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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라는 명명 속에 얼마나 다양한 고민과 경험, 인생 역정이 담겨 있는지 전하고 싶었다. 또한 서술 방식에서는 일반적인 역사 서술과 달리 1인칭과 3인칭, 인터뷰, 다큐멘터리, 편지 등등 여러 형식을 활용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독립운동사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그들을 한 명의 인간으로 오롯이 느끼게 하고픈 마음이었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한겨레출판사)를 쓴 작가 김이경씨는 이렇게 머리말을 썼다. 이 책은 '세상을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며칠 전 필자는 이 책을 학고재 출판사로부터 선물 받았다. 이 책은 여성주의 미술의 대가인 윤석남 화백과 김이경 작가가 3·1절과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권기옥·김마리아·김명시·남자현·정칠성·이화림·박자혜·김옥련 등 여성독립운동가 14명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싸우는 여자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김이경 지음, 윤석남 그림, 한겨레출판)
▲ 싸우는 여자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김이경 지음, 윤석남 그림, 한겨레출판)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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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의 첫 장에서 43년의 화업(畫業)을 이어오고 있는 윤석남 화백은 10년 전부터 서양화에서 한국화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윤 화백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만났을 때 놀랐다고 하면서 "조선시대 초상화를 공부하다 보니 수백 년 동안 그려진 초상화 가운데 여성 초상화가 거의 없음에 실망하여, 처음에는 주변의 여성들을 그리기 시작하다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알게 되어 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알리기 위해 그들이 활약했던 곳을 찾아가 후손을 만나는 등 오랫동안 현장 취재 위주로 글을 써오고 있는 필자는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를 통해 윤석남 화백과 김이경 작가를 알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혼자 외로운 길을 걸어온 상황에서 동지를 만난 느낌이랄까?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서는 모두 14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루고 있다. 책을 펴 차례를 보면 윤석남 화백이 한 분 한 분의 특징을 채색화로 잘 묘사한 얼굴의 여성들이 왼쪽 페이지에 7명, 오른쪽 페이지에 7명, 합해서 14명이 소개되고 있다. 차례만 보고 있어도 얼굴 초상이 주는 이미지가 강렬해 빨리 본문으로 달려갈 듯한 느낌이 든다.

김마리아·강주룡·정정화·박진홍·박자혜·김옥련·정칠성·남자현·안경신·김 알렉산드라·권기옥·김명시·박차정·이화림.

 
김알렉산드라 김알렉산드라, 박자혜, 김옥련 지사 (왼쪽부터) 윤석남 그림
▲ 김알렉산드라 김알렉산드라, 박자혜, 김옥련 지사 (왼쪽부터) 윤석남 그림
ⓒ 윤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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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변변한 사진 하나 없었던 여성들의 초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니 14명의 삶을 한분 한분 새겨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확실한 존재감을 준다.
 
여기 저고리 한 벌이 있다. 바느질은 야무진데 옷 모양이 어설프다. 오른쪽 안섶이 왼편의 겉섶보다 눈에 띄게 짧다. 이 이상한 옷의 주인공은 김마리아.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한쪽 가슴을 잃고도 너희 할 대로 다 해라. 그러나 내 속에 품은 내 민족 내 나라 사랑하는 이 생명만은 너희가 못 뺏으리라 하고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

 
이는 14명의 여성독립운동가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하는 김마리아 지사 글의 첫 단락이다. 몇 해 전 정신여고에서 김마리아 지사 관련 취재 시에 마주쳤던 흰 저고리의 아픈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그런가 하면 평원 고무공장 여공으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을밀대(乙密台) 지붕 위에 올라가 투쟁하다 서른둘의 나이로 숨져간 강주룡 지사, 임시정부와 동고동락하며 독립을 위해 헌신한 <장강일기>의 주인공 정정화 지사의 이야기 등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는 노동운동가·간호사·비행조종사·임시정부의 주요인사·무장투쟁운동가·해녀 등으로 활약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내기 위해 윤석남 화백과 김이경 작가는 수많은 논문과 단행본 그리고 증언과 회고록 등의 1차 자료를 고증했다고 한다. 꼭지마다 윤 화백의 전신 초상, 상반신 채색 초상, 연필 드로잉 초상 등이 곁들여져 있으며 김이경 작가는 1인칭·3인칭 시점, 인터뷰, 다큐멘터리, 편지 형식 등으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그려냈다.
 
권기옥 권기옥, 김마리아, 남자현 지사(왼쪽부터) 윤석남 그림
▲ 권기옥 권기옥, 김마리아, 남자현 지사(왼쪽부터) 윤석남 그림
ⓒ 윤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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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2돌이 되는 해다. 지난 2월 25일 국가보훈처는 3.1절을 앞두고 새로 발굴, 포상한 독립유공자 275명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여성은 38명이다. 이로써 여성독립운동가 526명이 서훈을 받게 되었다(남성은 1만 6159명).

남성에 견주어 여성 서훈자가 적은 것은 독립운동을 한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포상하는 노력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서 김이경 작가가 다룬 14명 가운데 박진홍·정칠성·김명시·이화림 지사 등은 2021년 2월 25일 현재도 미서훈자다.

서훈받은 여성독립운동가 526명 가운데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서 다룬 14명은 극히 적은 숫자다. 하지만 윤석남 화백이 혼을 불어넣은 여성독립운동가 초상과 김이경 작가의 섬세한 묘사로 14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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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시집《사쿠라 불나방》,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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