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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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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막을 내린 지 어언 한 달째다. 겨울에서 봄으로, 무심한 계절변화와 관계없이 정치권에는 미묘한 기류가 감돈다. 더불어민주당은 좌절과 초조함, 국민의힘은 설렘과 기대가 교차한다. 두 진영 사이 미세한 긴장은 5월 10일 대통령 취임을 기점으로 본격화할 것이다.

그동안 대선 결과를 놓고 수많은 분석과 진단이 봇물을 이뤘다. 패자인 더불어민주당은 여러 단위에서 패인을 살폈다. 부동산을 포함한 정책 실패와 오만, 내로남불, 위선, 진영논리, 건전한 비판 문화 실종 등이 지목됐다. 이 모든 패인을 뭉뚱그려 집약하자면, 민주당에 주어진 과제는 '변화'와 '개혁'이다. 그런데 절박함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윤호중 비대위 체제나 송영길 서울시장 출마를 보노라면 한가하다는 느낌이다.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서울시장 출마, 다른 한 사람은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스스로 면책한 꼴인데, 이는 자신에게 유독 관대한 '내로남불'이 아닌가. 

성찰은커녕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두고 당내에서조차 부정적 기류가 일고 있다. 용퇴 압박을 받았던 86그룹은 "하산 신호를 내린 기수가 갑자기 나홀로 등산을 선언하는 데서 생기는 당과 국민의 혼선을 정리해줄 의무가 있다"(김민석 의원)면서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비판하는 분위기다. 스스로는 희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보인다. 

세대교체 하자던 송영길... 서울시장 출마는 정치개혁인가 

송영길 전 대표는 얼마 전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86세대 용퇴론에 물꼬를 튼 기득권 내려놓기로 이해됐다. 그러나 시장 출마로 말을 뒤집어 과거 약속은 선거용 술책에 불과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총선 불출마는 정치교체이며, 서울시장 출마는 정치개혁이라는 건지 아리송하다. 

필자는 이를 '아전인수식 자기면책'이라고 본다. 이런 대처는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겹친다. 당시도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안일하게 1년을 보냈고, 그 결과는 대선 패배였다.

민주당의 '전국선거 4연승'은 4.7 재·보궐선거에서 깨졌다. 당시 민주당은 서울과 부산 41개 기초 자치구에서 한 곳도 이기지 못했다. 적게는 18%p에서 많게는 25%p 차이로 패배했다. 특히 서울은 국회와 자치단체장, 시의회까지 장악하고도 참패했다. 그런데도 민심을 헤아리지 못했다. 180석을 도깨비 방망이로 착각한 걸까.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 입법 독주, 내로남불, 위선을 반복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이 이번 대선 패배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6.1 지방선거는 물론 22대 총선도 장담키 어렵다. 

호남에서 민주당 현실은 한층 한심해 보인다. 경쟁이 없다 보니 반성도 치열함도 없다. 그들에게 경쟁은 공천 경쟁을 의미한다. 후보가 충성할 대상은 유권자일까, 공천권을 쥔 중앙당 인사일까.

호남은 40여 년간 민주당이 독식한 지역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단맛에 젖어 있는 동안 지방권력은 독점화됐고 정체와 퇴보를 거듭해 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호남은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됐다. 지방권력은 민심을 두려하기는커녕 오만하기까지 하다. 송하진 전북도지사 3선 출마와 대항마가 없는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호남이 얼마나 '고인 물'인지 보여준다.

필자는 오히려 보수 성향이 강한 영남 지역에서 '변화'의 기류를 감지했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에선 권영진 시장이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대구시장으로서 소명과 역할은 여기까지다. 남은 과제는 다음 시장이 완수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역 시민단체가 낙천운동을 벌이고 있음에도 3선 출마를 선언한 전북도지사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또한 황야나 다름없는 경남에서 민주당 청년 정치인들이 보인 행보가 돋보인다.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신상훈(32), 함안군수 출마자 장종하(37), 하동군수 출마자 강기태(38)가 상징적이다.

국민의힘에 있는 절박함과 치열함이 민주당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만일 민주당이 지도부를 일신하지 못하고 호남 기득권에 안주한다면 지방선거 참패는 예약돼 있다. 왜 대선에서 패했는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냉정하게 복기하고 변화해야 한다.  

찰스 다윈은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했다. 변화하지 않는 정당은 정체되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개혁도 가능하다. 86정치인 중 한 명인 김영춘은 지난 3월 21일 "거대담론 시대가 가고 생활정치 시대가 왔다. 이제 정치인의 생활을 청산하고 국민 속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관련 기사: 86세대 김영춘 "시대가 변했다, 정치 그만둔다").

오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민심에 부응하는 길은 '변화'와 '개혁'이다. 공천 기준도 여기에 두어야 한다. 혁명은 보이는 적과 싸움이며 개혁은 보이지 않는 나와 싸움이다. 민주당은 언제까지 쉬운 싸움만 할 것인지 치열하게 되물어야 한다. 180석이란 혼곤한 잠에서 깨어야 새 길이 열린다. 죽은 물고기만 강물에 떠내려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아주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86세대 용퇴론, #송영길 서울시장 출마, #호남 기득권, #찰스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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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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