마찬가지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라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교육감을 포함한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는 개혁 입법을 완성하는 일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교사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제안하는 것은, 교육을 정치의 문법에 종속시키려는 불순한 의도에 다름 아니다. 시계를 30여 년 전으로 되돌려, 대통령이 교육감을 사실상 임명하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태그:#러닝메이트제, #교육감 직선제, #교원의 정치기본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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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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