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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들어서서 모내기가 끝난 지도 두 달 가까이 된다. 어린 모가 자라 키도 제법 크고, 색깔도 진해졌다. 요즘 들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이다. 내가 사는 강화도 들녘에도 온통 녹색 물결이다.

모처럼 만에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들길을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살랑살랑 부는 맞바람에 몸도 마음도 날아갈 것 같다.

천연기념물 제250호 저어새
 
평화로운 농촌의 들녘. 가끔 저어새가 들녘을 찾는다.
 평화로운 농촌의 들녘. 가끔 저어새가 들녘을 찾는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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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이 출렁이는 들판에 하얀색 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백로인가? 그런데 늘 보던 백로보다는 몸집이 좀 크다. 녀석의 주둥이 놀림이 심상찮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서서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가까이 다가가 보는데, 부리가 길쭉하고 주걱 모양이다. 저 녀석, 혹시 저어새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저어새가 맞다. 갯가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하신 몸께서 들녘까지 웬 나들이일까?
  
가족처럼 모여 벼 포기 사이를 따라 먹이 사냥을 하는 저어새
 가족처럼 모여 벼 포기 사이를 따라 먹이 사냥을 하는 저어새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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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를 논 가운데서 가까이 볼 수 있다니, 행운이다. 저어새는 지구상에 한때 수백 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에 몰렸다. 지금은 개체 수가 5000여 마리까지 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250호로 지정되어 멸종위기생물 1급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저어새는 서해안과 갯벌, 하천을 따라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하구와 강화남단 드넓은 갯벌 등에서도 많이 목격된다. 한두 마리, 무리를 지을 땐 십여 마리씩 몰려다니기도 한다. 
 
여름 강화도 들녘에서 만난 저어새이다. 기품이 느껴진다.
 여름 강화도 들녘에서 만난 저어새이다. 기품이 느껴진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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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처럼 생긴 길고 넓적한 부리가 특이해 부리만 보면 저어새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부리 색깔은 짙은 검은 색에다 주름이 있다. 머리에 있는 장식깃이 멋들어지고, 번식기에는 목 주위에 황금색 치장을 한다.

저어새의 먹이터는 주로 갯벌. 깊이 20cm 이내 낮은 개펄에 물이 차면 망둥이, 칠게, 새우, 갯가재 등 부리에 걸려드는 것들이 먹잇감이다. 민물에서는 미꾸라지나 올챙이 등도 사냥한다. 요리조리 부리로 부지런히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보면 신비스럽다. 부리를 쉴 새 없이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다고 하여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저어새는 우리나라 백령도,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안 무인도 등 사람들의 간섭이 덜한 한적한 곳에서 번식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먹을 게 부족해 생존을 위해 따뜻한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동하여 월동한다. 그리고 자기가 태어난 고향 땅 한반도로 다시 돌아오는 철새이다. 그러니까 저어새는 우리 땅에서 우리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책무가 있다.

들녘에 나타난 저어새... 좋은 징조인 듯싶다

저어새의 습성은 사람에게 쉬이 곁을 주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가까이 다가서려면 후다닥 내뺀다.

살금살금 녀석한테 다가가 본다. 혹시나 나의 접근에 도망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휴대전화 줌을 최대한 당겨본다. 주걱의 부리와 머리 깃털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람에 휘날리는 깃털을 보니 기품이 느껴진다.

한발 한발. 좀 더 다가서자 여지없이 혼비백산 도망을 친다. 친구 하고 싶은 내 마음을 몰라줘 아쉽다. 
 
비상하는 저어새. 어디로 날아갈까? 궁금하다.
 비상하는 저어새. 어디로 날아갈까? 궁금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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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한참을 달리는데, 이번에는 저어새가 무리 지어 있지 않은가! 가족끼리 모여 있나? 다섯 마리이다. 녀석들은 벼포기 틈새를 따라서 먹이 사냥에 여념이 없다. 
 
강화도 들녘에 모여든 저어새 가족
 강화도 들녘에 모여든 저어새 가족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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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에 늦은 서리태를 파종하는 이웃집 아저씨를 만났다.

"저 녀석들, 사진 찍는구먼! 요즘 심심찮게 들에 놀러 온다니까!"
"벼농사에 해코지는 하지 않죠?"
"해코지는 무슨? 모낼 때라면 몰라도!"
"모낼 때는 왜요?"
"녀석들이 휘젓고 다녀 봐? 뜬 모가 생길 거 아냐!"
"지금은요?"
"요즘이야 벼 뿌리를 튼튼하게 내려 상관없지!"


아저씨는 요즘처럼 저어새 여러 마리가 논을 휘저으면 좋겠다고 한다. 부리로 논을 훑고 다니다 보면 논풀도 덜 자랄 것이라고 한다. 저어새가 많이 찾으려면 들녘이 건강해야 할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미꾸라지며, 우렁이, 지렁이도 살고! 아저씨 말씀에 공감이 간다.

여름 녹색 들녘에 찾아온 진객의 손님 저어새. 좋은 징조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태그:#저어새, #천연기념물 제205호, #멸종위기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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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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