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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권대희씨 성형수술 장면을 촬영한 CCTV. 바닥까지 흘러 내린 피를 간호조무사가 걸레로 닦고 있다.
 고 권대희씨 성형수술 장면을 촬영한 CCTV. 바닥까지 흘러 내린 피를 간호조무사가 걸레로 닦고 있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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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공장식 수술' 도중 고 권대희씨를 사망케 한 집도의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유령의사'로 불린 의사에게 벌금형이 내려지는 등 검찰 구형에 비해 낮은 형량이 선고돼, 유족들은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항소를 예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최창훈 부장판사)은 19일 오후 1심 선고공판을 통해 의사 장아무개씨에게 징역 3년·벌금 500만 원, 의사 이아무개씨에게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벌금 500만 원, 의사 신아무개씨에게 벌금 1000만 원, 간호조무사 전아무개씨에게 선고유예의 판결을 내렸다. 장씨는 바로 법정구속됐다.

권씨는 2016년 9월 장씨가 운영하던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CCTV엔 집도의 장씨가 여러 수술실을 돌아다니며 권씨를 포함한 다수를 상대로 수술을 진행하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마취 담당인 이씨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고, 장씨가 부재중인 동안 의전원을 갓 졸업한 의사 신씨나 간호조무사 전씨가 수술을 전담하기도 했다.

의사 3인에겐 업무상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간호조무사 1인에겐 의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앞서 검찰은 장씨에게 7년 6개월·벌금 1000만 원, 이씨에게 징역 6년, 신씨에게 징역 4년, 전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재판부는 장씨의 업무상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중 진료기록부 서명 미기재, 불법광고,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이씨의 마취기록지 조작과 관련된 책임은 무죄).

이씨에겐 업무상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마취기록지 조작) 유죄, 신씨에겐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행위) 유죄, 업무상과실치사 무죄가 선고됐다. 신씨의 업무상과실치사 무죄에 대해, 재판부는 "결과 발생을 예견하지 못했거나 회피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전씨의 경우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행위)이 유죄로 인정됐으나 재판부는 "장씨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하게 됐다"며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20대 피해자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유족들의 고통이 매우 크다"라며 "혈액이 비치돼 있지 않은 시설에서 피해자에게 다량의 출혈이 발생했고, 저혈압과 활력 징후가 극히 비정상이었음에도 이른바 공장식 수술을 돌리느라 이렇다 할 치료 없이 골든타임을 놓쳤다"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어머니는 수술실 CCTV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술 관계자 행정을 분단위, 심지어 초단위까지 세밀히 확인해 수 년 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처절한 행적을 보여왔다"라며 "이러한 피해자 어머니가 피고인의 처벌 의사를 강력히 밝히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선고 직후 유족들은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며 "검찰에 항소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씨의 친형 권태훈씨는 선고 직후 "매우 아쉬운 판결이다. 특히 유령 의사였던 신씨의 업무상과실치사가 인정되지 않고 실형을 선고받지 않은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며 "공장식 수술, 유령 수술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는 재판이었는데 형량을 봐선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여곡절의 5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지난 6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를 요구하며 1인 시위 중인 의료사고 피해자 고 권대희씨 유가족인 이나금 환자권익연구소 소장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지난 6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를 요구하며 1인 시위 중인 의료사고 피해자 고 권대희씨 유가족인 이나금 환자권익연구소 소장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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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의 유족들은 이날 1심 선고에 이르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초 검찰은 이들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만 적용해 기소했고,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사의 경우 의료법 등 몇몇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에만 의사면허를 박탈당한다. 살인 등 강력범죄나 성범죄로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아도 의사면허는 유지되는 것이다. 장씨 등의 사례에 비춰 보면, 업무상과실치사로만 처벌을 받을 경우 의사면허는 유지되기에 계속해서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검찰의 봐주기 수사란 지적이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담당검사가 병원 측 변호사와 서울대 의대를 같이 나온 친구 사이로 알려져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유족들은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항고했으나 검찰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사건은 법원을 상대로 한 재정 신청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법원은 매우 이례적으로 재정 신청을 받아들여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행위) 혐의까지 기소하도록 검찰에 명령했고, 결국 이날 1심 선고로까지 이어졌다.

권씨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이다.

태그:#권대희, #공장식, #수술,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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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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