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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다이어리
ⓒ Glenn Carstens-Pe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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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꿈이 뭐야?" 아직 20대 초반인 나에게 사람들이 연례행사처럼 묻는 말이다. 달가운 질문은 아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때 들으면 짜증도 난다.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엄마에겐 "몰라..."라고 하며 대답을 회피하고 다른 사람들에겐 "제가 행복할 정도로만 돈 벌면서 사는 거요"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거 아니고 무슨 직업이 되고 싶은 거냐고 질문을 바꾼다.

수도 없이 들어온 질문이지만 그때마다 대답하는 직업이 달라진다. 시도하고 싶은 직업이 너무 많아서. 단지 그뿐이다. 내 미래를 확정 짓지 못하는 게 아니고 도전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이다.

"잠깐이라도 노래 커버하는 유튜버도 해보고 싶고, 그냥 회사원도 해보고 싶어. 작은 사업도 하나 해보고 싶고, 작가도 하고 싶어."

아빠가 그 많은 직업들을 다 말해보라고 했다. 이게 아빠의 질문에 내가 말한 답이다. 편히 누워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천장을 보고 하나씩 말을 했다.

물론 저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다. 번역 일에도 종사해보고 싶고, 네일아트를 제대로 배워서 샵을 차리진 않더라도 건너 건너로 아트를 해주고 싶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 이걸 다 해볼 수 있겠냐는 얘기도 들었다.

근데 그때 아빠가 그랬다. "그럼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 시작해." 언제나 허세 듬뿍은 물론 가끔 툭툭 내뱉는 말로 상처를 주던 아빠가 처음으로 좀 멋있어 보였다.

며칠 전에 친한 친구 둘을 만나 오랜만에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나 학교 과가 나랑 너무 안 맞아서 공부도 하기 싫고 학교에 대한 의미도 모르겠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그냥 자퇴하고 싶어." 한참 얘기하던 중 나의 한탄에 친구 한 명이 고민도 없이 바로 답을 했다.

"그럼 그냥 그만둬. 하고 싶지도 않은 걸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 잡고 있는 게 더 안 좋은 것 같아, 나는."

의외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랬던 것처럼 좀만 참고 버티라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친구는 세상이 바라보는 내 모습보다 내 감정에 더 귀 기울였다. "차라리 그 시간에 네가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게 너한테 더 좋아." 친구의 대답을 듣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친구 하나는 끝내주게 잘 둔 것 같았다.

꿈이 뭐 별거 있나 

사람은 모두 우울함을 가슴 한쪽에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난 그게 정말 심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때에 비해 좋아졌다고 확답은 못 하지만 그때는 병원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게 하기 싫고 밤이 되면 우울감에 빠져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데 친구가 내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랬다. 너무 하기 싫은 걸 계속하면 아프기 마련이라고, 본인도 적성에 맞지도 않은 회사에 다니면서 우울증이 심해지고 힘들어서 병원비에만 한 달에 20만 원씩 썼다고. 친구는 결국 1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솔직히 내 우울감의 근본적인 원인이 학교는 아닐 수도 있지만 조금은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만두면 무엇을 하지? 손을 뗀 공무원 공부를 다시 시작해? 아냐, 이런 공부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일본어 공부를 좀 더 깊게 파고들어서 하고 싶었던 영상 번역가를 준비해볼까? 꽤 괜찮다.

네일아트를 배워서 자격증을 따는 건? 이것도 좋다. 아, 그만두면 읽고 싶었던 책들,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전부 모아놓고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볼 수도 있겠네? 그만두겠다는 말을 엄마에게 말할 용기도 없으면서 그 날은 그렇게 그만둔 뒤의 계획을 그려보다 잠이 들었다.

난 손으로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나 영화 제목들을 노트에 적어두거나 읽은 책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버킷리스트이다. 요즘은 휴대전화 어플도 좋은 게 많이 나오기도 하도 메모장에 클릭 몇 번이면 저장이 되지만 나는 꼭 노트에 리스트를 적는다.

내 버킷리스트엔 정말 사소한 거 하나까지도 다 적혀있다. 한 달 동안 책 열 권 이상 읽기, 그림 공부 시작하기, 불면증이 심해 깨지 않고 5시간 이상 자보기 같은 일상에서 원하는 작은 것들을 기록하고 하나씩 지워나간다. 꿈이 별거 있나. 그냥 원하는 거, 이루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걸 하나씩 성취해나가면 그게 꿈을 이루는 삶인 거지.

덧붙이는 글 | 후에 블로그나 브런치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꿈 , #직업, #미래, #버킷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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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학생. 내 책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종이를 채우고 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제가 그 유명한 ENT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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