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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입시제도의 대세인 학생부종합전형은 80년대 학력고사나 94년 이후 수능점수로 선발하던 폐단을 극복한 측면이 크다. 학력고사 시대 4지 선다형이나 현행 수능 5지 선다형은 아이들에게 한 줄 세우기를 강요하고 대학 서열화를 고착시켰다. 객관식 문제를 몇 개 맞혔는가에 따라 합격/불합격의 희비가 갈렸다. 족집게 과외나 일타강사의 등장도, 그리고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도 그러했다.
  
문제를 풀면서 고사에 열중하는 고등학생들 모습
▲ 고사 응시 중인 모습 문제를 풀면서 고사에 열중하는 고등학생들 모습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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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선다형 문제가 고등학교 학력을 측정하는 평가도구로서 타당도가 높은 진정한 시험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다. 나아가 교실 수업이 EBS교재 수능특강 문제풀이 시간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다. 고등학교 수업이 입시기관으로 전락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들을 수동적인 위치에서 자주성을 부여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일단 교실 수업에서 획일적인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났다. 학생들은 창의체험활동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기도 했다.
 
NGO 참여연대를 방문하여 견학수업 중인 고등학생 NGO 동아리 학생들 모습
▲ 참여연대 견학수업을 하는 고등학생들 NGO 참여연대를 방문하여 견학수업 중인 고등학생 NGO 동아리 학생들 모습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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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인 도입취지가 학생의 잠재된 가능성을 중시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보니 내신 성적이 다소 낮아도 특기나 잠재된 가능성으로 선발된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의 경우 강남 이외의 학생들도 그리고 지방이나 군 소재지 고등학교 학생들도 합격하는 면도 컸다. 수능성적만으로 선발했다면 그런 다양한 선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학생부종합전형은 숱한 문제를 드러내었다.

어떤 이는 학생부종합전형이 '깜깜이' 전형으로 무엇보다 '공정성'을 크게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입학사정관이 중시하는 평가항목들이 정량화되기 어렵다는 이유이다. 또 어떤 이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추천서와 자기소개서, 심지어 소논문을 대필하는 세태가 만연해 정의롭지 못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날을 세웠다.

또 다른 어떤 이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부모의 재산과 학력에 따라 학생의 비교과 영역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고 없고가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폐해는 교육문제에서 계급적 이해관계가 고스란히 관철된다는 주장이다.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비록 허구이지만 대학 입시의 대세인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측면이 컸다.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비록 허구이지만 대학 입시의 대세인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측면이 컸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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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학생부종합전형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비교육적인 것을 넘어서서 반교육적인 형태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학생들은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삶의 과정으로서 봉사활동이 존재해야 한다. 동아리활동 역시 학생들 스스로 자기성장의 기쁨을 맛보는 교육의 과정으로 존재해야 한다. 학급회장을 하고 학생회 간부를 맡고, 관심 있는 분야의 독서를 하는 것이 모두 인간적인 성장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 현실은 성장 과정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오롯이 대학 입학을 위한 수단으로 비교과영역을 화려하게 채우려는 데 문제가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자 교육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채 학생부종합전형이 활용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이미 미국에서 그러한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삶의 과정으로서 봉사활동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대학입학을 위한 수단으로서 봉사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위선의 교육'을 조장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활기록부에 화려하게 기록하고 장식하기 위해서 그 활동들을 수행하는 게 우리 학생들이 처한 현실이다. 아이들은 생활기록부에 어떻게 기록되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렇다보니 과거 부모의 문화자본을 활용하고 자기소개서와 소논문을 대필하는 것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 일도 발생했다.

교육부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즉자적으로 대응해 왔다. 추천서를 폐지하고 자기소개서도 폐지시킬 예정이다. 수상기록도 교내로 한정하고 기록횟수도 제한했다. 교사들이 생활기록부에 적는 글자 수도 제한했다. 소논문도 폐지했고 대회나 기관명, 출신학교, 국가 명, 공인어학성적을 쓰지 못하게 했다. 학생의 저서, 논문 실적, 어학연수, 부모의 직업도 쓸 수 없다. 공정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학교생활기록부에는 '대회'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졌다. 올해 들어 학교생활기록부에 적을 수 없는 금지어가 2만5459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 가서 활동한 사실도 활동내용 난에 '꽃동네 봉사활동'으로 쓰면 안 된다. '000봉사활동'으로 입력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한다고 해서 공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즉자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교육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한국형 바칼로레아(KB) 시험을 대학 전형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형 바칼로레아 시험은 논술형 절대평가 시험이다. 현행 대학별 논술고사는 명목상 논술시험이지만 대부분 제시문 요약하기, 제시문 비교하기가 주를 이루는 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대학에 따라서 영어제시문과 수학문제가 출제되는 기형적인 것도 있다. 한국형 바칼로레아 시험은 학생들의 사고의 깊이와 폭을 측정할 수 있는 최적의 시험이다.

따라서 한국형 바칼로레아 시험은 자연스럽게 교실 수업방식을 토론식 수업형태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학생 스스로 책을 읽을 수밖에 없고 토론과 대화가 일상화된 학교문화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체험활동 역시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들 스스로 자기 성숙의 기쁨을 누리는 소중한 삶의 한 경험이자 교육과정 그 자체로 높은 위상을 획득할 것이다. 
 
정동길 <평화의 소녀상>은 전국 고등학생들이 학생자치활동 차원에서 연대하여 기금모금활동을 거쳐 건립된 조형물로서 그 교육적 의미가 매우 크다. 표지석에 소녀상 건립활동에 참여한 고등학교 명단이 새겨져 있다.
▲ 정동길 프란치스코 교육원 마당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정동길 <평화의 소녀상>은 전국 고등학생들이 학생자치활동 차원에서 연대하여 기금모금활동을 거쳐 건립된 조형물로서 그 교육적 의미가 매우 크다. 표지석에 소녀상 건립활동에 참여한 고등학교 명단이 새겨져 있다.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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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평가방식의 변화가 교실 수업형태와 학생들의 학업방식, 그리고 학교문화의 변화까지 가져올 수 있다. 입시제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부 땜질하거나 손질하는 정도로 미래 교육을 전망할 순 없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비롯해 고등정신 기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안착시킬 필요가 절실하다.

한국형으로 개발된 바칼로레아 시험은 적절한 사회개혁을 반드시 동반한다면 성공할 수 있는 최적의 교육개혁이라 생각한다. 적절한 사회개혁은 북유럽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노르웨이나 덴마크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연봉과 의사의 연봉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정책을 구사하면 된다. 정책은 삶을 바꾸고 좋은 정책은 공동체를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태그:#학생부종합전형, #한국형 바칼로레아, #교육개혁, #사회개혁,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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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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