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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오래전부터 협회 차원에서도 개선을 촉구해 왔지만, 여전히 20명을 넘기는 일은 허다하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오래전부터 협회 차원에서도 개선을 촉구해 왔지만, 여전히 20명을 넘기는 일은 허다하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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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간호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간호사들에게 병원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달 단위로 빡빡하게 돌아가는 3교대 속에서 내가 아프면 누군가는 대신 나와야 하기에 내 몸이 부서질 듯해도 내색하기 어렵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오래전부터 협회 차원에서도 개선을 촉구해 왔지만, 여전히 20명을 넘기는 일은 허다하다. 설령 당장 그만두고 싶어도 나를 대신할 인력을 뽑고 교육하는데 걸리는 두 달 정도는 내가 채워주고 떠나야 한다는 게 간호사 세계의 불문율이다.

게다가 신규간호사는 쉬는 날에도 갖가지 병원 내 교육과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태움(직장 내 괴롭힘)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버티는 간호사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악질적인 근로 환경과 조직 문화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다. 한두 번이면 개인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제는 전근대적인 병원조직도 우리 간호사들도 변해야 할 때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태움'이란 단어가 마치 신조어처럼 굳어졌다. 내가 간호대학을 다니고 병원에서 일하던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간호사 집단에서만 흔히 통용되던 은어 정도였다. 그 시절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태움이 무섭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간호학생 때 임상실습을 하다가 한 경력간호사가 고무줄로 동여맨 빨간, 검정 볼펜을 손에 쥐고 신규간호사의 머리를 콩콩 내리치며 질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말로만 듣던 태움이구나' 싶었다.

숨긴다고 가려지지 않는 것이 진실이라고 태움의 그림자도 오래지 않아 만천하에 드러났다. 악담, 폭언, 폭행 등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들의 비보가 심심찮게 뉴스기사로 보도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주말 또다시 경기도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7개월차 신규간호사가 기숙사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 순간 난 여러 생각에 잠겼다.

태움을 해결하기 위해선 법이나 사회제도 차원의 장치도 분명 필요하지만, 간호사 개개인 차원에서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태움을 실제로 보고 듣고 겪은 사람으로서, 태움 하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먼저 올챙이 시절을 겪어본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고 보듬어 주는 게 도리다.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서툴게 몸과 마음을 쓰다가 실수를 하면 몰아붙이지 않고 안아주듯이 말이다.

타보면 알게 된다

태움을 한 번이라도 당해본 사람은 태움을 경멸하게 된다. 내 경우는 그랬다. 의료 현장에서 신규간호사에게 경력간호사가 자행하는 태움은 한 사람을 인간성을 짓밟는 행위였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나는 태생이 명랑쾌활과 인사성은 타고났지만, 눈치는 꽝이었다. 이런 내 성향은 병원에서 신규간호사로 살아남는데 큰 핸디캡이 되었다. 혼이 나도 뒤돌아서면 웃으며 질문을 하니 반성도 없고 속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실상은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싫어서 뻘쭘함을 무릅쓰고 그랬던 거였을지라도.

먼저 달려가 선물로 들어온 과일을 깎아 간식상을 차리고, 점심으로 먹을 메뉴를 선택해서 배달주문을 해야했지만 그런 건 영 젬병이었다. 또 선배가 물으면 그저 "다시 알아볼게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해놓겠습니다" 하면 되는데 억울한 상황을 설명하다 보니, 말대꾸하는 당돌한 신규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단언컨데 내 언행에는 절대 나쁜 의도가 있지 않았다. 갓 대학을 졸업해 사회생활을 몰랐을 뿐.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는 환자를 돌보는 것만큼이나 인간관계가 중요했다. 3교대를 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인수인계를 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조금은 덜 타면서 신규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까.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3년을 보낼 것 같다.

어느 날 힘든 것 있냐고 물어본 선배의 관심에 마음을 열고 털어놓은 이야기는 당사자의 귀에 들어갔고, 되려 미움만 더 받게 되었다. 어떤 선배는 선약이 있었던 내가 퇴근 후 같이 밥을 먹자는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어떤 선배는 "너 같은 애가 병원 오래 다니더라"하며 뜬금없이 비아냥거렸다. 나에게는 선배들과의 조화를 담당하는 마음의 장치가 빠진 것 같은 불행한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과의 인간관계는 정답이 없는 문제처럼 날 졸졸 따라다니며 힘들게 했다. 진정으로 내 손을 잡아주는 선배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외롭고 절망스러운 나날 속에서 병원을 오가며 나는 홀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병원 문을 나서면 난 간호사가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나한테는 꽤 효과가 있는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었다. 병원에서 쭈구리처럼 지낸다고해서 본연의 나까지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 밖에선 한껏 꾸미고 친구도 만나고, 클래식 기타도 배우고, 책도 읽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며 최대한 나답게 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무엇보다 태움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내가 간호하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이었다. 한 엄마는 병동 끝 코너에 숨어 액팅카트 앞에 서서 숨 죽이며 울고 있는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선생님, 넘 우울해하지 마세요. 저 간호사들도 예전에 다 똑같았어요." 소아암병동에는 아무래도 장기환자가 많아서인지 한 간호사의 성장기를 쭉 지켜본 엄마들도 종종 있었기에 가능한 위로였으리라. 태움과 지침 속에서 가장 많이 한 다짐은 '난 누구보다 병원 오래 잘 다닐 거고, 적어도 후배들 태우는 간호사는 안 될 거야'였다. 난 경력간호사보다는 어엿한 선배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눈을 가리고 걸어보자

5년차가 되던 해, 공교롭게도 병원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리셉터 교육을 받게 됐다. 돌아보면 임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선배간호사의 자세를 생각해보고 배울 기회가 있었던 것이 참 다행이다. 프리셉터는 신규간호사인 프리셉티를 1:1로 도맡아 임상실무교육을 하며 진짜 간호사로 키워주는 어미새와 같은 역할을 한다. 프리셉터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지식과 기술을 전수할 만한 충분한 경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추위가 여전하던 3월 중순, 나와 비슷한 연차의 간호사들은 의대 건물 앞에서 모여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를 타고 함께 경기도의 깊은 산 속에 있는 연수원으로 향했다. 나는 4년동안 함께 동고동락한 병동 동기와 교육에 참여했다. 가물가물한 교육일정들 중에서 유일하게 또렷이 기억나는 체험이 있다. 바로 '눈 가리고 걷기' 실습이다. 두 사람이 짝이 되어 한 사람은 안대로 양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사람이 팔짱을 끼고 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인도를 해주는 것이었다. 동기언니가 눈을 가린 내게 가야 할 방향이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냥 앞으로 쭉 걸어가도 돼, 앞에 턱이 있으니까 두 발 정도 더 가서 넘어 가야 돼, 내가 붙잡고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가 봐."

하지만 눈을 가리니 내 모든 감각이 마비된 기분이 들었다. 한 발자국도 맘 편히 앞으로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 한국말인데 앞으로 쭉이 도무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건지, 두 발 정도는 어느 정도 보폭으로 가란 걸 뜻하는 건지 이해가 안됐다. 동기도 옴짝달싹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 모습이 꽤나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어느 세월에 끝까지 가서 안대를 벗고 이 어둠에서 벗어날지 막막하기만 했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그 순간 나의 신규간호사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맞어! 그때 이런 기분이었어.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선배들이 알려줘도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의심만 되고 그저 모든 상황이 다 겁났었어. 나름 애를 쓰며 앞으로 가고 있지만 남들은 날 버벅댄다고 생각했었지.'

그랬다. 나도 여느 개구리들처럼 잊어가고 있었다. 신규간호사의 처지와 마음을. 왜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재차 반복해서 묻는 것인지, 왜 뭐든 눈치껏 못하는 것인지 그들의 눈높이 수준을 잊어가고 있었다. 신규간호사는 눈을 가리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이고, 경력간호사는 신규간호사를 용감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사람이다.

프리셉터 교육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프리셉티의 입장을 가엾게 여기고 좀 더 친절하고 안심되는 말과 행동으로 그들이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안내해주는 선배의 역할이었다. 부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해 주는 간호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이상 간호사 태움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과거를 잊은 사람들에게 미래란 없다는 것을 되새길 때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간호사, #대학병원, #태움, #프리셉터, #조직문화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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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차 고등학교 보건교사입니다. 보건교육, 진로교육, 성교육을 하며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늘 도전하며 삶을 가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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