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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도봉동에는 도봉산 무수골을 아끼는 이웃들이 격주마다 모여서 생태탐방을 한다. 자연의 변화를 배우고 보호하자는 마음에서 학생, 학생 보호자, 주민들이 모여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을 이끄는 최 선생님은 10여 년 넘게 무수골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탐사해 오셨다. 선생님은 그날 특별히 호미를 가져오라고 했다. 창고에서 녹이 슨 호미를 챙기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식물을 꼭 뽑아야 해? 
 
더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힘든 내색 없이 단풍잎돼지풀을 뽑았다.
▲ 단풍잎돼지풀 제거하는 아이들 더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힘든 내색 없이 단풍잎돼지풀을 뽑았다.
ⓒ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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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중랑천 노원교 다리 밑. 쨍한 날씨에 우리는 챙이 넓은 모자와 긴바지, 코팅 장갑을 낀 채로 만났다. 내 눈에 비슷해 보이는 풀 사이로 선생님은 녹색의 단풍잎처럼 생긴 덩굴을 가리키셨다.

잎은 손가락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고, 잎의 가장자리에는 톱니 같은 가시가 있었다. 작은 삼처럼 생긴 뿌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것이 '환삼덩굴'이라며 생태교란종 식물이라고 하셨다. 환삼덩굴은 두세 걸음마다 보일 정도로 길가에 줄줄이 퍼져 있었다.

선생님은 먼저 생태교란종의 의미를 설명해주셨다. 생태교란종은 외국에서 자연적, 인위적으로 한국에 유입되어 한국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야생의 생물이라고 했다. 토종 자연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생태교란종을 제거해야 하는데 워낙 번식력이 뛰어나서 환경보호단체나 구청에서 퇴치하기에는 일손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이날 미션은 우리 주변에 있는 생태교란종을 제거하는 것.

나는 아무리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되었어도 생명이 깃든 식물을 꼭 뽑아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생태교란종의 식물은 번식력이 뛰어나 땅을 차지하는 데 독점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심각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매일 150~200종의 생물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중(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 2018~2027)인데 육지에 기반을 둔 토종식물은 20%(국립생물자원관) 감소했다고 한다.

토착종의 다양성을 위협할 뿐 아니라 토종곤충들이 갉아먹지를 않으니 곤충들이 모이지 않고, 2차 소비자인 새들까지 굶어 죽는다고 했다. 생태교란종은 천적이 없어서 먹이사슬의 질서를 무너뜨린다.
 
가시상추의 키가 3미터 정도 자라서 뽑을 때 억세고 질겼다.
▲ 고들빼기와 비슷하나 잎 뒷면에 가시가 있으면 가시상추 가시상추의 키가 3미터 정도 자라서 뽑을 때 억세고 질겼다.
ⓒ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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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돼지풀은 한해살이 식물인데 올해 사람의 키와 비교하여 얼마나 빨리 자랐는지 비교할 수 있다.
▲ 생태교란종 식물로 우거진 숲 단풍잎돼지풀은 한해살이 식물인데 올해 사람의 키와 비교하여 얼마나 빨리 자랐는지 비교할 수 있다.
ⓒ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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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골과 중랑천에 있는 생태교란종 식물은 단풍잎돼지풀, 돼지풀, 가시상추, 가시박, 도깨비가지, 환삼덩굴, 미국쑥부쟁이다. 특히 단풍잎돼지풀은 자라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서 한 해 동안 2~5m 정도로 성장한다. 잎은 3~5개로 갈라져 언뜻 보면 삼지창 무기처럼 생겼다. 가을에는 꽃가루가 날리면 알레르기성의 비염, 결막염, 기관지 천식 등으로 화분병을 일으켜서 7월 안으로 꽃이 피기 전에 집중적으로 제거해야 효과적인 식물이다.

미국쑥부쟁이는 줄기마다 갈라져서 촘촘히 꽃을 피우는데 우리나라 쑥부쟁이보다 10배 정도의 더 많은 꽃을 피운다. 그래서 꽃가루 수정의 방해 작전으로 우리나라 쑥부쟁이의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시박은 광합성을 위해 하루 사이 넝쿨이 30cm 정도 뻗어날 만큼 동물처럼 빠르게 자란다. 환삼덩굴은 수변 근처의 풀들을 칭칭 감아버려서 토양을 장악한다. 그들이 땅을 차지하는 방식은 빠르고, 압도적이었다.

하천 둔치에는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 가시상추 등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섬이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일반 사람의 키보다 두세 배는 훌쩍 넘는 줄기가 세워졌고, 한 손으로 잡으면 꽉 찰 만큼 두께가 두꺼웠다.

섬서구메뚜기처럼 흔적을 낸다면
 
3m 넘게 자란 단풍잎돼지풀. 꽃이 피기 제거해야 피부병과 비염, 알레르기를 피할 수 있다.
▲ 단풍잎돼지풀이 이룬 밀림 같은 숲 3m 넘게 자란 단풍잎돼지풀. 꽃이 피기 제거해야 피부병과 비염, 알레르기를 피할 수 있다.
ⓒ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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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천 주위에 있는 단풍잎돼지풀을 뽑기 시작했다. 뿌리는 깊지 않아서 힘껏 당기면 쑤욱 빠졌다. 단단한 뿌리는 호미로 캤다. 줄기를 자르면 금방 또 자라서 뿌리째 뽑아야 했다. 우거진 풀숲을 아이들은 뛰어 들어가 열심히 뽑았다. 2~3미터 키가 훌쩍 자란 단풍잎돼지풀을 제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바람을 가르는 무사처럼 날렵해 보였다.

열 명이 두 시간 정도 뽑고 또 뽑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몇 걸음만 옮겨도 삐죽빼죽 가시상추가 보였고, 돼지풀이 있었다. 빽빽하게 우거졌던 풀숲에서 조금씩 맨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잠시 쉬라는 만류에도 아이들은 멈출 수 없다는 듯 이어갔다. "더 하고 싶어요. 내일 또 와서 해요." 아이들은 순수하게 이 노동을 즐기는 것 같았다. 뿌리가 깊으면 아이들이 협동작전으로 같이 뽑아냈고, 줄기를 잘라서 물관을 관찰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학습적으로 효과가 있었을 뿐 아니라 협동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때 한 아이가 외쳤다.

"여기 단풍잎돼지풀잎에 구멍이 송송 뚫렸어요!"

선생님은 섬서구메뚜기가 단풍잎돼지풀을 갉아 먹은 흔적이라고 하셨다. 초록색 작은 메뚜기가 막 돋아난 연한 단풍잎돼지풀을 이제 먹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구멍 난 잎사귀를 보면서 우리가 섬서구메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미비한 효과일지라도 우리가 서 있는 자리만큼 흔적을 남기는 작은 메뚜기들.

서울시에서 5월부터 8월까지 생태계 교란 동·식물 집중제거기간'을 운영한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꾸준히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 애쓰는데 전국적으로 섬서구메뚜기처럼 흔적을 내면 생태계의 균형이 점점 회복되지 않을까. 어디선가 풀밭을 뛰어오르는 섬서구메뚜기를 상상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숲을 이루고 있다. 매년 잘라내고 뽑아내도 갈수록 무성해지는 생태교란종의 번식력.
▲ 하천 중심에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 가시상추로 생긴 섬이 솟아났다. 끝이 보이지 않게 숲을 이루고 있다. 매년 잘라내고 뽑아내도 갈수록 무성해지는 생태교란종의 번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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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생물교란종, #단풍잎돼지풀, #생태계, #토착종보호, #섬서구메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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