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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코로나가 휩쓸고 간 3년이란 시간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한창 코로나가 심했던 때 점심도 동료들과 함께 먹지 말라는 금지령에 홀로 식사 후 산책을 하던 것이 지금은 아예 밥도 거르며 걷고 있다. 불어난 살도 뺄 겸 운동도 할 겸 일거양득이었다. 더구나 걷기의 매력에 푹 빠져 여건이 되면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이제는 으레 밥을 먹지 않는 사람으로 굳어져 주변에서 묻지도 않는다.
 
점심 때가 되면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 점심 때 걷는 산책로 점심 때가 되면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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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도 많이 줄어서 전보다는 저녁 있는 삶이 늘었다. 집에 일찍 들어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개인 시간을 가졌다. 물론 코로나가 잠잠해진 지금은 가끔 회식이 있기도 하지만 빈도는 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가끔 술이 고플 때는 퇴근해서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좋아하는 맥주나 와인을 사서 혼술을 즐겼다.

이런 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세상 사람 좋아하더니 변했다며 의아해했다. 그러게. 한 달에 한두 번은 지인과 약속을 잡고 만나왔는데, 어느 순간 주말에도 내내 집에 있으며 도통 밖에 나가지 않았다.

20대 때는 확장, 30대 때는 정리, 40대 때는 깊이

최근에 친구와 통화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오래간만에 연락이라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묻고 자연스레 말미엔 시간 내서 꼭 보자는 인사를 나눴다. 그때 친구가 불쑥 한마디를 건넸다.

"근데 우리가 안 만난 지 일 년 넘은 것 아니?"
"정말? 설마…."
"잘 생각해봐. 작년 여름 이후에 언제 또 보았는지."


전화를 끊고 곰곰이 떠올려보니 만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맙소사. 코로나가 큰 요인이긴 했지만 이렇게 보지 않았던 적은 각자 군대를 다녀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순간 위기감을 찾아왔다. 이러다 연이 끊길 수도 있겠구나. 서둘러 카톡으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지인과의 만남을 위해 주저하지 말고 먼저 연락하기
▲ 관계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지인과의 만남을 위해 주저하지 말고 먼저 연락하기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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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관계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10대나 20대 때만 해도 관계의 확장성에 열을 올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거움이었고, 핸드폰 친구 목록은 수시로 추가되었다. 가끔 만나든지 자주 만나든지 친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모두 묶였다.

30대에 진입했다. 숱한 방황 끝에 이제는 안정을 찾아 '결혼'이라는 인생 과업에 겁 없이 발을 내디뎠다. 돌이켜보면 철이 없었기에 결혼도 가능했다. 재밌는 점은 결혼 소식을 주변에 알리며 자연스레 관계가 정리되었다. 그 많던 핸드폰 안의 지인 목록 중 내가 결혼식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었다. 그래도 꾸준히 만나고 교류했던 지인들이었다. 의미 없이 자리만 차지했던 이들은 스르르 삭제되었다.

그건 누군가의 목록에 있었던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한 다리 건너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초대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하면서도 한편 이해되었다. 서로가 딱 그만큼이었으니깐.

1차로 걸러지고 남은 인연과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중 몇몇은 정기적 회비를 내고 만나는 모임으로 발전하기도 했고, 각종 대소사를 챙기며 관계를 굳건히 했다. 폭은 좁아지지만, 더욱 깊어졌다랄까. 모임도 확장되지 않았다. 이들과는 평생 보고 지낼 거란 막연한 기대를 했다.

중년까지 이어진 안정적인 관계에서 코로나란 변수가 찾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유지될 줄 알았더니 잠깐의 틈이 금세 거리를 만들었다. 본 지 오래된 친숙한 얼굴과 차갑게 얼어붙은 카톡방이 더는 낯설지 않았다. 그리움은 잠시뿐 지금 생활이 주는 나름의 편함에 익숙해졌다. 이대로 계속 가면 노년에 고독과 외로움이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 같다.

때론 가족에게도 말 못할 속사정도 나누고, 맥락 없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덕지덕지 붙은 삶의 찌꺼기를 덜어낼 대상이 분명 필요했다. 오래 알고 지내서 설명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사람들. 그들과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저 끝에서 슬픔이 밀려왔다.

해결 방법은 가까이에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먼저 연락하고 만나면 되었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살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관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주는 만큼 받을 수 있기에.

관계도 노력이 필요하다
 
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 단편 영화 "영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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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밤늦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친구 A였다.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 나중에 커서도 몇몇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30대 중반 이후부터 서서히 멀어지면서 만남이 뜸했다. 그리고 최근엔 연락마저도 끊겼었다. A는 가까이에 있던 내 옆자리에 앉았다. 처음엔 살짝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지만, 예전 철없던 시절 이야기로 막힌 물꼬를 텄다.

우리 사이에 이렇게나 많은 일이 가득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합류해서 추억의 한 조각을 꺼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절이었다. 상을 당한 친구가 슬플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우리는 계속 예전 이야기로 밝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잠시 침묵을 흐를 때 A와 핸드폰에 번호를 저장했다. 그 사이 연락처마저도 바뀌었다. 그러던 중 3년 전 A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다른 친구가 알려주어 장례식장에 갔었다.

슬픔에 빠져있던 A를 위로하고 돌아왔는데, 그때 만나고 몇 년 만에 다시 다른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것이다. 어쩌다가 장례식장에서만 만나는 사이가 되었냐며 씁쓸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새벽에 헤어지면서 이제는 연락하며 지내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얼마 뒤 A에게서 카톡이 왔다. 12월 중에 모임을 주선할 터이니 꼭 참석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이모티콘을 남발하며 꼭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때 자주 어울렸던 다른 친구들도 카톡방에 초대해서 함께 보기로 했다.

앞으로 관계는 줄어들 일만 남았다. 신체는 점점 늙어가고, 사회생활도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다. 그나마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퇴직 후에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친구란 더욱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이다. 중년 이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님은 굳이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남은 인생에 연락할 친구 하나 없는 고독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코로나라서, 오래간만에 어색해서라는 핑계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꽁꽁 얼었던 카톡방에 따스함을 가장 먼저 전하고 핸드폰 목록 속 만나고픈 지인에게 주저 말고 통화 버튼을 누르는 거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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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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