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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4일 광주 K고등학교 앞에서 교육·시민단체(앞줄)가 대책위를 결성해 상위권 학생 특별관리 의혹을 받는 이 학교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학부모들(뒷줄)이 이에 반발하는 피케팅을 하며 마찰을 빚고 있다. 뒤로 교문 안에서는 학교 관계자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2019년 9월 24일 광주 K고등학교 앞에서 교육·시민단체(앞줄)가 대책위를 결성해 상위권 학생 특별관리 의혹을 받는 이 학교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학부모들(뒷줄)이 이에 반발하는 피케팅을 하며 마찰을 빚고 있다. 뒤로 교문 안에서는 학교 관계자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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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바보가 됐다. 동료 교사조차 애초 무모한 일에 나선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외부에서 문제가 제기됐더라도 내부 구성원이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성찰 능력을 상실한 곳에 뭘 더 기대하느냐는 뜻이다. 

재작년 광주 K고등학교의 시험지 유출 의혹이 폭로된 뒤, 해당 학교 교장, 교감을 비롯한 교사들을 상대로 열심히 싸웠다. 교사들끼리는 서로 흠결을 눈감아주는 '침묵의 카르텔'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관련 기사를 여러 편 썼고, 지상파 방송에까지 나가 그들을 성토하기도 했다. 

사건이 폭로되기 전부터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불법과 편법을 일삼는 학교로 유명했다. 최상위권만 따로 모아 특별 수업을 진행해왔다는 건 화젯거리도 안 된다. 그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다른 아이들을 들러리 세우는 일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졌다. 

명문대 많이 보내는 명문고로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은 당신의 자녀를 보내기 위해 안달했다. 명문고에 진학하면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들은 최상위권에 '천국'인 학교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겐 '지옥'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내신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동일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이 무조건 13명 이상이어야 한다. 상위 4% 이내에 들어야 1등급이기 때문이다. 만약 최상위권 아이가 명문대 진학에 필요한 과목인데 수강 희망자가 적다면? 학교는 '최소 요구치'를 확보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다.

이쯤 되면 구체적인 방법을 눈치챘을 것이다. 같은 교사로서 스스로 추레해져 더 설명하기도 민망하다. 지역의 명문고라는 명성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유지되었다. 사달이 난 K고등학교는 주변 학교에서 모방할 만큼 그러한 편법에 가장 선구적이고 적극적인 곳이었다. 

결국 터질 게 터졌다

아무튼, 당시 시교육청 감사관실은 물론, 교육과정 책임자까지 나와서 나를 엄호해주었다. 시교육청이 해야 할 일을 왜 쓸데없이 나서서 욕을 먹느냐며 주위로부터 손가락질도 받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교사이기 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겨서다.

이 사건은 모든 언론에 소개되며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그즈음 벌어진 서울 B 여고의 시험지 유출 사건과 맞물려 온 국민의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해당 학교는 학교가 아니며, 관련 교사를 비롯해 방조하고 묵인한 이들은 교사가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시교육청은 감사에 나섰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해당 학교 교문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이며 관련자의 엄벌을 촉구했다. 학교를 비롯한 지역 교육계에서는 결국 터질 게 터졌다면서, 수사 결과를 기다리며 시교육청의 대응을 긴장하며 지켜봤다.
 
2019년 광주 K고등학교의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한 시교육청의 특별 감사 발표 직후 해당 학교에서는 대응책으로 현수막을 내걸었다.
 2019년 광주 K고등학교의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한 시교육청의 특별 감사 발표 직후 해당 학교에서는 대응책으로 현수막을 내걸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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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K고등학교의 반발도 거셌다. 다른 학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왜 우리만 문제 삼느냐는 '물귀신 작전'부터, 진보 교육감의 사립학교 죽이기라는 막말까지 쏟아졌다. 악다구니 쓰듯 그들의 날 선 주장들이 적힌 초대형 현수막은 오랫동안 학교 건물 벽을 덮고 있었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자청하는가 하면, 방송 토론에까지 출연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를 앞둔 고3들에게 해를 끼친다며 시교육청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언론에 보도된 사실을 부정하기보다 오랜 관행이었다면서 표적 감사 운운하며 적반하장의 태도로 일관했다. 

두 해 가까이 지난 지금, 당시의 첨예했던 갈등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건 이후 기상천외한 편법과 온갖 불법적 행태는 많이 줄었다. 아무리 간 큰 학교라도 그렇듯 뜨겁게 데였는데도 관행이라며 꿋꿋이 버틸 순 없었을 것이다.

소나기만 피하면 될 일이라고 여겼나

그렇다면 사건과 관련된 교사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아무 일 없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징계를 받지 않은 것도 황당한데, 그들 모두 교장과 교감으로 승진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지금 치미는 분노를 진정시켜가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그들에 대해 잠깐 소개한다. 교장으로 영전한 이는 당시 교육과정을 총괄하는 교감이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험 문항의 오류 등을 최종 점검하고 결재하는 자리다. 교감으로 승진한 이는 당시 3학년 진학부장으로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시 교장, 교감과 함께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이기도 하다. 

설령 현행법상 죄를 묻기 힘들지는 몰라도, 그것이 반교육적 행태라는 건 그들도 잘 알 것이다. 오죽하면 해당 학교 재학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알렸겠는가. 도의적인 책임은 있지만 법적으론 문제 될 게 없다는 건, 적어도 교사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차마 아이들 보기 부끄럽다.

재작년 K고등학교의 잘못에 대해서는 이미 지적할 만큼 했다. 그들이 저지른 낯부끄러운 행위를 일일이 언급하면서 반면교사 삼기도 했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편법이 난무하는 건 다른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 말이다.

그런데, K고등학교는 그렇다 쳐도, 사건 이후 광주광역시교육청이 보인 행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시 관련자를 징계하지 않으면 행정적, 재정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엄포를 놨다. 경찰의 수사와 별개로 시교육청 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공언하기도 했다. 

과문한 탓인지 이후 시교육청이 K고등학교의 관련자들을 제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여론의 관심이 수그러들자 시교육청의 대응도 유야무야됐고, K고등학교의 건물 벽을 뒤덮었던 초대형 현수막도 하나둘씩 철거됐다. 모두가 소나기만 피하면 될 일이라고 여겼을까. 

그들의 공언이 진심이었다면

코로나가 살렸다는 푸념도 들렸다. 이 와중에 '한낱' 시험지 유출 의혹이 뭐 그리 대수냐는 여론의 부박함이 궁지에 몰렸던 K고등학교에 숨통을 틔워주었다는 것이다. 여론의 관심이 식어버린 사건에 언론이 천착할 리 없다. 언론의 외면 속에 시교육청도 손을 놔버린 형국이다. 

남 탓할 것도 없다. 나 역시 석 달 가까운 '전투'를 치른 뒤 시교육청의 공언을 믿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알다시피 사립학교법상 학교법인이 설치한 사립학교의 장과 소속 교원의 임용 권한은 이사회에 있다. 하지만 시교육감에겐 임용을 무력화할 권능이 얼마든지 있다. 

당장 정원 감축과 학교 운영비 지원 배제 등 다양한 처분을 내릴 수 있다.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이사회가 관련자들을 엄호한다면, 그곳을 더는 학교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관련자들을 죄다 승진시켰다는 건 교육감의 권한 따윈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시교육청은 K고등학교의 적반하장 행태를 입으로만 일벌백계한 '종이호랑이'였던 셈이다. 그들은 온존한 사립학교법에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무능과 무책임을 감추려는 핑계일 뿐이다. 강력한 조치 운운하던 그때도 사립학교법은 엄존했다. 

그들의 공언이 진심이었다면 눈치 볼 것 없이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했다. 사립학교법이 걸림돌이었다면 법의 개정을 위해 싸우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었어야 했다. 적어도 여론의 관심이 식지 않도록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라도 있었어야 했다. 

아이들이 알게 될까 두렵다

시교육청은 지금껏 뒷짐만 진 채 2년 가까운 세월을 흘려보냈다. 어쩌면 그들은 학교 교육의 적폐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절실함이 없었는지 모른다. 시교육감 스스로 '진보 교육감'을 자처하고 있지만, 난 이곳 광주광역시가 '진보 교육 1번지'라는 그의 말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관련자들의 승진은 그 모든 게 무위로 끝났음을 보여준다. '전투'에서 그들이 이겼고, 난 졌다. 명분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 궁금해하던 지인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게 무척 속상하다. 솔직히 그건 위로가 아니라, 애초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는 조롱이었다. 

사실 그들이 승진했다는 사실을 며칠 전 동료 교사를 통해 들었다. 시교육청에서 진행된 연수 자리에 교장과 교감 자격으로 버젓이 참석해 담당 장학사와 환담하는 장면을 보았다며 어이없어했다. 나와 어깨를 겯고 싸웠던 당시의 시교육청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돈키호테'라고 조롱당하는 건 참을 수 있다. 다만, 처음 SNS에 제보한 아이를 비롯해 '전투'를 지켜본 아이들이 결국 이렇게 마무리됐다는 걸 알게 될까 두렵다. 정의를 외치며 싸워 봐야 자신만 손해라고 여기게 된다면, 교육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다.

그러잖아도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세대라는데,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결말이 아이들의 그런 뒤틀린 인식을 더 강화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하긴 당시 교사들이 저지른 편법과 불법이 모두 제자 사랑에서 비롯된 헌신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없지 않았다. 그런 정의 관념이라면 더 나빠질 것도 없긴 하다. 분노와 비참함이 널 뛰듯 하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다.

태그:#시험지 유출 의혹 사건, #광주 K고등학교, #사립학교법, #광주광역시교육청, #진보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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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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