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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세홍 사진작가는 1996년부터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피해자 140여명을 만나, 피해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지원하는 '겹겹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안세홍 사진작가는 1996년부터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피해자 140여명을 만나, 피해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지원하는 "겹겹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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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위안'이란 좋은 뜻을 지닌 말을 빌려 자신들의 행태를 미화했다. 전쟁의 속성상 어떤 여성도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해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책을 낸 안세홍 사진작가는 23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만나 "미국 등 서구사회에 만연한 (태평양 전쟁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이 하버드대 교수라는 권위자에 의해 표출됐다는 점에서 위기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설명한 논문을 써 문제가 된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의 주장에 대한 지적이었다.

안 작가는 "이번 사례는 서구사회에 잠재돼 있던 의식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앞으로 (일본 중심의 사고가) 정형화돼 버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며 "일본의 자본이 서구 대학의 학생과 연구자에게 전달되면서 그들 사회에 일본의 생각이 심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체 중에서 하나를 평가할 순 있지만 하나로 전체를 볼 순 없다. 또한 취사선택한 것에도 어느 정도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램지어 교수 논문엔 그런 내용조차 없다"라며 "법학 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된 자료도 없이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는 일본과 식민지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나라가 수도 없이 많은 상황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는 피해자들도 많다"라며 "위안부 문제를 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끌고 갈 역량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한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앞서 있고 오랫동안 들여다봐왔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안 작가는 1996년부터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중국 등에서 '위안부' 피해자 140여 명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피해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지원하는 '겹겹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아래 안 작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
 
 안세홍 사진작가는 1996년부터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피해자 140여명을 만나, 피해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지원하는 '겹겹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안세홍 사진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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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문제가 된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의 '태평양 전쟁에서 성매매 계약'이란 제목의 논문과 관련된 소식을 접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미국 등 서구사회에 (태평양 전쟁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이 하버드대 교수라는 권위자에 의해 표출됐다는 점에서 위기를 느꼈다. 서구사회에 잠재돼 있던 의식이 툭 튀어나온 것이라고 본다. 이번 의식이 (일본 중심의 사고가) 정형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 평소에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나.

"미국만 해도 일단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자세히 모르면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봤다.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한 주장이 아니라 일본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야기들 말이다. 강대국인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서구사회에 더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 램지어 교수의 주장의 핵심은 피해 여성들은 강제로 끌려간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고 따라간 매춘부라는 것이다.

"1937~1938년 (중일전쟁) 초반 일본인 여성들이 동원될 때, 잠깐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엔 당시 공창제가 있었는데 그 여성들을 데려갈 때 형식상 계약의 과정이 있었다. (학계에선 '위안부' 문제를 계약 관계로 설명하는 것 자체를 유엔이 규정한 반인류범죄로 본다 - 기자 주)

식민지 조선에선 그런 것조차 없었다. 행여 계약을 했더라도 공장에 취업하는 걸로 알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램지어 교수 주장엔) 이런 사례들이 아예 배제돼 있다. 식민지는 기본적으로 억압의 대상이다. 자원과 인력의 수탈도 당연하게 이뤄졌다. 일제는 사람들이 조선에서 먹고사는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남녀 불문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구하기 위해 어디든 가야 했다. 여성의 경우 공장에 취직한다는 말을 듣고 따라 나선 건데 실제론 '위안소'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어떻게 자발적으로 따라간 게 되나." 

-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를 보면 미성년 피해자 사례가 상당수다. 심지어 갓난아이의 엄마를 끌고 간 사례도 나온다. 이렇게 실존하는 사례만 봐도 램지어 교수 같은 주장을 내놓긴 어려울 것 같다.

"끌려간 경우는 물론이고, 속아서 간 것도 자발적인 게 아니다. 조선의 경우 식민지였기 때문에 강제로 동원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산둥에서 만난 한 조선인 피해자는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할 수 있다는 말에 한 살도 안 된 아들을 업고 돈을 벌러 갔다가 7년 동안 붙잡혀 피해를 입어야 했다. 특히 해외 점령지에서 끌려간 여성들의 경우 완전히 전리품으로 취급됐다. 일본이 형식적으로나마 피해 여성의 부모 등에게 허락을 받는 경우가 있긴 했다. 총칼을 들이밀면서 말이다. 전쟁 중 사람이 죽는 모습을 지켜본 상황에서 부모를 죽이겠다고 하면 끌려가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 앞서 말한 조선인의 사례는 취업으로 알고 간 경우인가.

"그렇다. 앞잡이가 따로 있고, 모집책이 따로 있고, 또 '위안소' 운영자가 따로 있다. 그리고 그 뒤엔 총독부나 일본군의 관여가 있었다."

- 이러한 사실은 1993년 '고노 담화' 때 일본이 다 인정하지 않았나. 

"맞다. 심지어 일본 여성의 경우에도 전쟁이 진행될수록 강제로 끌려간 사례가 많았다. 대부분 가난한 집 여성들을 인신매매를 통해 데려갔다. 일본 내 피해자의 경우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당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하나로 전체를 볼 수는 없다"
 
 안세홍 사진작가는 1996년부터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피해자 140여명을 만나, 피해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지원하는 '겹겹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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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램지어 교수는 당시 피해 여성들이 원하면 그만둘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끝나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외에 죽을병에 걸리거나 임신을 해 빠져나온 경우가 있었는데, (일본이) 책임지기 싫으니 돌려보낸 것이었다."

- 죽는 경우도 허다했지 않나.

"그렇다. 일반 사회였으면 살 수 있는 병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안에선 치료가 안 되는 것이다." (학살 피해를 당했다는 증언·자료도 많이 나왔다 - 기자 주)    

- 램지어 교수는 일한만큼 돈을 받았다는 주장도 펼친다.

"아예 돈을 받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그나마 돈을 받았다는 사람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용하던 돈을 받은 게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면 종잇조각과 다르지 않은 '군표'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피해 여성들이 엄청난 돈을 번 것처럼 주장하는데,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예를 들어 돈의 가치가 10만 원이 100원 가치로 변한 걸 놓고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완전한 오류다."

- 램지어 교수는 논란이 됐던 이영훈·박유하 등의 책을 적극 인용하기도 했다. 

"국내 인사들 역시 몇 개의 자료와 증언으로 그것이 전체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전체 속에 하나로 평가할 순 있지만 그 하나로 전체를 볼 순 없다. 또한 취사선택한 내용에도 어느 정도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램지어 교수 논문엔 그런 것조차 없다. 법학 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된 자료도 없이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논문이 발표돼 그것이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게 되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인용되는 파생효과를 나타난다. 과거엔 일부 우익들이 소심한 형태로 무리한 주장을 펼쳤는데, 지금은 진실이 아닌 것이 진실처럼 포장되고 있다." 

- 일각에선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란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학문의 자유,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된 근거를 갖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면 학문의 자유를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의 자료만 갖고, 그것도 굉장히 오류가 많은 자료에 근거한 주장이라면 그건 학문의 자유라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학문의 방종이다."
 
 안세홍 사진작가는 1996년부터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피해자 140여명을 만나, 피해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지원하는 '겹겹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안세홍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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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러한 왜곡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왜곡이 반복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램지어 교수의 경우엔 '미쓰비시 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일본의 자본이 서구 대학의 학생과 연구자에게 전달되고 그들 사회에 일본의 생각이 심어지는 것이다. 과거 미국 어느 대학에서 '위안부' 피해자 사례를 발표하는 전시회를 계획했고 내게 초청장까지 보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전시회 일정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동안 '사정상 취소됐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대학의 어느 교수가 전시회 개최를 강하게 반대해 취소된 것이었다. 그 교수는 (램지어 교수와 같이) 일본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지원을 받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일본의 입장을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시아 전체의 문제, 한국 역할 중요"

-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를 보면 약자, 특히 여성들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전쟁의 속성에 대해 자주 설명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약간의 인식만 있어도 '자발적 매춘부'와 같은 주장은 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은 '위안'이란 좋은 뜻을 지닌 말을 빌려 자신들의 행태를 미화했다. 전쟁의 속성상 어떤 여성도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피해자 이야기만 들어봐도 위협적인 상황에 처해 강제로 끌려간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일본은 연합군에 의해 보급로가 끊기자 군수물자는 물론 콘돔도 전방에 보급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해외 점령지에서 임신을 하지 못하는 어린 여성들을 골라 강제로 끌고 가기도 했다. 그 여성들이 과연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나." 

- 생리를 시작하지도 않은 이들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끌려간 이후 거기서 생리를 시작했단 증언도 있다. 자발적이란 말은 점령군들의 주장이다.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한 합의도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나."

- 한국 정부의 경우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 피해 여성들의 의사를 무시한 문제적 결정을 해 논란이 됐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제일 나쁜 쪽은 한국 정부였다. 일본은 지금껏 그런 요구를 해왔고, 그런 주장을 펼쳐왔다. 한국은 '위안부' 시스템에 대한 연구·조사조차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 더 많은 연구, 더 많은 자료 수집을 통해 일본 정부에 항의 의사를 표시해야 하지만 너무도 부족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박근혜가 정권을 잡은 특수한 상황까지 겹쳐 2015년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 아시아 곳곳을 다니며 많은 피해 여성들을 만나왔는데 그들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나.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이야기가 기억에 남지만 '왜 내가 그런 짓을 당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진상규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한다. 일본도 손을 놓고 있고, 피해 국가들도 손을 놓고 있다. 진상규명이 전제돼야 배상 등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본과 식민지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나라가 수도 없이 많은 상황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는 피해자들도 많다. 시민단체조차 없는 나라도 수두룩하며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는 나라도 많다. 필리핀의 경우 국립역사위원회가 2017년 수도인 마닐라에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동상을 세웠는데 이것이 곧 철거되고 말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내가 막을 수 없는 헌법상의 권리'라고 말했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상이 뽑혀 버렸다. 일본이 제공해온 차관 앞에 굴복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끌고 갈 역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앞서 있고 오랫동안 들여다봐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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