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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과 가을, 조용하던 산골마을이 채석장으로 변한 듯 날마다 암반 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을 바로 앞을 흐르는 개울에서 바위 깨는 소리다. 개울이라 하지만 지리산 계곡에서나 볼 수 있는 너럭바위, 크고 작은 명품 바위가 곳곳에 널려 있는데 그 바위들을 모두 깨서 자잘한 잡석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중이었다. 마을에 '홍수예방을 위한 소하천 정비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큰 바위가 널려있는 두가천
▲ 두가천 모습 큰 바위가 널려있는 두가천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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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마을은 '팔십 평생, 마을에 홍수 나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연세 높은 마을 분들이 증언하듯 홍수와는 거리가 먼 마을이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마을 앞개울을 지나 섬진강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까닭으로 여름 장마철 폭우가 쏟아질 때면 개울물이 잠시 불어나고 어쩌다 넘치는 수는 있어도 마을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적은 없다.

그런데 이웃마을의 소하천 정비사업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 마을 차례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용역회사의 번듯한 청년들이 마을에 들어와 일사천리로 주민설명회를 열고, 토지보상 공고가 나고, 수용된 땅에 붉은 깃발이 꽂히더니 마침내 거대한 포크레인과 중장비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붉은 깃발이 꽂힌 논밭은 파헤쳐져 그곳의 검은 흙이 수없이 드나드는 큰 트럭에 실려 나갔다.
 
두가천 정비사업으로 마을모습이 변하고 있다
▲ 파헤쳐진 문전옥답 두가천 정비사업으로 마을모습이 변하고 있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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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역사가 300년이 넘었으니 그 논밭이 적어도 백년 이상은 되었을 터다. 집 바로 앞 논은 그야말로 문전옥답이었다. 돌멩이 하나하나 손으로 쌓아올린 논둑 밭둑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야 마땅할 예술작품이나 다름없었다. 논밭의 흙은 마을 분들이 해마다 거름과 퇴비를 져 날라서 가꾼 기름진 흙이었다. 그러한 논밭이 사정없이 파헤쳐지고 자식 같은 흙이 실려 나가는 것을 보는 심정은 누구라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시간의 흔적이 담긴 논둑이 사라졌다. 다시는 볼 수 없다.
▲ 오래된 논둑  시간의 흔적이 담긴 논둑이 사라졌다. 다시는 볼 수 없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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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드디어 개울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수로 공사로 군데군데 가려졌던 너럭바위들이 제대로 드러나자 일품이었다. 마을 계곡 치고 이만한 바위가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바위들이 사정없이 죄다 깨져나가 자잘한 돌멩이가 되었다. 그 중에는 바위가 꽤 깊은 소를 이루어 예전 이 마을로 시집오는 각시가 가마타고 들어오다 가마가 흔들리는 바람에 그 소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각시툼벙'도 있다.
 
개울에 있던 크고 아름다운 바위를 모두 깨서 자잘한 돌멩이로 만들었다.
▲ 잡석이 된 바위 개울에 있던 크고 아름다운 바위를 모두 깨서 자잘한 돌멩이로 만들었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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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이라도 건설하듯 개울을 깊이 파내려 가는데 겉으로 드러난 바위들을 깨고 나면 그 밑으로 다시 큰 암반이 드러났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 형성된 암반일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흙과 바위와 자잘한 돌과 물과 마을을 떠받치며 엎드려 있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바위가 아무리 무생물이라지만 그처럼 무참히 끌려나와 깨뜨려지는 광경은 처참했다. 바위에 함부로 붉은 줄이 그어지고 드릴로 구멍을 내어 깨뜨릴 때 나는 처절한 소리는 바위가 마지막 내지르는 비명처럼 들렸다.
 
바위에 붉은 줄을 긋고 구멍을 뚫어 깨뜨린다
▲ 깨지는 바위 바위에 붉은 줄을 긋고 구멍을 뚫어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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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개울은 큰 바위가 있는 곳도 있고, 중간 중간 작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마주 보며 다정하게 서있는 곳도 있다. 나는 건너편 놋쩡골에 가거나 또랑갓집에 갈 때는 징검다리가 놓인 개울을 건너서 갔다. 구십 가까운 송정댁도 이 징검다리를 건너 개울 건너편 밭에 다니셨다.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아기자기한 개울을 보면 말할 수 없이 정겹다.

물풀과 수초들이 자라고 개울 따라 버들강아지며 억새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풀과 나무들이 자란다. 물속에는 다슬기는 물론이고, 마을 분들이 '피랭구'라고 하는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 새끼들이 헤엄치고 자라고 알을 낳는다. 이른 봄이면 갓 부화한 올챙이와 개구리들이 개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개울 건너편에 사는 마을 분은 밤이면 수달이 올라오는 것을 여러 번 봤다고 한다. 때로는 백로가 올라오기도 한다. 근처 숲에는 희귀종 부엉이도 있고 황금박쥐도 있다.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모습
▲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모습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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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천에 백로가 올라왔다
▲ 두가천에 올라온 백로 두가천에 백로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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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천에 널린 다슬기
▲ 두가천에 널린 다슬기 두가천에 널린 다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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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 맞닥뜨린 대 공사로 이 개울이 없어지고 마을입구 계곡도 사라져 버렸다. 깊고 깊은 수로를 파서 콘크리트 기초를 놓고 평평해진 바닥과 벽에 시멘트로 편석을 붙이고, 거대한 철골 시멘트 다리를 일곱 개나 놓는다고 한다.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이 사라지고 높은 다리가 건설되고 있다
▲ 징검다리 있던 곳에 들어서는 다리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이 사라지고 높은 다리가 건설되고 있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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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인구가 30여 명 정도이고, 그나마 고령화로 주민이 점점 줄어드는 마을이다. 물론 적은 인원이 살아도 홍수피해를 당하면 안 되겠지만 비교적 안전한 지형의 작은 산골마을에 수십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토목공사를 벌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지, 자연 암반과 바위와 풀, 나무 등이 적절히 유속 조절해주는 곳을 굳이 댐처럼 깊게 파서 벽과 바닥에 평평한 돌을 붙이고 높은 다리를 놓고 문전옥답에 포장도로를 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공사가 끝나면 마을은 어떤 모습이 될까.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좋게 되겄지.'

마을 사람들은 막연히 마을이 좋아지리라는 기대를 품는다. 더구나 보상비로 마을에 46억 원이 풀렸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이미 좋고도 남았다. 산골 농지로는 절대로 받을 수 없는 금액을 받았다고 배를 두드린다. 보상비가 땅값을 올려놓은 것이다.

나랏돈으로 이 작은 산골마을까지 알뜰히 챙겨서 큰 공사를 해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나랏돈이 우리가 낸 세금 아닌가. 작년 섬진강 방류로 인한 금지, 곡성, 구례 지역 대홍수 참사는 아직 보상을 못 받았는데 산골마을 공사는 착착 진행이 된다. 공사가 끝나서 길이 훤히 나면 땅값이 더 오르리라는 기대도 만만치 않다.

마을 공사가 끝나면 마을은 이전 마을이 아닐 것이다. 토목공사로 건설회사 배부르고 마을 주민은 땅값 올라서 좋은 사이,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과 때 묻지 않은 오래된 마을 하나가 사라지는 참이다. 이 개울에 살던 온갖 생물들은 다 어디로 갈까. 수달이 다시 올라올 수 있을까. 갈 곳을 잃고 두리번거리는 수달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

태그:#지방하천정비사업, #곡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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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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