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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열기로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위 맨몸을 던져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22일 서울 한남동에서 출발한 오체투지 행렬은 지난 24일 사흘간 가장 낮고 느린 걸음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박삼구 이사장의 한남동 자택 앞에서 서울고용노동청 앞까지 6km 남짓한 구간을 배밀이로 나아갔다. 쉴 새 없이 뿜어대는 자동차 매연과 분진, 구정물로 뒤범벅이 된 도로에 한껏 낮추어 엎드린 몸은 새카맣게 물들었다. 땅바닥 위에 포갠 이마와 콧등도 온갖 더러운 것들로 이내 얼룩졌다.

길 위의 기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야멸차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얀 민복을 갖춰 입고 등에는 '아시아나케이오 - 정년 전 복직'이라고 쓰인 몸벽보를 한 아홉 명의 오체투지 기도 행렬은 그 자체로 간절한 마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12일째 곡기 끊은 노동자들
 
서울 한남동 박삼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의 자택으로 오체투지 행진 중인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사회 연대자들
▲ 정년 전 복직을 위한 오체투지 서울 한남동 박삼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의 자택으로 오체투지 행진 중인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사회 연대자들
ⓒ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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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행렬 맨 앞줄에 선 사람들은 코로나19 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기내 청소와 수하물 처리 업무를 도맡아 해왔던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일했던 회사는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조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아시아나에어포트의 2차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다. 

2020년 5월 11일 정리해고 돼 벌써 347일째 거리에서 원직복직 투쟁 중이다. 해고 노동자 중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김정남 전 지부장, 기노진 전 회계감사 두 명의 조합원은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14일째 무기한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코로나19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가장 먼저, 짙게 드리운 곳은 공항·항공 산업이었다. 국경이나 산맥, 암초는 물론이고, 교통정체도 없는 하늘길이 전 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으로 긴 시간 동안 닫히게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렸던 공항·항공산업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휩싸였다.

공항·항공산업은 공항시설 및 항행안전시설의 관리와 운영 부문 일부를 제외하면, 많은 사업이 민간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여객 및 화물 수송을 담당하는 항공운송사업과 지상조업 부문은 경쟁체제 도입과 비용절감을 목표로 한 민영화와 외주화가 극에 달했다. 공항·항공산업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시절엔 잘 보이지 않던 취약한 뿌리는 코로나19와 함께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과 물자를 대량으로 이송하는 공항·항공산업의 경우 경기변동의 진폭이 매우 큰 편이다. 경기악화로 여객 및 화물수요가 감소하면 항공기 임대비용이나 공항시설 사용료 등 고정비용이 높은 산업 특성상 과잉설비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은 충격을 최소화하거나 외부화하는 방법을 즐겨 찾는다. 경제위기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당장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손쉽게 꺼내든 해결책은 인적 구조조정 카드였다.

어쩔 수 없는 해고였다?

여기에서 첫 번째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다면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해고는 공항·항공산업에서 불가피한 일이었을까?

위기가 본격화했던 2020년 상반기부터 정부는 공항·항공산업이 전후방 산업경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해 아시아나항공에 총 2조 4천억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하는 등 천문학적인 정부 재정을 투입했다. 국가 차원에서 공항·항공산업을 긴급히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산업 전체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조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조건으로 "고용 총량 유지와 자구 노력, 이익 공유 등의 장치를 마련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이는 미사여구에 그쳤다. 기금을 지원받는 기업은 6개월 이상 90% 이상의 고용총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는데,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유지를 '의무화'하는 조치는 정작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의 '적시지원, 고용안정' 프로그램의 허점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휴업급여의 최대 90%를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하도급업체 사업주가 아예 회피하고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경우 또한 방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고용유지 노력조차 하지 않은 아시아나케이오 사측의 무기한 무급휴직 조치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아시아나케이오 비정규직 노동자 8명이 해고됐다. 이들 중 6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해 2020년 8월 인천지방노동위원회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고, 이어 12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초심유지(부당해고) 판정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아시아나케이오 사측은 원직복직 명령 대신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해 이행강제금을 부담하는 쪽을 선택했다. 급기야 2021년 초에는 대형로펌 변호사 세 사람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행정소송(중노위 재심판정에 대한 취소 소송)까지 나섰다. 

노동위원회 1심, 2심에 걸쳐 사용자의 정리해고 처분이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해고 노동자들의 침해된 지위와 권리는 아직까지도 원상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해고자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회사는 복직시킬 여력이 없다면서 수천만 원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또 수천만 원을 들여 이행강제금을 내겠단다. 그 액수면 우리가 원직복직하고도 남을 텐데, 결국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길거리에 방치하겠다는 속내 아닌가."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지부장의 발언 중)

'진짜 사장' 박삼구가 책임져야 한다
 
오체투지에 나선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의 모습. 정년 전 복직 이행을 촉구하는 해고 노동자 2인의 무기한 단식농성은 오늘로 14일째를 맞았다.
▲ 간절한 길 위의 기도 오체투지에 나선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의 모습. 정년 전 복직 이행을 촉구하는 해고 노동자 2인의 무기한 단식농성은 오늘로 14일째를 맞았다.
ⓒ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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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궁금증은 이것이다. 아시아나케이오 사측과는 일견 무관해 보이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집 앞에서 오체투지 행렬이 시작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여기에는 공항·항공산업의 복잡한 다단계 하청구조의 문제가 숨어있다. 고용 피라미드의 맨 위에는 모회사인 항공사가 있고, 그 아래 모회사의 자회사인 지상조업사가 있고, 가장 밑바닥에는 외주하청 지상조업사가 자리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아시아나에어포트가 지상조업 자회사로 있고, 에어포트 하청업체로 KA(여객지원), KR(정비지원), KO(기내청소‧수하물 및 기타 화물처리), KF(경비용역 및 건물시설관리), AH(외항사 여객서비스), AQ(항공운송지원 서비스)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외주하청 지상조업사들은 아시아나에어포트의 자회사 또는 아시아나항공의 손자회사가 아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2019년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박삼구 전 회장이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6개 외주하청 지상조업사의 지분 100%를 보유해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6개 외주하청 지상조업사들이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업무를 독점적으로 위탁받아 거둔 수익 일부는 '국내에 클래식 음악의 보급과 인재 육성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설립된 이 공익재단의 기부금과 배당금으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이 박삼구 이사장에게 부당해고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을 묻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항·항공산업 외주화 및 다단계 하청을 구조화한 사용자로서의 책임, 그리하여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고용불안의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 그리고 외주하청 지상조업사들을 사익 편취의 수단으로 동원한 책임을 '진짜 사장'에게 묻고자 함이다.

복직 없이 정년 없다

이용객의 안전과 서비스를 책임지는 지상조업에서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연케 한 책임은 비단 박삼구 이사장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력파견업체에 지나지 않는 외주하청사들의 난립을 막지 못했고 그 결과 불법파견 소지가 다분한 지상조업의 고용구조를 사실상 용인한 책임이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소한의 법적 요건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긴 아시아나케이오 사측의 '불법 정리해고'에 대해 실효 있는 구제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고용노동부는 1년 가까이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 4월 13일 부당해고 사태에 대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진행된 면담 자리에서는 해고 노동자들의 기나긴 기다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해결 방안에 대해 당신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없다"는 관계자의 무책임한 답변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고용노동청이 여전히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입장을 내비치자 정년을 앞둔 두 명의 해고 노동자가 곧바로 항의농성에 돌입했지만, 불과 18시간 만에 서울시의 강제퇴거 조치가 공권력 투입을 통해 이뤄졌다.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비롯한 해고회피 노력은커녕 노동자들을 막무가내식으로 해고한 아시아나케이오 사측이나, 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전광석화 같은 행정력을 발휘한 정부나 사실 별다를 게 없었다. 기업은 코로나19를 핑계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치웠고, 정부 역시 코로나19를 빌미로 거리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지우려 애썼다.

그럼에도 박삼구의 아시아나케이오는 정년을 코앞에 둔 두 노동자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인지 여전히 시간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시간은 결코 박삼구 이사장과 아시아나케이오 사측의 편이 아니라는 점을 당신들은 기억해야 한다. 22일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연대모임'을 확대·재편한 '코로나19 희생전가 정리해고 사업장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 원직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자신의 뼈와 살을 태우며 싸우는 김정남, 기노진 두 해고 노동자, 아시아나케이오지부 투쟁을 지지하는 연대의 흐름은 이전보다 더욱 깊고 넓어지고 있다. 오체투지 기도처럼 바닥을 딛고 일어선 낮은 이들의 외침이 마침내 이길 것임을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용현 시민기자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입니다.


태그:#아시아나케이오, #박삼구가책임져라, #정년전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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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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