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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30일 까미노 3일차
Castilblanco de los Arroyos->Almaden de la Plata 28.2Km 8시간 40분 정도 소요

 
출발하고도 40분이 지났는데 아직도 어둡다. 7시 반쯤의 모습
▲ 출발후 출발하고도 40분이 지났는데 아직도 어둡다. 7시 반쯤의 모습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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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0여km 되는 긴 거리를 걷기로 하고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오전 6시 50분이었다. 서머 타임이 적용되지 않았다면 5시 50분인 셈이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걸음이 느린 나는 준비를 빨리 끝내고 먼저 나왔다. 친구는 워낙 걸음이 빨라서 나보다 30여 분 늦게 출발해도 나보다 앞서가곤 한다.
 
인도가 없는 이런 길을 18km를 걸어갔다.
▲ 아스팔트길 인도가 없는 이런 길을 18km를 걸어갔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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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길은 대부분 흙길이거나 오솔길로 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숙소에서부터 한동안 아스팔트 길로 이어졌다. 날은 여전히 깜깜하고 순례자 길임을 나타내는 노란 화살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서 걸어야만 했다. 얼마 걷지 않아 물을 마시려고 페트병을 꺼내다가 뚜껑을 떨어뜨렸다. 손전등을 여기저기 비춰 가며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막 걷기 시작했는데 물 없이 가야 하나? 난감했다.

다시 꼼꼼하게 찾아보기로 했다. 가슴 앞에 멘 보조배낭을 풀어서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 놓고 차분히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배낭의 앞부분에 있는 작은 포켓, 주로 핸드폰을 넣는 용도로 사용하는 곳에서 뚜껑을 발견했다. 천만다행이었다.
찻길 옆으로 멀리 방목하는 소들이 많이 보인다
▲ 방목하는 소 찻길 옆으로 멀리 방목하는 소들이 많이 보인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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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빨리 푹신한 흙길이 나오길 바랐다. 영어로 된 지도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언제 차도를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간신히 방향만 찾는 정도일 뿐이다.

얼마나 지나야 바(Bar)가 나오는지, 해발 고도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인도가 따로 없어 차도를 따라 걸어야 하는데 차가 지나갈 때마다 피해야 하니 앉아서 쉴 수도 없다. 간간이 다리가 아프다 싶으면 스틱에 몸을 의지하고 배낭을 멘 채로 발목을 돌리는 정도만 하고 다시 걸었다. 맞은편에서 자동차가 쌩쌩 달려오면 나까지 끌려갈 것 같다. 생명의 위협이 느껴진다. 흙길이 빨리 나오길 소망하면서 걷는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나니 하늘이 훤해진다. 찻길 옆으론 넓은 초원에 큰 나무들이 있고 군데군데 소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게 보인다. 그렇게 4시간 이상을 걸어 11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오른쪽으로 흙길이 보인다. 반갑다. 초원 사이로 걸으며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저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것이 올리브인지라 키가 크고 우람한 나무들은 다 올리브 나무인 줄 알았다. 나무의 밑둥이 벗겨져 있었는데 병이 들어 그렇게 해 놓은 줄 알았다.
 
코르크나무-밑둥을 벗겨서 코르크로 가공
▲ 코르크나무 코르크나무-밑둥을 벗겨서 코르크로 가공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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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늦게 출발한 친구가 어느새 내 곁에서 걷고 있다. 우리는 나무 밑에 앉아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잠시나마 발의 열을 식혔다. 아침에 준비해 온 연한 미역국과 도넛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래고 다시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내 옆에는 친구가 아닌 중년의 외국인이 있었다. 그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며 그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까 본 아름드리 나무들의 이름이 궁금하여 그에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초원에 서 있던 나무들은 코르크 나무라고 답했다. 코르크 나무는 나무껍질을 벗겨도 다시 자라난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베아나'이며 53살이고,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맞아 까미노를 걷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영어가 짧아 더이상의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걸음이 느린 내가 뒤로 처지자 그는 인사를 하곤 나를 앞질러 갔다.

코르크 나무를 실물로 영접하게 되다니... 포르투갈이 코로크의 주요 생산지인 줄은 알았지만 스페인에도 코르크 나무가 지천에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물속에 피는 꽃은 연꽃종류밖에 몰랐던 지라 신기했다.
▲ 개울에 핀꽃 물속에 피는 꽃은 연꽃종류밖에 몰랐던 지라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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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물이 차가워 오래 담글 수는 없었지만 열이 식어 다시 걸을 때는 발이 상쾌했다.
▲ 개울에 발 담그기 생각보다 물이 차가워 오래 담글 수는 없었지만 열이 식어 다시 걸을 때는 발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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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걷다보면 순례하던 중에 사망한 이들을 기리는 작은 묘비들이 종종 보인다.
▲ 순례자 묘비 순례길을 걷다보면 순례하던 중에 사망한 이들을 기리는 작은 묘비들이 종종 보인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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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쯤 더 걸었을 때 개울이 나타났다. 개울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꽃들이 밥풀처럼 무더기로 피어 있었고 물은 맑았다. 친구는 이런 데선 발을 담그고 열을 식혀야 한다면서 배낭을 내려 놓고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나란히 앉아서 발을 담갔다.

봄이라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발이 시려워 더 이상 담글 수가 없었다. 물기를 닦고 양말을 신으니 발이 상쾌해서 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다 보면 순례 중에 사망한 이들에 대한 작은 묘비가 보이고 코르크나무 아래 소들도 보인다.

햇빛은 엄청 뜨겁고 목이 마르다. 무겁기 때문에 생수는 500ml 1병 정도만 가지고 다니는데, 그 물은 이미 바닥이 났다. 그리고 다 왔겠지 싶었는데, 마을이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도 않고 앞에 산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다. 팍팍해 보이는 황토빛 언덕이다.
 
완전 지쳐 있을 때 나타난 이 언덕은 산처럼 보였다. 물도 없이 기진맥진한 상태로 올라감.
▲ 산처럼 보인 언덕 완전 지쳐 있을 때 나타난 이 언덕은 산처럼 보였다. 물도 없이 기진맥진한 상태로 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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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저걸 넘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라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는 사이 순례객 한 사람이 가까이 온다. 그에게 눈앞에 있는 언덕을 넘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저 너머에 알베르게가 있다고 알려 준다.

헉! 이제는 지쳐서 걸을 힘이 없는데... 물은 한방울도 없고... 평지를 걷기도 버거운데 언덕을 올라가는 것은 고통이었다. 너무 덥고 힘이 들어 헛구역질이 났다. 
언덕을 넘어서자 마을까지 가는 길에 노란꽃밭이 펼쳐져 있다.
▲ 꽃밭 언덕을 넘어서자 마을까지 가는 길에 노란꽃밭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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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언덕을 올라서자 바로 내리막길이고 목적지인 알마덴이 보인다.
▲ 알마덴 힘겹게 언덕을 올라서자 바로 내리막길이고 목적지인 알마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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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힘을 쥐어짜서 걸음을 옮겼다. 정상에 도착하니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에선 내가 걸어온 길이 한눈에 보였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목은 바싹 타는 듯하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면서도 보조배낭 속을 뒤져 본다. 그런데 뭔가가 만져졌다. 어제 사 놓은 주스였다. 2개를 사서 하나는 친구에게 주고 하나는 가방에 넣어 놓은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모금 정도밖에 안 되는 걸죽한 주스였지만 마시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주스의 힘으로 알베르게에 무사히 도착했다. 3시 반이니 8시간 반만에 도착한 것이다.

씻고 빨래하고 나니 5시쯤 되었다. 동네에 여러 곳의 음식점이 있었지만 오늘은 피자집인 'Cafe-Pub Cabana's'로 가보기로 했다. 친구가 말하길 자기는 맛있는 음식을 잘 못 고른다며 나보고 고르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고르곤졸라 피자를 골랐다. 피자 한 판에 5유로. 얇은 씬 피자이지만 고르곤졸라 치즈가 듬뿍 올려져 있다. 심지어 짜지도 않고 간도 딱 맞는다. 맥주 두 병까지 해서 총 8유로. 계속 생각나는 맛에 가격까지 최고다.
 
함께 한 저녁-고르곤졸라피자,맥주, 카페콘레체 버거와 감자칩
▲ 저녁 함께 한 저녁-고르곤졸라피자,맥주, 카페콘레체 버거와 감자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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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쓴 돈은 알베르게 10유로, 피자와 맥주 8유로, 마트 (물과 다음날 간식으로 먹을 간단한 먹거리) 2.1유로 총 20.1유로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코르크나무, #알마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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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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