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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7일 오후 1시 40분]
 
‘경남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위원회’는 7일 아침 창원시립상복공원에서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제”를 열었다.
 ‘경남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위원회’는 7일 아침 창원시립상복공원에서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제”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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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위원회’는 7일 아침 창원시립상복공원에서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제”를 열었다.
 ‘경남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위원회’는 7일 아침 창원시립상복공원에서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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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교원노조 활동하다 해직된 뒤 평생 평화·통일을 외쳐온 고(故) 김지영 선생이 끝내 조국통일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향년 89세.

경남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위원회는 7일 오전, 창원시립상복공원에서 통일애국지사 고 김지영 선생 추모제를 열었다. 고인은 지난 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1933년 창원에서 태어난 선생은 옛 부산수산대(현 부경대)를 나와 1958년 울산에 있는 중학교에서 생물교사로 교단에 섰다. 이후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근했던 고인은 1960년 4.19혁명 직후 결성된 교원노조에 함께했다.

그는 나이 31살에 부산 중등 교원노조 상임집행위원을 맡았고, 교원노조 활동을 벌였다.

추모위원회는 당시 "이승만 정권 때 국가보안법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4.19혁명 뒤 만들어진 교원노조는 국가보안법 반대를 외치고 남북학생회담 성사를 외쳤다"며 "5.16쿠데타가 일어나기 이틀 전 판문점에서 남북 학생 대표들이 회합을 하기도 했다. 교원노조는 남북 학생 회합을 지지했던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교원노조를 탄압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고인은 생전에 이렇게 증언하기도 했다. 

"5‧16쿠데타가 터진 뒤 교원노조는 바로 탄압을 받았다. 저는 그때 부산에 있었고, 교원노조뿐만 아니라 혁신정당과 각급 노동단체 간부들도 영장 없이 예비검속에 걸렸다. 부산의 한 장소에 모였는데 1천 명은 넘었을 것이다.

대개 5월 18일부터 5월 20일 사이에 붙잡혀 왔다. 제헌절(7월 17일)에 풀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와서 교단으로 복귀한 사람들도 있었고, 한 10% 정도는 군사쿠데타 정권이 시키는 대로 가르칠 수 없다고 해서 교단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김지영 선생은 1961년 대전형무소에 구속됐고 이후 공주로 이감되어 2년간 복역했다. 이때 그는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1963년 출소 이후 서울에서 구두 수선으로 생계 유지하다 1970년대 부산에서 제화공장을 설립하기도 했다.
 
고 김지영 선생. 2013년 10월 25일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고 김지영 선생. 2013년 10월 25일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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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고인은 창원에서 자주민주통일 활동을 벌였다.

김지영 선생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회원, 옛 민주노동당 창원시위원회 북면분회장, 옛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노년위원장을 지냈고, 진보당 경남도당 고문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고문으로 있었다.

고인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논란이나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2013년 11월 5일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 관련 발언을 통해 "뭉쳐야 한다. 저 사람들이 노리는 것은 이간질이며 분열이다. 전교조를 다른 단체로 분열하려고 생각한다. 분열하지 말고 뭉치면 법외노조라도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강문수 부산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대표, 박봉열 진보당 경남도당 위원장, 조형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김재명 범민련 경남연합 의장, 노경석 전교조 경남지부장이 각각 추모사를 통해 고인을 기렸다.

고인의 막내 며느리는 유족인사말을 통해 "서울에 살고 있는데 하루는 아버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오라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같이 소성리(사드 배치)에 가서 힘을 보태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진보통일평화운동을 하시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순일 시인이 쓴 추모시 전문이다.

꽃은 피고 지고 - 김지영 선생님 영결에 부쳐

이순일

사월에는 / 피는 꽃도 있고 / 지는 꽃도 있다오 / 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 영면(永眠)하는 구순까지 / 나뭇가지들 푸른 하늘 그리듯 / 조국통일 그리워하셨네 / 자주 없이 통일 없고 / 통일 없이 평화 없다 / 일천구백육십년 교원노조에서도 / 대전, 공주 형무소에서도 / 외세의 노예로서는 / 행복한 개인도 / 대동 겨레도 될 수 없다고 / 확고하였다 / 범민족연합전선에서도 / 평화통일을여는사람들에서도 / 한 사람 두 사람 안아서 / 한 발 두 발 전진하여 / 통일전선으로 / 새 세상으로 / 지도부가 정확해야 / 한 사람이 둘이 되고 둘이 다섯이 된다오 / 아, 그날은 언제 올까? / 두 손 꼭 잡으며 / 희망을 잃지 말자던 / 사선(死線)을 넘던 / 전사는 떠나네 / 소성리를 걱정하며 떠나네 / 꽃비 맞으며 떠나네 / 지는 꽃이 있으면 / 피는 꽃도 있다오 / 희망을 피우는 것은 / 후대, 그대들 몫이라오.

태그:#김지영 선생, #조국통일, #민주노동당, #교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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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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