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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수업을 해보면 학생들의 생각이 평균적으로 해마다 아주 조금씩은 변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행히 대부분은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요.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부정적인 변화도 관찰됩니다. 여학생과 남학생의 평균적인 젠더의식 격차가 점점 더 증가하는 것으로 보여 걱정입니다.

남학생의 의식도 변화하고는 있지만, 여학생의 변화 정도를 따라가지 못하기에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죠. 젠더의식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여학생도 평균적인 남학생에 비하면 젠더의식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젠더 격차라고 말하지 않고 '젠더의식 격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주목해주기 바랍니다. 일부 남학생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지금은 분명 여성이라 학교도 못 가는, 아니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는, 그런 세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젠더의식의 성별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젠더의식은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나 그 과정에서 성별적 차이는 더 벌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아마 20대가 성별 갈등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세대로 보고되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2020년 서울연구원 조사 결과)

절대 빈곤이 사라졌다고 상대적 빈곤감, 상대적 박탈감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데 동의하실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의 여성은 아직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느낍니다. 이런 여성들에게 '살려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연애하고 싶은 사람) 없어요"

언젠가부터 젠더의식이 비교적 높아 보이는 여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연애하나요?" "연애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상당수의 대답은 "이제 연애 안 해요. 못할 것 같아요", "없어요"입니다.

그들 주장으로는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이해가 됩니다. 남학생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 여학생들의 말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연애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과 정치 이야기 안 할 수 있을지도, 종교 이야기 안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젠더 이야기 피해갈 수 있을까요? 젠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지 않는/못하는 연애 관계, 건강한 관계일까요?

성적 관계까지 연결되는 친밀한 관계 형성 과정이 젠더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무관할 수 있다?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이성애적 관계에 기준해서 잠시 말해보겠습니다.

여성이 먼저 호감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데이트 비용은 남성이 다 또는 더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한지, 여친이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에 대해 남친이 간섭할 수 있는지, 스킨십 정도와 방식은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어야 하는지, 이전 성경험의 유무가 중요한지, 피임은 누가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맞는지 등의 일부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그러나 결코 사소하지 않은, 젠더적 일상을 건너뛴 연애가 가능할까요?

별걱정을 다한다고요? 거리에는 연애하는 젊은이들 넘치더라고요?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연애 중인 여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사귀는 사람과 젠더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지. 꽤 높은 확률의 대답은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거나 조심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갑자기 분위기 싸해질까봐, 더 정확히는 싸울까봐.

남학생들은 이런 여학생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내 여친은 아닐 것이라고요? 음, 경험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아닌 것이 아닐 것이라는 데 걸겠습니다. 단지 말을 하지 않을 가능성, 티 내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궁금하면 확인해 보길요. 그 결과로 연애가 깨질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겠습니다만.

연애하는 관계에서도 솔직하게 젠더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없는 20대. 대학에서 경험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오프라인 젠더 풍경입니다. 반면 지금 이 시간에도 온라인에서는 '젠더전쟁'이 한창입니다. 지금도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젠더 갈등 비용'을 이 사회가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더 어마어마하게 증가할 것이 분명합니다.

저출생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걱정이라고요? 출생지원금 예산 반의반만큼의 예산으로라도 젠더의식 격차 해소에 적극 나서길 바랍니다. 행복한 연애를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를 낳고 싶을까요? 젠더의식 격차를 줄여가는 적극적 노력 없이는 저출생문제도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태그:#젠더, #젠더수업, #사회학, #젠더의식, #저출생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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