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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에 싹튼 메밀을 살피고 있는 이정성 작가.
 시험관에 싹튼 메밀을 살피고 있는 이정성 작가.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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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이정성 미술작가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특별한 전시회를 마련했다.

그는 "지난 해 유해 발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흙을 파고 유골을 옮기는 과정에서 당시 학살현장의 참혹한 분위기도 함께 체험했다"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전시회 이름은 '물꽃이 일렁이는 밤'.

여기서 '물꽃'은 메밀꽃을 의미한다. 하얀 메밀꽃이 군집을 이루는 모습이 마치 하얀 거품이 이는 것 같아 물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정성 작가의 주된 작품 소재는 바로 이 메밀꽃과 유해발굴 현장에서 담아온 흙이다.

전시회 이름과 동일한 작품 '물꽃이 일렁이는 밤'은 유해 발굴지에서 채굴한 흙에 메밀꽃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웠다. 흙 아래에 깔린 푸른 천은 하늘을 향했다. 흙과 천이 만나는 지점에는 메밀꽃과 돌조각들을 이용해 청사진기법으로 하얀 포말을 만들었다. 포말은 흙과 물을 연결시켜 하늘을 향하는 밤바다로 이어졌다.

또한 이 작가는 60개의 시험관에 일일이 유해 발굴지에서 채굴한 흙을 넣고, 그곳에서 메밀 싹을 틔웠다. 수천이 목숨을 잃어 그들의 뼈와 살이 녹아 있을 그 흙에서 새 생명이 자라난다.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한 무거운 전시에서 치유의 마음을 얻는다.

이정성 작가는 "학살지에서 채굴한 흙에 메밀꽃 뿌리를 내렸다"면서 "흙에 물을 주고 빛을 담아주는 것이 전부이지만 자라나는 생명력을 통해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잠시라도 치유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시험관에 유해 발굴지에서 채굴한 흙을 넣고, 그곳에서 메밀 싹을 틔웠다.
 시험관에 유해 발굴지에서 채굴한 흙을 넣고, 그곳에서 메밀 싹을 틔웠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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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물꽃이 일렁이는 밤’.
 작품명 ‘물꽃이 일렁이는 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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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성 작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일기를 전시장에 펼쳐 놓고, 지난해 그가 유해발굴 현장에서 녹음해 온 현장음을 들려준다.

"작년 여름, 육지와 섬을 오가며 다양한 풍경들을 마주했다. 칠흑 같은 밤바다와 선선한 온기를 마주하고 그 속에 잠시 몸을 맡겼다. 하얀 파도가 일렁이는 밤바다 위에 작은 별들이 수를 놓았고 구름은 별들을 피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갔던 메밀꽃밭에는 새하얀 메밀꽃들이 파도처럼 바람에 일렁였다. 꽃밭에서 나오는 흙과 초록의 냄새가 온 세상을 덮어버리는 듯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그것을 마주하기 전까지 아름답기만 했다. 그것을 마주하기 전까지..."

     
이처럼 그가 지난해 여름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마주한 감정과 고뇌들이 전시작품들에 담겼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인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된 수천의 넋들을 치유하는 전시회는 오는 10일까지 진행된다. 전시 장소는 ARTSPACE128(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12번길 46, 2층), 관람 시간은 매일 낮 12시~오후 6시. 전시 기간 중 휴관 일은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이정성 작가, #물꽃이 일렁이는 밤, #메밀꽃, #골령골 유해발굴, #ARTSPACE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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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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