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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출신 왕산 허위 13도 창의군 군사장을 몰랐던 부끄러움

"남의 강제 지배에서 벗어난 사회는 당연히 전체 교육과정에서 '민족해방사'를 따로 가르쳐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강만길 선생이 나의 저서 <항일유적답사기>에 부친 추천사의 일부다. 그 말처럼 나는 학교교육에서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로 가는 '왕산로'의 유래도 몰랐다. 그 부근 산 이름이 왕산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그 '왕산'이 내 고향 구미 임은동 출신 한말 13도 창의군 군사장 허위의 호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 순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임은동 항일의병장은 모르면서 그 앞마을 상모동 일본군 장교는 알았던 그 부끄러움으로 애써 독립운동사를 펼쳤다. 그러면서 국내 항일 유적지는 물론, 중국, 러시아 등지까지 가장 낮은 자세로 선열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심사위원들이 회의장 벽에 설치된 파워포인트 심사자료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왼쪽부터 심옥주, 김병기, 김진, 원희복 심사위원, 건너편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박도, 이종찬 심사위원장, 김삼웅 심사위원).
 심사위원들이 회의장 벽에 설치된 파워포인트 심사자료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왼쪽부터 심옥주, 김병기, 김진, 원희복 심사위원, 건너편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박도, 이종찬 심사위원장, 김삼웅 심사위원).
ⓒ 민화협 /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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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의 계시

2020년부터 롯데장학재단(이사장 허성관)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 이종걸)는 독립유공자후손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제2회로 지난 2월 8일부터 장학생 지원자를 공모해 지난 3월 11일 서류접수를 마감했다. 그 결과 총 351명(2020년 150명)으로 지난해보다 지원자가 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 3월 17일 제2차 심사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이 351명 전원의 서류를 검토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 1차 심사는 지원자가 많은 국내에 한해 3등분으로 배분 심사키로 했다. 그리하여 제1반(김삼웅·심옥주), 제2반(김병기·원희복), 제3반(김진·박도)으로 나눴다.

3월 19일 민화협에서 접수한 서류를 모두 정리한 뒤 메일로, 이를 출력해 책자로도 보냈다. 나는 이 서류들을 살펴보면서 몹시 괴로웠다. 조국과 겨레에 바친 선열후손의 서류를 감히 심사하기가. 잠시 멈추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때 어디선가 선열의 계시가 들리는 듯 했다.

'박 선생,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요. 내 후손보다 다른 동지의 후손을 먼저 챙겨주시오.'

그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하여 내 양심대로 심사, 소정기일 내 1차 선정 자료를 반송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2일 11시 30분, 제3차 심사위원회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무궁화실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서 심사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날 1차 심사결과를 파워포인트로 띄우자 한 반이었던 김진 선생과 나의 심사 채점표가 비슷했다. 그분의 말씀이다.

"사전 의논도,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지원자가 적은 해외 지원자 분야 심사를 먼저 진행했다. 그런 뒤 국내 재학생, 신입생, 대학원생은 2배수로 선정하고, 제4차 회의 때 마무리한 다음 4월 하순에 공표키로 했다.
 
2015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지 루이스 쇼(1880~1943).
 2015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지 루이스 쇼(1880~1943).
ⓒ 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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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독립유공자 후손 제1호 장학생

마침 광복회 호주지회에서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 1880~1943)의 외고손녀로 호주에 거주하는 조지아 사시(Georgia Sassi)를 추천했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외국인을 2021년 독립유공자후손 제1호 장학생으로 선정했다.

조지 루이스 쇼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중국 단둥에 이륭양행이라는 무역회사를 차리고, 그 회사 2층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국을 설치했다. 이 교통국을 통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출입국 편의와 독립군자금, 폭탄, 비밀 정보 문서들을 국내외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기업인으로 자신의 사업에만 골몰치 않고 우리 독립운동가를 비밀히 돕다가 끝내 내란죄로 일제에 체포 구금돼 4개월여의 옥고까지 치렀다. 그가 우리 독립운동가를 헌신적으로 도운 것은 그의 조국 아일란드도 영국 식민지로 동병상련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독립장을 추서했다.
 
조지 루이스 쇼 외고손녀 조지아 사시
 조지 루이스 쇼 외고손녀 조지아 사시
ⓒ 광복회 호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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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그의 후손 조지아 사시 '자기 소개서' 일부다.
 
2015년 한국여행을 갔습니다. 이전 조지 루이스 쇼라는 분은 상상의 일부였습니다. 한국 방문을 통해 그분의 삶이 제 마음에서 되살아났습니다. 한국 정부로부터 업적을 기리는 상을 받았을 때 그분의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희생정신을 느꼈습니다. …

그분의 최종 목표는 인종, 종교, 성별에 관계없는 인류의 자유, 평화, 그리고 정의였습니다. 저는 그 위대한 정신을 물려받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를 추천한 황명하 광복회 호주지부장은 해외 거주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은 그동안 정부로부터 훈장만 받았을 뿐, 다른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어려운 가운데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그분들의 희생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이번 신청자 가운데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모두 우대 선발키로 했다(단, 한 독립유공자후손 1인만). 이는 죽은 영혼도 결초보은한다는, 지난날 입은 은혜를 되갚는 우리 사회의 '정의'요, 한국인의 훈훈한 '인간애'이리라.

덧붙이는 글 | 최근 우리 사회의 불신은 매우 심각하다. 나의 공직 생활 체험에 따르면 불신 해소의 지름길은 오직 공정과 공개, 그리고 투명성이다. 그리고 그 과정도 유리처럼 투명하면 불신은 저절로 해소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심사 과정을 시시콜콜 중계 공개하는 바다.


태그:#독립유공자 후손장학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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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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