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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군인과 경찰에 의해 총살된 대전 골령골 유해매장 추정지를 시굴 조사한 결과 1학살지에서만 약 1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서너 개 확인됐다.
 1950년 군인과 경찰에 의해 총살된 대전 골령골 유해매장 추정지를 시굴 조사한 결과 1학살지에서만 약 1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서너 개 확인됐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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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굴조사 결과 푸른 색의 포장을 덮은 곳에서 유해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곳에만 최소 수백여 구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굴조사 결과 푸른 색의 포장을 덮은 곳에서 유해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곳에만 최소 수백여 구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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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군인과 경찰에 의해 총살된 대전 골령골 유해 매장 추정지를 시굴 조사한 결과 1학살지에서만 약 100m짜리 유해 매장 구덩이가 서너 개 확인됐다. 이곳에서만 이미 5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돼 남아 있는 유해까지 약 1000여 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구청장 황인호)은 지난해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골령골에서 234구의 유해와 5백여 점의 유품을 발굴한 데 이어 올해도 6월 초부터 유해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발굴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 등은 지난 7일 1학살지의 유해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산기슭 경계를 따라 가로 100m, 세로 10여m에 달하는 타원형 모양의 구덩이에 유해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구간 내에는 폭 2m 남짓한 3개의 구덩이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이 구간에서만 지난해와 지난 7월 말까지 5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돼, 남아 있는 유해도 최소 수백여 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약 560㎡(약 170평) 남짓한 공간에 1000여 명이 매장된 셈이다.(관련기사: 천막 들추자 유골밭... 모습 드러낸 40m 학살구덩이)

해당 구간 아래쪽에 있는 가로 50m 구역에서도 희생자 유해로 보이는 유해 일부와 고무신 등 유품이 발견됐다. 하지만 이 구간에 있는 유해 대부분은 도로 공사 또는 건축 과정에서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1학살지에서만 최소 300여m가 넘는 유해 매장 구덩이가 재확인된 것이다.
 
1950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구덩이 위에서는 시신을 내던지고 구덩이 아래에서는 던져진 시신을 나란히 정돈하고 있다. 산자락 바로 아래로 폭 3m, 깊이 2m 가량의 'ㄱ'자 형태의 구덩이가 길게 뻗어 있다. 미 극동군사령부 연락장교 애버트(Abbott) 소령이 찍고,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말 NARA에서 발굴했다.
 1950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구덩이 위에서는 시신을 내던지고 구덩이 아래에서는 던져진 시신을 나란히 정돈하고 있다. 산자락 바로 아래로 폭 3m, 깊이 2m 가량의 "ㄱ"자 형태의 구덩이가 길게 뻗어 있다. 미 극동군사령부 연락장교 애버트(Abbott) 소령이 찍고,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말 NARA에서 발굴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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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오마이뉴스>가 만난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주민들은 1학살지에서는 폭 2~3m, 길이 100m 가까운 구덩이가 2개, 같은 폭의 50m 길이의 구덩이가 1~2개로, 모두 3~4개의 구덩이가 있다고 증언했다. 1학살지에서만 암매장 구덩이 길이가 250~300여m에 이른다는 마을주민들의 증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앞서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이었던 앨런 위닝턴 기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직후 유해가 매장된 모습을 목격하고 쓴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 기사에서 암매장 구덩이 수를 모두 6개라고 썼다.

"6개의 구덩이는 모두 6피트(2m)의 깊이다. 세로는 6피트(2m)에서 12피트(4m)에 이르렀다. 구덩이의 길이는 가장 긴 것이 200야드(200m)였고 두 개가 100야드(약 100m), 가장 짧은 것이 30야드(약 30m)였다."
 
해당 구간 아래쪽에 있는 가로 50m 구덩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도 희생자 유해로 보이는 유해 일부와 고무신 등 유품이 발견됐다.
 해당 구간 아래쪽에 있는 가로 50m 구덩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도 희생자 유해로 보이는 유해 일부와 고무신 등 유품이 발견됐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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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골령골 1학살지의 구덩이 위치와 개수. 너비 2m, 깊이 2m 가량의 100m 길이 구덩이 2개와 50m 구덩이 1~2개로 모두 3~4곳으로 추정했었다. 첫번째 열 사진은 스카이뷰, 두벌째 열은 지도이고, 우측에는 지적도를 표시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골령골 1학살지의 구덩이 위치와 개수. 너비 2m, 깊이 2m 가량의 100m 길이 구덩이 2개와 50m 구덩이 1~2개로 모두 3~4곳으로 추정했었다. 첫번째 열 사진은 스카이뷰, 두벌째 열은 지도이고, 우측에는 지적도를 표시한 것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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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닝턴 기자가 본 200m 구덩이는 골령골의 2학살지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1학살지에는 100m(100야드) 2개, 30m(30m) 1개 등 모두 세 개의 구덩이가 있다고 기록해 지역 주민들과의 증언과 유사하다.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2차 : 7월 3~5일, 1800명 / 3차 : 7월 6일~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었고, 그들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유해발굴단은 올 하반기 동안 1학살지에서 확인된 유해 매장지에 대한 발굴을 벌일 예정이다.

태그:#골령골, #유해발굴, #위닝턴, #긴 무덤, #대전 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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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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