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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의 묘소를 찾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묵념하며 추모했다.
 김좌진 장군의 묘소를 찾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묵념하며 추모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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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청소면에 있는 김좌진 장군과 부인 오숙근여사의 합장묘.
 보령시 청소면에 있는 김좌진 장군과 부인 오숙근여사의 합장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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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주년을 맞은 광복절.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처절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국은 광복을 맞고 독립했지만, 그 과정 중에 수많은 민중이 일제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한, 전국 곳곳에는 일제 잔재들이 남아있다. 그러면서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뿌리박힌 잔재를 하나둘 제거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일제에 의해 옛 지명인 '홍주'가 사라진 충남 홍성군에서는 최근 지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순국선열과 보훈 유공자들을 기리는 충령사 사당에 심어진 '가이스카 향나무' 7그루를 모두 제거했다.(관련기사: 홍성군, 충령사 가이스카 향나무 전부 베어내... "일제 상징")

'가이스카 향나무'는 일제강점기를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정책의 하나로 행정관청과 학교 등에 '가이스카 향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던 것.

조국의 광복을 맞은 15일, 홍성이 고향인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당을 찾아 그들의 삶을 되돌아봤다.
 
김좌진 장군의 사당에 향이 피어있다. 한 추모객이 놓고 간 국화.
 김좌진 장군의 사당에 향이 피어있다. 한 추모객이 놓고 간 국화.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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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 생가지 대문에 '김좌진'이라고 쓰인 문패가 보인다.
 김좌진 장군 생가지 대문에 "김좌진"이라고 쓰인 문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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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 생가지
 김좌진 장군 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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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김좌진 장군

독립운동사에서 너무도 유명한 백야(白冶) 김좌진(1889∼1930)은 만주에서 일제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자료에 따르면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장군은 개화사상이 투철해 1905년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

1913년에는 군자금을 모금하다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단에 가입했다.

이후, 북로군정서의 사령관으로 청산리에서 일본과 항일무장투쟁으로 독립운동사상 위대한 승리를 거두는 등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김좌진 장군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박상실에 1930년 1월 24일 암살당하면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했다. 당시 나이 41세다.

만주 땅에 묻힌 김좌진의 유해를 아내 오숙근 여사가 1940년 비밀리에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했다.

오 여사마저 사망하자 아들인 김두한이 1957년 선산인 보령시 청소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장했으며, 위로는 합장된 김좌진 장군의 어머니와 아버지 묘가 있다.

이곳 묘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73호로 지난 1989년 지정됐다.

홍성에서는 지난 1989년 김좌진 장군 생가지 성역화 사업을 통해 문간채, 안채, 사랑채 등을 복원했다.

또한 장군의 호를 딴 백야기념관을 설치하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 장군의 삶을 전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김좌진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에서는 매년 10월 추모대제가 열리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중단된 상태지만, 매년 여름 홍성지역 청소년들은 중국을 방문해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광복절 휴일을 맞아 많은 관광객이 생가지와 기념관을 찾았다. 김좌진 장군의 묘소에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묵념하며 추모하는 모습도 보였다.
 
홍성군 결성면에 있는 만해 한용운 생가지
 홍성군 결성면에 있는 만해 한용운 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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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비공원 표지석 뒤로 한용운 생가지 모습이 보인다.
 민족시비공원 표지석 뒤로 한용운 생가지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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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당인 '만해사', 이곳에서 매년 추모다례가 열린다.
 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당인 "만해사", 이곳에서 매년 추모다례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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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
 만해 한용운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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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

독립운동가, 승려, 시인인 만해(卍海) 한용운(1879~1944) 선사.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을 지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이다. 홍성 결성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사는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일제에 체포돼 3년을 복역했다.

홍성군 자료에 따르면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해 저항문학으로 민족혼을 깨우려고 앞장서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를 주도했으며, 신간회의 서울 지회장으로서 학생 의거와 민족 운동을 지원했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1944년, 광복을 불과 1년 앞두고 향년 65세로 입적했다. 만해는 세상을 마칠 때까지 불교를 통한 애국청년운동과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사상을 북돋워 일으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에 홍성군은 지난 2007년 만행의 사당이 있는 그의 고향 결성에 만해문학체험관을 개관하고 민족시비공원을 조성했다. 이곳을 통하는 도로주변에는 무궁화꽃이 빼곡하게 심겨져 있다.

김좌진 장군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찾아 조국 광복과 독립을 위해 투쟁해온 만해 한용운 선사의 독립운동 참여와 그의 삶을 되돌아봤다.

홍성에서는 매년 8월 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당이 있는 홍성군 결성면에서 추모다례를 지내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같은 만해 한용운 선사의 독립운동에 대해,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광복절을 맞아 가족단위 관광객이 만해 한용운 체험관을 찾아 그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
 광복절을 맞아 가족단위 관광객이 만해 한용운 체험관을 찾아 그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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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당으로 통하는 도로에는 무궁화가 빼곡히 심겨져 있다
 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당으로 통하는 도로에는 무궁화가 빼곡히 심겨져 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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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 동상 뒤로 생가지가 보인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났다.
 만해 한용운 선사 동상 뒤로 생가지가 보인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났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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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홍성군, #백야김좌진장군, #만해한용운, #독립운동,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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