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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달콤한 식혜를 드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더 달콤했다.
▲ 4대에 걸친 여자들이 쌓은 사랑의 시간탑 엄마의 달콤한 식혜를 드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더 달콤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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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 장 여사님(올해 107세)의 총기는 여전하셨다. 마스크를 낀 엄마를 바로 알아보시고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들의 젊은 시절 이름을 붙여 엄마를 '영태각시'라고 불렀다. 코로나 사태 후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다섯 번째 만남이다. 올해부터 부쩍 손떨림이 심해진 엄마 역시 마음에 빚을 진 양 할머니를 보러 가자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예방접종문제로 요양원의 규제사항이 늘어나서 면회가 어려웠었다. 작년 여름에 딸과 둘이서만 할머니를 만났다. 요양원 입소 전 2주 동안 증손녀와 보냈던 그해 겨울을 기억하고 계셨기에 15분간의 짧은 면회라도 좋았었다. 고향 섬에 함께 갈 시간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지 벌써 일 년을 넘기며 나 역시 마음에 빚이 생겼다.

"이놈의 세월이 나를 두고 어디로 간다냐. 어서어서 눈 감으면 좋겄다. 이렇게 명 질게 사는 것도 죈디. 그래도 우리 새끼들 만나니 참 좋다. 그런데 네 에미 식혜는 가져왔냐?"
"앗 식혜요? 오늘은 두유 가지고 왔어요. 할머니 자주 보라고 제가 깜박했나봐요."


귀가 약간 어두운 점을 제외하고 고령에도 총기가 여전하셔서 할머니와의 소통은 늘 편하다. 엄마의 일상뿐만 아니라 내 형제들의 안부도 묻는다. 손자들이 할머니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이 자손들의 안위를 걱정하신다.

다시 요양원으로 향했다

일주일 후 다시 요양원 면회신청을 했다. 증손자 중에서도 내 딸과의 추억을 더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맘에 딸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다. '당연히 가야지'라고 말하는 딸이 고마웠다. 그 사이 친정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식혜를 담느라 힘들었다면서도, 이왕 담는 김에 당신 자식들 것까지 담아서 줄줄이 병을 세웠다. 덕분에 사위인 남편과 아들은 호식했다고 좋아했다.

부산스레 아침을 벗어나 길을 나섰다. 소위 4대에 걸친 여자들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난 마음이 들떠서 마냥 좋았다. 요즘 부쩍 하루의 삶에 대한 명상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무슨 대단한 역사를 만드는 것 같다.

코로나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요양원 면회라도 방문자들이 꼭 지참해야 할 것은 자가진단키트다. 오늘도 여지없이 약국을 들러 키트를 사고 엄마가 준비한 식혜통을 들었다.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당신이 손수 한 컵이라도 드시게 한다고 식혜를 시원하게 준비하셨다.

요양원의 복지사들은 친절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의 다정한 자세와 말솜씨 역시 고마울 뿐이다. 요양원이란 제도가 없었더라면 집에서 부모를 모셔야 했을 우리들. 그때의 내 모습이 어찌 저들의 사랑과 겸양을 따라갈 수 있을까. 깨끗하고 시원한 면회실로 안내받았다.

잠시 후 할머니가 오셨다. 며칠만에 만나는 얼굴이라 그런지 바로 알아보시고 활짝 웃으셨다. 내 딸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셨지만 '할머니, 제 딸이에요. 옛날에 할머니랑 고구마 같이 먹었던 증손녀예요'라고 하니 고개만 끄덕거렸다.

이보다 더 강한 인연이 있으랴

복지사의 배려로 엄마는 식혜 한 컵을 떠서 당신 손으로 할머니에게 식혜를 드렸다. 이 작은 행위 하나에 추억의 무게를 달고 싶은 내 맘이 유별스러울까.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두 분의 모습을 하나라도 더 이쁘게 나오게 하고 싶어서 별의별 주문을 다 걸었다. 분명 귀찮을 수 있었으련만 당신들도 내 맘과 같았을까, 다양한 포즈를 취하셨다.

"식혜는 네 에미 것이 최고여. 이거 다른 사람들이 다 먹을지 모르니까, 한쪽에 잘 두라고 꼭 말해라. 몇 날 며칠을 먹겄다. 이제 언제 또 먹겄냐."
"아이, 할머니 자주 드실 거예요. 다른 분들이랑 나눠 드시라고 많이 가져온 거예요. 맛있죠?"


식혜를 두 컵이나 드시면서 맛나다, 맛나다를 연거푸 말하셨다. 당신의 몸이 자유롭지 못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멍이 들고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하셨다. 작은 막대기 같은 당신 다리를 보여주니 딸이 손을 얹으며 '그렇구나. 많이 아프셨겠어요'를 연발했다. 당신을 보며 엄마는 남편을 그리워하고 나는 아빠가 보고 싶었다. 오늘이 돌아가신 아빠의 12주기 제사다.
 
딸이 그려준 제사상의 그림 한점도 추억의 나무잎이 되었다.
▲ 그리움과 아쉬움을 나누는 아빠의 제사 딸이 그려준 제사상의 그림 한점도 추억의 나무잎이 되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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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란 무엇인가를 떠올려본다. 비록 제사의 형태는 다양할지라도 제사에는 공통의 나무, '그리움'이란 나무가 자란다. 더운 여름날 음식을 차리는 행위가 힘들지라도 제사의식은 남은 자들이 모여 그분과의 인연이 짧았음을 아쉬워하고 추억을 그리워하며 삶의 동력을 얻는 일이다. 딸은 오늘도 나를 대신하여 친정엄마의 집으로 가며 내게 말한다.

"엄마의 아빠를 맞이하는 날, 내가 할머니 잘 도와드릴게. 홧팅!"

유미희 시인의 <시간의 탑>을 읽으며 추억의 기록장을 펼친다. 세상에 이보다 더 강한 인연(因緣)이 있으랴, 내 딸이 내 위에, 내가 친정엄마 위에, 며느리인 엄마가 시어머니 위에 차곡차곡 쌓은 이 귀한 시간의 탑. 우리 네 여자들의 사랑의 탑이 하늘 높이 쌓이는 모습을 내 아버지가 보고 계실 것이다.

할머니
세월이 흘러
어디로
훌쩍 가 버렸는지 모른다 하셨지요?

차곡차곡
쌓여서

(중략)

우리 곁에
주춧돌처럼 앉아 계신
할머니가 그 시간의 탑이지요.

태그:#107세할머니,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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