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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학기가 끝난 뒤, 성적 공시 기간이 되면 대학생 커뮤니티 앱인 '에브리타임'에 글이 쏟아진다. 대부분 성적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내용이다. 최종학점에 납득하지 못한 학생들은 교수에게 이메일을 통해 세부성적과 그 기준을 묻기도 한다.

물론, 점수를 공지하는 교수님들도 많다. 하지만, 점수 공개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건 과제물 및 시험의 결과에 대해서 교수와 학생이 서로 피드백을 나누는 과정이다. 그러한 소통의 과정 없이 알파벳 하나로 한 학기의 성취를 평가당하는 건 학생 입장에서 납득하기가 쉽지는 않을 테다.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중간고사 또는 과제물과 같은 세부성적의 공개 여부는 교수자의 재량에 달렸다. 내가 다니는 고려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세부성적 공개는 어느 정도로 이뤄지고 있을까.

고려대의 온라인 통합학사관리시스템인 '블랙보드' 상에서 내가 2018년 1학기부터 수강한 과목을 대상으로 한 번이라도 세부성적을 공개한 적 있는 과목의 수를 헤아렸다. 온라인으로 점수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오프라인에서 점수 공개가 이뤄졌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그 결과, 전공과목 17개 중 6개가 세부성적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교양과목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12개 과목 중 10개가 세부성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실습과목 하나를 제외하면 총 28개의 강의 중 16개의 강의가 세부성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총 5학기 동안 16개의 과목에서 세부성적을 전혀 공지 받지 못했다. 이제까지 그러려니 했는데, 직접 세어보니 조금 심각하게 다가왔다. 숫자로 된 점수만이 중요하다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학생에게 필요한 건 교수자의 피드백이다. 자신이 낸 결과물의 수준을 인식함으로써, 학생은 더 똑똑한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다.

그 최소한의 피드백이 정량적으로 평가된 '성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 과제물에 대한 정성적 평가가 동반된다면 더욱 바람직하겠다. 물론, 매 과제에 대해 정성적 평가를 첨부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성 어린 평가가 지적 성장을 이끈다

세부 성적 공개의 방식도 여러 가지다. 세부 성적 공개가 이뤄진 12개 과목을 살펴본 결과, 정말로 숫자만 공개하는 과목도 있었고, 과제에 대한 정성적 피드백을 동반하는 과목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인상 깊었던 강의가 하나 있다.

해당 과목은 기사 쓰는 방법을 익히는 전공필수 과목으로, 대략 2주에 한 번 정도의 개인 글쓰기 과제와 두 번의 조별 기사작성 과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이 개인 과제에 대한 주제를 제시하면, 학생은 그것에 맞게 글을 써 제출한다. 교수님은 인쇄한 결과물에 컨셉, 흐름, 문장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점수를 매기고, 그에 대한 코멘트를 첨부해 돌려줬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해본 게 처음이었으므로, 많은 부분에서 지적이 잇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평가가 늘어났다. 문장은 안정화됐고, 논리는 탄탄해졌다. 구체적인 코멘트가 없었다면 이러한 변화는 더뎠을지 모른다. 학생의 성장을 이끄는 건 교수자의 애정 어린 평가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2018년 1학기 수강한 전공과목의 과제물 피드백이다. 학기 초(왼쪽)에 비해 학기 말(오른쪽)의 과제물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8년 1학기 수강한 전공과목의 과제물 피드백이다. 학기 초(왼쪽)에 비해 학기 말(오른쪽)의 과제물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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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세부성적 비공개에 대한 불만은 A라는 알파벳 앞에 희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준 교수에게는 침묵하고, 기대보다 낮은 성적을 준 교수에게만 불만을 가진다. 지적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문도 모르고 낮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불만이 생겨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명분이 무엇이든 적어도 시험과 같은 굵직한 결과물에 대해서는 교수의 평가결과를 공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는 결국 학생과 교수 간 신뢰를 증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이 진정 배움의 공간으로서 기능하려면 이러한 피드백의 과정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태그:#대학, #세부성적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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