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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불법촬영물에 대한 불필요한 임의제출 원칙 때문에, 별건 피해 영상물 확보를 통한 추가 피해 입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봤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불법촬영물에 대한 불필요한 임의제출 원칙 때문에, 별건 피해 영상물 확보를 통한 추가 피해 입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봤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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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5일 오후 4시 경기도 의정부역 5번 출구.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여성의 뒤편에 붙어 치마 속을 불법 촬영하던 범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의 휴대전화 속에는 당일 불법 촬영물 뿐 아니라, 그 해 2월 15일부터 두달 간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등에서 촬영된 321개의 또 다른 범죄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현장에서 범행을 시인한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에게 직접 불법 촬영을 저지른 47건의 추가 범죄사실을 기록해 제출하기도 했다. 

1심에선 4월 25일 범죄와 그 전 범죄 47건까지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반전은 항소심에서 일어났다. "다른 촬영물은 임의제출 동기가 된 혐의 사실과 객관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321건의 추가 범행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압수한 휴대전화를 탐색할 때, 피고인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들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위원장 변영주, 이하 전문위)는 이처럼 불법촬영물에 대한 불필요한 임의제출 원칙 때문에, 별건 피해 영상물 확보를 통한 추가 피해 입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봤다. 판사 재량에 따라 제출 기준을 판단하기 때문에, 판결도 오락가락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추가 영장 받는 사이 확산되는 'n차 피해'

전문위는 12일 9차 권고안을 통해 "임의제출 동기가 된 혐의사실과 관련성 있는 범위에만 미치므로, 별건 피해 영상물을 확보하기 위해선 즉시 탐색을 중단하고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며 영장을 받는 동안 증거인멸과 소실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전문위는 이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이 명백한 촬영물, 편집물,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에 대해 영장주의 예외로 독립적이고 긴급한 압수 수색을 허용해야 한다"면서 형사소송규칙에 '체포 또는 구속과 독립된 영장에 의하지 않는 강제처분' 규정을 신설하고, 관련 범죄에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이날 권고 취지는 '의정부역 사례'에서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파기환송하며 내린 판단과도 연결된다. 대법원은 47건의 이전 범행은 그 방식이나 시점을 고려했을 때, 당일 범죄의 연관성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같은 범죄의 연장선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나머지 범행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 판단에는 임의제출 범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는 결론이다. 

디지털 성범죄 불법영상물에 대한 '오락가락' 판결은 범죄물의 몰수 및 추징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피해 영상물이 담긴 휴대전화 등에 대한 몰수 규정이 임의로 규정돼 있어서, 몰수 판결 없이 판시돼 2차 유포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위는 이에 영상물 및 저장매체와 관련 범죄 수익에 대해선 임의가 아닌 필요적 몰수 및 추징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평생에 걸친 피해'... "범죄발생부터 10년 지나도 피해자 지원 가능하도록" 
 
디지털 성범죄 근절 캠페인 포스터
 디지털 성범죄 근절 캠페인 포스터
ⓒ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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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위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성범죄의 경우, 그 피해가 시간 제약 없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막기 위한 '디지털 장의' 비용이 막대한 실정이다. 이를 피해자 개인이 감당하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 

전문위가 법무부 예산 항목 중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에 따로 피해 영상물 삭제 비용 및 생계비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 사업 항목을 별도 편성할 것을 권고한 까닭이다. 

전문위는 "2020년 디지털성범죄발생 건수는 전년대비 79.6%p가 증가했는데,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피해자에 지급된 경제적지원금은 전체 지원금 대비 1.92%에 불과했다"면서 대검 예규에 기재된 범죄 피해자 경제적 지원 업무처리 지침에도 디지털 성범죄를 명시하고, 범죄 발생일로부터 10년이 지나도 지원을 개시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전문위는 특히 '전면 배상'을 법에 규정한 미국의 2018년 제정된 아동포르노 피해자 지원법 일명 '에이미, 비키와 앤디법' 사례를 들면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없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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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권고안 : 성범죄피해자 '두 번 고통'에 "원스톱 창구·독립기구 마련" http://omn.kr/1vg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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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권고안 : 온라인 성착취... 늘어나는 '비접촉' 성범죄, 처벌은? http://omn.kr/1x3x9
6차 권고안 : 피해자에 "성경험 있냐" 묻는 판사, '있는 법으로 충분' 하다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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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권고안 : "감방 가도 원본 남는다면", '성착취물' 수사 검사들의 걱정 http://omn.kr/1xv7r
8차 권고안 : 고소장에 성적수치심 꼭 써라? '이상한 법령'에 갸우뚱한 피해자들 http://omn.kr/1xzaj

태그:#디지털성범죄, #법무부, #불법촬영, #피해자지원,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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