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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동네 산책길에서 본 청포도
▲ 영글어있는 청포도 나무 여름 동네 산책길에서 본 청포도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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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공기업에서 인턴을 하느라 7개월을 보내고는 집으로 내려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요즈음은 대학을 졸업하고 금방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지방에 있는 집에 내려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딸은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있는 학교를 다니느라 집을 떠나서 생활했고 대학을 다니고 휴학을 하면서 시험 준비를 하느라 6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셈이다. 오랫 동안 떨어져 생활하다가 다 큰 딸과 같이 생활하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자식이 어릴 때는 기대감 없이 무엇이든 해 주는 게 부모 노릇이지만 성인이 된 자식에게는 뭐든지 알아서 하기를 기대하게 된다. 자기 방 청소는 했으면 좋겠고 뒷정리도 잘 했으면 좋겠고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였으면 좋겠고 등. 그런데 현실은 그러질 않으니까 자꾸 부딪친다. 

자식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집에 내려와 맘 편히 쉬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 눈치가 보여 그러질 못하니 스트레스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만 언제 될 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을 것이다. 주변에 취업한 친구들 소식을 들으며 자신도 빨리 되고 싶은 조급함도 느낄 것이다.

대학 때부터 준비해왔던 시험에 계속 떨어졌던 딸은 실패에 대한 반복된 경험으로 자신감도 많이 낮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 공부한 것은 경험으로 축적되어 머릿 속에 저장돼 있는 것이고 언제 어디서 필요할 지 알 수 없으므로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라고 나는 딸에게 말해줬다. 인생은 마라톤이니까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파악해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으라고 말해 줬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자소서 쓰며 고민하는 딸과 함께 남편과 나는 저녁을 먹고 가볍게 동네를 산책한다. 머리도 식힐 겸 운동도 될 겸, 이것저것 이야기도 나누면서 말이다. 이 시간에 남편과 나는 오십 년 넘게 세상을 살아오면서 느낀 점들,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자기 길을 찾고 있는 딸에게 얘기를 해 주게 된다.

우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빨리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하지 말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해 나가면 된다고, 그러면 언젠가 취직도 될 거고 자신의 일에서 성취감도 얻을 거고 인정도 받을 거라고, 먼저 세상살이를 한 경험으로 이야기를 한다.

추석 연휴에 친구를 만나고 온 딸은 취업했던 친구의 이야기가 취업 준비를 하는 데 여러 도움이 되었나보다.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하나 준비를 해야겠다고, 중요한 건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 

미래가 여전히 불안할 거고 많이 혼란스럽고 머릿속은 계속해서 해야 할 일로 정신 없을 상황에서 딸은 1년 전보다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아침에 우리 식구 중에서 제일 먼저 집을 나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부지런함도 몸에 배었다. 정신 건강은 몸의 건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아서 운동을 하며 몸과 마음의 건강도 살필 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남편과 나보다 딸이 우리에게 하는 조언이 늘었다. 나에게는 밤늦게까지 너무 무리하며 책읽지 말라 하고 남편에게는 조금씩 쉬면서 일을 하라고 충고를 한다. 무리를 하면 몸이 아파지니까, 걱정되는 마음이 말로 나오나 보다. 자신 없어 했던 모습이 조금씩 자신감으로 바뀌어 자신을 살피고 더 나아가 같이 살고 있는 부모의 생활습관까지 살펴볼 줄 알게 되었으니 이것도 성장이고 발전이 아닌가, 싶어서 딸의 조언을 고맙게 듣고 있다. 

요즘 시대에 취업에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몇 개월, 누군가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자녀든 부모든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빨리 취업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적성과 성향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도 자녀도 조급해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녀가 자녀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성인이 되어 취업하고 집을 떠나게 되면 이렇게 긴 시간동안 함께 살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함께 지내는 이 시간이 딸에게는 취준생으로서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좋은 시간으로 남기를, 나와 남편에게는 딸과의 생활이 묻어있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포도나무가 보인다. 봄에는  포도씨만 했던 열매가 장맛비를 맞고 뙤약볕을 견디며 알알이 탐스럽게 열매 맺어 있는 걸 보게 된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 준비해 가다 보면 언젠가 탐스런 열매를 맺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작은 열매를 달고 있는 청포도나무
▲ 봄에 본 포도나무 작은 열매를 달고 있는 청포도나무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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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취준생, #취업 준비, #부모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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