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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사무금융노조는 2020년 '사무금융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를 진행했다. 본 연구를 통해, 사무금융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현황을 드러냄과 동시에, 금융업종 기업의 조직문화와 실적 중심의 일 문화, 감정노동과 정신질환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금융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노동자 자살 문제와 업무상 정신질환 문제가 노동환경 및 기업의 성과주의 시스템과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구체화하고 의미를 해석했다. 총 5편에 걸친 연재는 연구 결과와 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사화한 작업이다. [기자말]
[사무금융노동자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결과 1] 금융기업의 업무관행과 실적 그리고 자살의 연관고리
[사무금융노동자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결과 2] 실적우선, 성과압박이 야기하는 일터 괴롭힘 문제

사무금융노동자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핵심에는 직종을 막론하고 그들이 받는 성과압박이 있었다. IMF 이후 2000년대 초반에 각 기업들에 성과급제가 도입된 후 약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 조사의 결과는 촘촘하게 짜여진 성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리스크 관리, 핵심성과지표, S-A-B-C-D 등급 같은 말들이 회사 담벼락을 넘어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잠식하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스트레스와 '자기 착취'를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연구참여자가 각종 성과지표와 평가들에 대해 "닿지 못할 숫자를 항상 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한 데서 보듯, 사무금융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은 아무리 애써도 닿기 어려운 이 숫자들이 전방위로 그들의 어깨를 짓누른 결과이다.   

우리의 문제는 실적에서 시작한다  

증권 노동자들은 '밥값'이라 불리는 손익분기점(BEP)에 대한 압박을 크게 호소했다. 증권 영업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BEP를 넘기면 그 수입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받는다. 노동자들이 BEP를 '밥값'이라고 부르는 데서 보듯,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은 성과급의 액수가 높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가치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몫을 해내는 증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연구참여자들은 임금의 감소가 실적압박으로 인해 받게 되는 주요한 스트레스 요인이긴 하지만 매일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지점의 등수를 확인해야 하는 평가제도, 조직 내에서의 인정 혹은 왕따, 영업독려라는 이름으로 모멸감을 유발하는 상사의 폭언 속에서 '밥값'을 하지 못한다는 건 "인간적인 무력감"을 유발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촘촘하게 옥죄는 '밥값'의 그물망은 종종 자기 돈 '태우기', 과도한 영업비 사용, 차명계좌, 불법 일임 매매 등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무리'로 노동자를 내몰아 자살 등 극단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고장난 브레이크로 대형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들은 입을 모아 "금융권 직원 도덕적 해이 심각"이란 기사를 쏟아낸다. 그러나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게 하는 금융권에 만연한 성과압박 체제와 금융감독원의 소홀한 감독, 운용사들의 사기행각과 도덕적 해이에는 입을 닫는다.

연구참여자들은 증권업은 "리스크를 안 지면 실적이 나올 수가 없어서 무조건 져야"하고, "아무리 공부를 하고 아무리 분석을 해도 맞출 수 없는, 결국은 터지게 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나의 판단으로 고객이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상 시달린다며 본인과 주변동료들이 앓고 있는 불면증과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특히 노동자 개인의 책임을 초과하는 대형 금융사고들이 터질 때마다 운용사든 판매사든 감독원이든 서로의 책임을 미루는 사이, 회사를 믿고 그 상품을 판매했던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조치없이 성난 고객들의 항의를 전면에서 받아내느라 급기야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렇게 증권 노동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 때문에 불면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지난 10년간 해외투자시장이 급성장하게 됨에 따라 미국 주식 거래를 위해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24시간 한 시도 쉬지 않는 자본이 전세계 국경을 넘나드는 동안 노동자들의 일과 또한 24시간 근무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노동자들은 이러한 장시간 노동에 대해 "회사에서는 야근이라고 표현하지 않아요. 회사는 '네가 원해서 하는 거야' 네가 그거를 해서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낮과 밤, 새벽, 주말과 주중을 가리지 않고 고객과 연락하며 일과 삶의 경계를 지워가고 있었지만 고객 이탈의 여지가 있어 하루 휴가를 쓰는 것도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손해보험 보상직 노동자들은 고객으로부터 금감원에 접수되는 민원을 가장 큰 스트레스로 꼽았다. 금감원에서 집계한 2018년도 전체 금융민원은 전년대비 8.8%가 증가하여 총 8만 3097건으로, 이중 손해보험 민원이 35.8%로 제일 많았다.

이 민원은 고객들이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했다며 금감원에 접수하는 것으로, 금감원은 해당 건에 대한 귀책 사유를 따지지 않고 접수 후 각 회사로 전달하는데 이때 민원을 받은 노동자는 민원접수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1년 동안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했어도 그냥 평가가 작살이 난다." 이에 노동자들은 민원을 피하기 위해서 무조건 고객에게 죄송하다고 하거나 24시간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사람을 대하는 두려움이 생겨 공황장애, 불면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보상직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는 증권영업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제도와 보호체계의 부재를 통해 만들어지고 가중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사무금융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성과평가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제조업처럼 특정한 시간 내에 물건을 생산하는 업무가 아니라 계속 진행형인 업무이기에" 2018년 7월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제에 따른 PC 오프제의 도입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별 효과가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연구참여자들은 직종을 막론하고 예전에 비해 명시적으로 시행하는 저성과자 프로그램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었다고 답했지만 '마케팅 활성화', '영업 추진' '동기 부여' 등의 다른 이름으로, 압박의 강도는 약해졌을지언정 여전히 저성과자를 분류하고 압박하는 프로그램들이 시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노동자들은 관리자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하거나 폭언을 듣는 일에 대해 이것이 관리자의 개인적 특성뿐만이 아닌 성과압박이라는 구조의 결과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은 과중한 업무 부여, 반복적인 업무 전환과 승진 누락, 낮은 성과 평가 등을 통해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방식으로, 그리고 개인 사이의 불화가 아닌 조직적인 담합을 통해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괴롭힘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포착되기 어렵고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같은 제도의 허점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빠져나갈 출구가 없는 스트레스에 갇힌 것 같다고 말했다.  
 
늘 '실적'이라는 성과 속에서 살아가는 사무금융노동자들. 한 연구참여자는 이를 "닿지 못할 숫자를 이고 사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늘 "실적"이라는 성과 속에서 살아가는 사무금융노동자들. 한 연구참여자는 이를 "닿지 못할 숫자를 이고 사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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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월급은 고객으로부터 먹는 욕값

또한 사무금융노동자들은 자신의 월급이 고객으로부터 먹는 '욕값'이라고 말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감내하고 있었다. 때로는 고객들에 의해 신체적 폭행을 당하거나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일도 있었다.

손해보험 보상직 노동자들은 이익과 손해라는 제로섬 게임의 조정자로서 늘 화가 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기에 이로 인한 공황장애나 불면증을 호소했는데 한 회사에는 "환우동기"란 말을 쓸 정도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구참여자들은 회사에서 갑자기 '욱'하거나 호흡곤란이 오는 동료들 혹은 나 자신을 보면서 이 스트레스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 영업 노동자들 역시 투자 손실이 난 고객에게 시달리다 법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사비를 써서 거액의 손실된 금액을 물어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고객의 손실을 보전하는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구상권을 청구당하거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동료들이 많으며, 심지어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안게 되어 자살에까지 이른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성과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자 개인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손실의 리스크를 감내하는 동안 회사는 고객과의 분쟁이 영업직원의 선에서 해결되길 바라며 '꼬리 자르기'를 행하고 있었다.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지점 관리 및 지원직 노동자들 역시 욕설, 성희롱, 불합리한 요구에 시달리지만 "이 손님이 목소리가 커지지 않게끔, 지점장님이 문 밖으로 나오시지 않게끔" 일단은 사과부터 하는 것이 모두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고객응대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보호 장치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고객의 민원이 지점장으로부터 받는 자신의 성과평가는 물론 지점의 성과평가에도 연동되어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무금융노동자들이 직종을 막론하고 부당한 일에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감내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성과압박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한 지점 관리 노동자는 2018년 10월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의 폭언·폭행 등으로 고객응대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생기지 않도록 사업주가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된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신설되었지만 창구에 게시할 인쇄된 문구를 한 번 받은 것 외에 직장에서 대응한 것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이처럼 감정노동에 대한 조직적 보호체계가 전무하고, 성과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한 조직적 차원의 접근과 해결 노력이 부재할 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는 "스트레스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것, "욕먹는 것도 다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더불어 우리는 성과주의가 노동자의 정신건강에 끼치는 영향이 젠더나 생애주기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성과압박은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사무금융노동자의 직무스트레스가 주로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가 만난 연구참여자들은 젠더를 불문하고 '여직원'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 '여직원'은 여성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유급노동과 무급가사노동이 분리되듯 직장에서 '바깥일'을 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남직원과 그들을 지원하는 '집안일'을 하는 여직원의 성별 직종 분리를 반영하는 명칭일 것이다. 이 '여직원'들은 허드렛일을 한다는 자괴감이 매우 크다고 답했는데, 지난해 증권사 순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동안 마스크를 쓰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창구에서 계좌를 트던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기술변화로 인해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금융권의 지점 축소 및 통페합 추세는 창구에서 일하는 지점 관리 및 지원 노동자들(그리고 이들은 여성이다)이 점심식사는 커녕 "1분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기업은 디지털화가 마치 다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현장에서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중된 돌봄노동의 부담으로 항상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는 워킹맘들의 스트레스 또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이렇게 몰성적(gender-blind)으로 보이는 과로와 성과압박은 "나는 퇴근 후에 집에 가서 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자직원들처럼 죽자 살자 일을 할 수 없다"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특별한 각오나 포기를 요구하는 남성중심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물론 금융권에서의 잦은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행렬은 자녀들이 성장하고 "돈 들어갈 데가 많은" 40대 중반 이후의 남성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들은 직장 내 성과압박과 함께 "그래도 가장이니까 당신은 이겨내야 돼. 당신이 강해야지"라는 사회적 압박을 함께 느낀다고 말했다.

20-30대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겪는 직무 스트레스가 사회초년생의 성장통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사무금융노동자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성과압박은 젠더와 생애주기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고 있었고, 따라서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과 지지의 측면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고려한 접근들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류한소님이 작성하셨습니다. <사무금융 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의 보고서는 한국노동안전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태그:#성과주의, #금융노동자, #감정노동자, #직무스트레스, #업무상정신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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