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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 아이는 하원을 하자마자 가까운 놀이터를 가르키며 말했다.

"엄마, 나 오늘 놀이터에서 놀다 갈 거야."
"그래, 알겠어."


그렇게 나와 아이는 놀이터로 향했다.

마침 놀이터로 오는 같은 반 친구를 만났고 나는 그 아이의 엄마와 처음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독특한 발음. 나는 타고난 예리함으로 전국 팔도 출신 지역을 단번에 맞추는 능력이 있다. 역시 단번에 느낌이 왔고 웃으면서 여쭈었다.

"일본 분이세요?"
"아, 네, 맞습니다. 일본 사람입니다."
"네, 그러시구나."


이런 인사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인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 

이야기 도중, 어디에 사는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본인 엄마는 유치원과 생각보다 거리가 있는 단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는 굳이 왜 이 유치원으로 아이를 보내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게 되었다.

그는 상세히 이유를 알려주었다. 원래 작은 아이는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근처 유치원을 다녔고, 큰아이도 근처 학교를 보냈다고 했다. 그러다 작년에 이 유치원과 학교로 아이들이 전학 온 것이라고 했다. 전학을 온 이유는 큰아이가 학교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설명했다. 

아이 친구들이 엄마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말을 한 것이다. 급기야는 "너희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했고, 아이는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엄마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친구들이 왜 엄마를 나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상처를 받은 것이다. 결국 고민 끝에 엄마는 교육계 종사자분들과 상담을 받은 후 학교를 옮긴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그런 일들이 전혀 생기지 않았고 현재 아이와 가족 모두 만족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유치원 반에도 다문화가정의 학생이 4명이나 된다고 알려주었다. 내 생각보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꽤나 많아 내심 놀랐고, 내가 이 부분에 그동안 무관심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를 실천하는 학교의 모습, 일본, 베트남, 중국 등의 인삿말을 게시하고 있음.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를 실천하는 학교의 모습, 일본, 베트남, 중국 등의 인삿말을 게시하고 있음.
ⓒ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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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다문화가정 학생과 부모의 국적 등 현황을 파악했고, 담임선생님과 협조하여 어려운 부분을 지원하는 업무를 했다. 나는 그 업무를 하면서 우리나라가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언어, 교육, 심리까지 섬세하게 지원하는지 처음으로 알았고, 이런 정책이 현실적으로 잘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정책이 있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우리말 구사 능력이나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학습 격차가 발생할 경우, 학생과 교사가 힘들어하는 경우를 더러 보기도 했다.

일본인 엄마의 말로는 코로나19가 한국에서 발생했을 초기, 중국과 관련된 가정의 아이들이 곤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어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중국인 혐오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뭔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19년, 일본 제품을 불매하는 '노 재팬' 운동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났었다. 그 불씨는 현재까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우리 아이들도 이 이슈에 대해 매우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니 난 역사책을 읽은 후, 나의 아이보다 더 심하게 분노했고, 어느 책에 일본에 대한 욕설과 험한 말들을 마구 적어놨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아빠를 둔 6학년 언니를 대할 땐 달랐다. 그는 전교회장을 할 정도로 활약했고, 그 언니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일본인 엄마에게 나는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위로를 건넸다. 

"힘드셨겠네요.. 저는 학교에 있지만, 그런 경우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했네요."

일본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 한국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보니, 뭐 그렇게..."

역시 역사적 배경이 원인이기에 문제를 단숨에 풀긴 매우 어렵다. 나는 일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모두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한국 정치인들이 '반일 감정'을 정치적 쟁점으로 이용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우리나라와 일본의 맥락과 현안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 학생들에게 '반일감정'을 심어도 안 된다. 과거의 역사를 사실대로 가르치되, '일본'을 생각하면 무조건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디든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있지요"  

첫째 아이에게 물었다.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니?"
"일본에도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그렇고요."


다행스럽게 내가 걱정하는 무조건적인 부정 반응은 없었다. 최근 한일관계의 방향성 그리고 반일감정을 생각할 때, 학교에서 실시하는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은 그 일본인 엄마의 기준에서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문화가정에서 바라는 것은 '다문화'를 부각시키는 정부의 지원이나 요란한 정책이 아니라, 자녀들이 평범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는 것 아닐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제대로 가르쳐서 바람직한 현재를 살아가게 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역사 교육은 아이들의 인식과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난 일본인 엄마를 통해 교사이자 엄마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인 엄마는 "한국 사람들이 참 똑똑하다. 한국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 가족들이 앞으로도 대한민국과 한국인을 계속 좋아하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태그:#일본, #NO JAPAN, #다문화가정, #반일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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