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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로에 살던 팔색조
 
2차선이었던 비자림로를 4차선으로 넓히기 위해 제주도가 삼나무숲을 베어버리자 갈 곳이 없어졌다.
▲ 제주 비자림로 인근 삼나무숲에 살던 멸종위기종 팔색조와 두점박이사슴벌레 2차선이었던 비자림로를 4차선으로 넓히기 위해 제주도가 삼나무숲을 베어버리자 갈 곳이 없어졌다.
ⓒ 장용창+비자림로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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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님. 저는 제주 비자림로에 살던 팔색조입니다. 2차선 도로였던 비자림로 옆에 있는 삼나무숲은 어두컴컴하고 바닥에는 먹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둥지를 틀어 새끼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가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넓히겠다고 하면서 삼나무들을 베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그곳에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환경 관련 법률에서 제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관님이 멸종위기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요. 그래서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저같은 멸종위기종이 개발 예정 지역에 사는지 안 사는지를 확인한 다음, 보호를 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비자림로 확장 공사 전에 했던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제가 그곳에 살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면서요? 5월부터 6월까지 거기 산다고 매일같이 튜잇 튜잇 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제가 거기 사는 걸 어떻게 모를 수 있죠? 저 말고도 그곳엔 두점박이사슴벌레랑 애기뿔소똥구리같은 멸종위기종이 수두룩하니 살고 있었는데, 어떻게 없다고 할 수 있죠? 저희들이 거기 없다고 거짓으로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지금 잘 지내시나요? 대한민국의 법이라는 건 그냥 안 지켜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요?

낙동강하구에 살던 큰고니
  
부산시가 낙동강하구에 대저대교를 지으면 갈 곳이 없어진다.
▲ 낙동강하구의 멸종위기종 큰고니와 대모잠자리 부산시가 낙동강하구에 대저대교를 지으면 갈 곳이 없어진다.
ⓒ 습지와새들의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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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님 안녕하세요? 저는 낙동강하구에 살던 큰고니입니다. 저도 비자림로에 살던 팔색조처럼 멸종위기종이지만, 제가 살던 낙동강하구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먹이를 먹던 곳 바로 위로 부산시가 대저대교라는 다리를 짓기로 했거든요.

저희 큰고니들은 다리가 없이 넓게 트인 하늘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날다가 강물에 내려앉을 땐,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긴 사선을 그리면서 천천히 착륙해야 하거거든요. 그런데, 대저대교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에선, 다리를 지어도 저희 큰고니한테 큰 영향이 없으니, 다리를 지어도 된다고 했다면서요? 게다가 이곳은 멸종위기종 대모잠자리가 많아서 국내 최대 서식지로 추정되고 있지만, 환경영향평가서엔 아예 언급도 안되어 있다면서요?

게다가 이런 사실조차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환경부 공무원들도 아닌, 그냥 시민들이 알아냈다면서요? 그렇게 환경영향평가서가 엉터리로 작성되었다고 판명이 난 후에도 다리는 그냥 거의 그대로 짓기로 했다면서요? 인간들은 원래 그렇게 눈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잘 하나요?

양산 사송지구의 고리도롱뇽
  
토지주택공사가 아파트 개발을 위해 계곡을 밀어버리자 죽어나가고 있다.
▲ 양산 사송지구의 멸종위기종 고리도롱뇽과 신종 꼬리치레도롱뇽 토지주택공사가 아파트 개발을 위해 계곡을 밀어버리자 죽어나가고 있다.
ⓒ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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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애 장관님, 안녕하세요? 저는 양산 사송지구에 친구들 7천 마리와 함께 살던 멸종위기종 고리도롱뇽입니다. 토지주택공사가 아파트를 짓겠다고 저희가 살던 계곡을 모두 파헤쳐버리자, 저희 친구들이 엄청 많이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장관님이 토지주택공사에 아파트 개발 공사 중지를 요청하셨으니까, 아마도 장관님은 저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토지주택공사가 포크레인으로 저희 친구들을 죽여버리기 전까지, 장관님은 저희가 이곳에 있는 줄을 정말 모르셨나요? 아, 그럴 수 있죠. 환경영향평가서엔 저희가 별로 없다고 나와 있으니까요.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도, 전세계에서 처음 발견되어 신종으로 등록해야 할 수도 있는 꼬리치레도롱뇽SP 종도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원래 환경영향평가는 엉터리로 하는 건가요? 다른 곳도, 다른 나라도 다 그러는 건가요? 인간들은 거짓말을 안 할 수 없는 존재들인가요? 멀쩡히 살고 있는 고리도롱뇽을 없다고 거짓말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나요?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장관님이 맡고 있다면서요? 환경영향평가가 이렇게 다들 엉터리로 진행되고 있는데, 장관님은 알고 계신건가요? 

거제 노자산의 긴꼬리딱새
  
골프장이 지어지면 거제 노자산에서 쫓겨나게 될 긴꼬리딱새와 그 알과 둥지
▲ 노자산의 멸종위기종 긴꼬리딱새와 그 둥지와 알 골프장이 지어지면 거제 노자산에서 쫓겨나게 될 긴꼬리딱새와 그 알과 둥지
ⓒ 장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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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애 장관님, 안녕하세요? 저는 거제 노자산에 아직은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 긴꼬리딱새입니다. 그런데, 곧 쫓겨날 것 같습니다. 어느 건설업체가 이곳 숲을 밀어버리고 골프장을 짓기로 했거든요.

제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제가 살고 있다는 얘기가 없었어요. 저는 이곳 숲에 대대로 살고 있었는데, 어떻게 제가 사는 줄을 모를 수가 있죠? 이 동네 사람들이 저를 발견하고, 제 알과 둥지 사진을 공개한 후에야 국립생태원과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저를 보러 왔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국가 공무원이 제가 사는 걸 확인하고 이곳을 생태계 1등급 지역으로 지정했는데도, 경상남도는 이곳을 밀어버리고 골프장으로 바꿀 예정이래요.

대한민국 법률에 따르면, 장관님이 저를 보호해야 하는 거라면서요? 제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거죠?

고흥 비행 성능 시험장의 노랑부리저어새
  
고흥 비행 시험장을 건설하면 쫓겨날 흑두루미와 노랑부리저어새
▲ 고흥 비행 성능 시험장 건설 예정지의 멸종위기종 흑두루미와 노랑부리저어새 고흥 비행 시험장을 건설하면 쫓겨날 흑두루미와 노랑부리저어새
ⓒ 고흥국가비행성능시험장반대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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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전남 고흥 비행성능시험장 예정지에 사는 멸종위기종 노랑부리저어새입니다. 앞서 저희 친구들이 이야기를 다 해줬네요. 저도 사정은 같아요.

저희는 이곳 고흥만과 같은 습지가 있어야 있어야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이곳에 비행 성능 시험장을 짓느라 저희가 사는 논이 다 사라져버리고 있네요. 이곳에는 저희 말고도 흑두루미에, 큰고니에, 큰기러기, 잿빛개구리매 등 멸종위기종 철새들이 수두룩하지만, 비행 시험장 때문에 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고흥 비행 성능 시험장 건설 공사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에선, 시험장을 지어도 저희같은 멸종위기종 새들에 대한 영향이 별로 없을 거라고 했다면서요? 저나 흑두루미는 아예 언급도 없다면서요?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멸종위기종 사람들
  
제주 비자림로 인근 삼나무들이 베어지자 대신 서 있던 사람들
▲ 멸종위기종 사람들 제주 비자림로 인근 삼나무들이 베어지자 대신 서 있던 사람들
ⓒ 비자림로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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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기후변화로 언제 멸종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야 아무 관심도 없고, 심지어 환경부조차 큰 관심을 안 보이고 있는 멸종위기종들을 살려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우리 생태계를 지키려면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실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어서, 이 제도를 개선해보려고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장관님을 찾아뵙고 여쭙고 싶습니다. 전국에서 죽어나가는 멸종위기종 생물들의 질문을 저희가 대신 드리고 싶습니다. 만나 주실 건가요?

* 환경영향평가 제도에 대한 한정애 환경부장관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어서,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전국 연대>에서 장관님께 면담 신청서를 2021년 7월 7일에 보냈습니다. 장관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그:#환경영향평가, #환경부장관, #멸종위기종, #면담, #개발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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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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