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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은 '시민이 직접 시민의 건강을 위한 백신(정책)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시민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건강정책을 개발하는 '시민백신연구소'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은 "시민이 직접 시민의 건강을 위한 백신(정책)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시민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건강정책을 개발하는 "시민백신연구소"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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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대통령 선거까지 70여 일 앞둔 가운데, 양당 주요 후보들이 '가족 리스크'에 휩싸이며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비전과 정책이 실종된 채 검증을 빌미로 네거티브 선거전만 이어지고 있고 유권자들의 실망감 역시 커지고 있다.

검증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상호 검증하고 경쟁해야 할 것은 코로나19 이후 민생이다. 국가 경제는 어떻게 살릴 것이고,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계층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등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킬 비전과 가치,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방향타를 돌려야 한다. 그리고 너저분한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지는 무미건조한 정책이 아니라 땀과 눈물이 뒤섞인 채 실제로 쓸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현장감 넘치는 상상력을 낚아야 한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차를 팔고 싶다면 차를 살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장 조사를 하듯 정책을 만든다면 그것을 쓸 시민들에게 처음부터 의견을 물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타인과의 접촉, 대면, 관계와 연결에 대한 크고 작은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다.

불안과 위험이 초래한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그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희망을 갖고 있는지 직접 듣고 싶다는 욕구는 자연스런 현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은 '시민이 직접 시민의 건강을 위한 백신(정책)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시민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건강정책을 개발하는 '시민백신연구소'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시민백신연구소' 프로젝트는 시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일상생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어떤 지혜와 슬기로움을 발휘하면서 불안과 위험을 극복하고 있는지 시민들이 직접 제안한 변화에 대한 대응방법을 정리해서 공유하는 플랫폼을 지향했다. 시민의 생활 속 아이디어를 통해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호기심과 유연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한국인의 문제 해결 능력에 다시 한번 놀라는 계기였다.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고 그야말로 아이디어의 보고(寶庫)였다. 보통 한국인은 양극단의 정서를 함께 가지고 있어 '빨리빨리'와 '은근과 끈기'가 있고 '한'과 '흥'의 정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두 개의 정서가 정반대에 있지만 서로 다른 기질이 짝을 이루고 정서적인 근원이 되고 발원지가 되어 극단의 창조성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기질이 '문제 해결 능력'으로 이어져 한국인 특유의 '슬기로움'을 만들어낸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한쪽에서는 모이지도 만나지도 말라고 격리와 단절을 강요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양 극단의 중간지대를 만들어 충돌을 피하고 있다. 공원에서 충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배달음식을 시켜 분위기 좋은 외식을 동시에 추구하는 식이다.

이러한 극단과 극단을 끌어안아 융복합하는 경향은 한국인의 중요한 기질적 특성이다. 다른 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한국인은 양극단의 섞임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상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 보자.

[#1] 양 극단의 중간지대에 답을 찾는 사례

1인 가구 공유부엌. 폐쇄의 이미지를 가진 1인 가구에 개방의 이미지를 가진 공유부엌을 결합하면 미래의 정책대안이 만들어진다. 폐쇄와 개방의 절묘한 조화는 만남과 건강을 융합한 좋은 사례다. 코를 쥐게 하는 냄새에서 군침 돌게 하는 냄새로 바뀐 젓갈 같은 정책제언이다.

거기에 향후 1인 가구가 압도적 대세가 될 전망이니 미래지향적이기까지 하다. 정책화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키워드이고 다른 정책과 패키지로 추진하면 폭발력이 클 아이디어다. 1인 가구 공유부엌을 다른 정책들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지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의 접목이 기대된다.

[#2] 완충지대를 만들어 충돌을 피한 사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일상생활과 취미생활 대부분을 집에서 하고 있는 '홈 루덴스'(Home Ludens)라는 말이 생겨났다. '놀이하는 인간' 곧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파생된 이 말은 외부활동보다는 집에서 놀이하는 인간을 뜻하는데, 재택근무가 늘고 원격수업이 많아지면서 많은 갈등이 가정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전문가가 개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혹은 활용 가능한 가족놀이 키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집콕 가족놀이 키트', '가족소통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갈등을 놀이로 바꿔달라는 시민들의 니즈에 구체적인 정책으로 응답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일반화되면서 학업성적이나 입시 대비가 사교육으로 많이 대체되고 있고, 학생 간 '학습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IT 수업 도구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신설하여 어떤 학생도 교육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주관식의 개성시대를 사는 급격한 변화 속 위기에서도 학습격차의 확대에 느린 정답이 아닌 빠른 응답으로 대처해야 한다.

[#3] 조각조각이 모여 커다란 하나를 만든 사례

어떠한 큰 변화, 혜택을 기대하기보다는 우리가 속한 동네에서 건강한 생활들을 영위할 수 있고, 그 건강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면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네 인프라, 적립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눈에 띄었다.

건강이 전 국민의 관심사로 자리 잡은 시대에 보건복지부에서도 8월부터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는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3년간 시범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건강 인센티브제'라 불리는 이 제도는 개인 스스로 건강관리를 통해 고액의 중증질병 발생을 예방하고 질병으로 인한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도 감소시키자고 도입한 제도다.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에 더해 관계건강, 그리고 금전적 인센티브까지 챙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동네의 '건강부자'가 따로 없는 것이다.

최근 '얼리케어 신드롬(early-care syndrome)이라고 해서 치료에서 예방으로 바뀌는 건강관리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2030세대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젊은 세대들의 바람이 대단히 높은 현실이 여기에서도 확인되었다. 높아진 자기 관리, 건강 관심에는 노인과 젊은이가 따로 없었다.

개인으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지만 개인이 모여 건강한 공동체로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소상공인들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아이디어도 있다. 소상공인들을 착취하는 플랫폼이 아닌 공정하고, 희망을 품고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공공커머스 플랫폼'을 만들어 달라는 의견이다.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 스마트스토어를 지원하고 적정수수료 부담으로 적정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심리상담과 같은 정신건강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자영업자 간 전문성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역할로서 플랫폼을 활용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4] 양 극단 요소를 융복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역동성을 만들어 낸 사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어려운 저울추에 놓인 워킹맘, 워킹대디를 위해 눈치 보지 않고 마음 놓고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도록 'SOS 등하원 서비스'를 제안하였다. 코로나19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여 긴급 가정 돌봄이 필요할 때, 앱으로 신청해서 자녀 등하원 동행서비스를 신청하거나, 돌봄 선생님 방문을 요청하는 등의 긴급 돌봄지원정책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융복합 세상의 첫걸음인 메타버스에 대한 요구도 빠지지 않았다. 메타버스란 확장된 가상세계를 뜻하는 말로, 초월 혹은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신조어다. 사용자의 오감 정보를 실감 나게 구현하여 가상과 실제의 구분을 없애 준다. 메타버스 학교, 온라인 수학여행 등 오프라인이 아니더라도 안전한 비대면 상황에서 실제로 체험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니즈에 어떻게 응답할지 다음 단계의 아이디어가 요구된다.

건강이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이 되고 있는 요즘,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이제 더 이상 건강은 개인, 질병, 치료에 국한된 개념이 아님을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개인의 신체건강뿐 아니라, 코로나 블루와 같은 정신건강, 일자리, 돌봄, 소득, 교육 등 다양한 일상 영역까지 침투하여 타격을 주고 있다.

'보다 건강한 일상, 보다 건강한 서울을 만드는 건강정책'이라는 주제로 모집한 상기의 시민 아이디어만 살펴봐도, 기존의 건강이 가진 개념을 넘어 가정, 학교, 직장, 병원, 동네를 중심으로 일상 속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정책 영역에서 건강이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 경제 및 사회적 환경과 관계없이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로 정의하고 있다. 즉, 건강이 다른 모든 권리들에 앞서 기초적으로 보장돼야 할 인권임을 내세운 것이다. 시민들은 인권으로서의 건강을 이미 체득하고 이를 정책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정책 실현으로 시민 요구에 부응할 차례이다.

2022년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정책이 소통되고 경쟁하는 공간이 활짝 열리는데 정책은 간데없고 네거티브만 난무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시민들의 귀중한 생활 속 아이디어를 재료로 치열한 정책선거가 펼쳐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태그:#선거공약, #건강정책, #시민 정책제안, #시민백신연구소, #서울시공공보건의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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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강사, 사회정책 박사. 일본 사회정책 전공, 사회보험 전공, 전 공무원연금개혁 국민대타협기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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