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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
▲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 김민영,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
ⓒ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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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글쓰기'라는 희미한 애정을 선명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선생님을 앞에 두고 고개를 숙여 문장을 써 내려갔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의 마음 속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주변의 사물과 마음 내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어느 날의 수업은 독서 토론이었다. 한 권의 책을 정해놓고 각자 읽고 오기로 했다. 독서 토론을 위해 자리를 빙 둘러앉자 강의실에 맴돌던 기운이 달라졌다. 강의실 앞 선생님만 바라보던 눈이 옆에 앉은 사람으로, 내 생각에만 집중하던 시선이 마주앉은 사람으로 향했다. 강의실 안 사람들이 서로 눈을 보고 목소리를 주고 받을 때에야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개별적 실존이 전체적 실존, 현실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수업과 토론을 진행하는 김민영 선생님이 소설 속 인물에게 공감하는지 물었다. 등장인물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고, 그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토론 진행자가 각자 생각을 풀어내도록 이야기의 밀도를 조절하는 사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들도 무장 해제되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독서 '토론'이라고 하면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기 바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타인을 위한 곁이 생긴 듯했다. 주장을 공고히 한답시고 목소리를 드높이는 일도 없었다. 독서 토론을 진행했던 김민영 선생님은 이를 '비경쟁 독서토론'이라고 불렀다. 나와 다른 의견을 기다리며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이다.

지난 2020년 11월 30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15년간 독서 모임을 하며 무수한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는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의 저자, 김민영 선생님을 만나 물었다. "비경쟁 독서토론이 무엇인가요?"
 
"흔히 '토론'이라 하면 결과와 승부를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결과와 승부가 있으려면 논쟁과 찬반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런 '토론' 자체가 부담스럽거든요.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경쟁하지 않는 '비경쟁 독서 토론'이라면 일반인들도 접근하기 쉬워요. 토론에 대한 거부감을 낮춰주고 토론 문화가 일상에 스며들 수 있거든요.

비경쟁 독서토론은 토론자와 진행자가 공평한 자리에서 같이 있고, 이 둘을 연결시켜주는 '논제'라는 게 있어요. 논제가 하나의 징검다리가 되어 토론자와 진행자 사이 맥을 부드럽게 연결시켜줍니다. 책을 다 못 읽어도, 독서량이 부족하거나 말주변이 없는 사람들도 재미있고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어요."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의 저자 김민영
▲ 김민영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의 저자 김민영
ⓒ 조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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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학습 공동체 숭례문학당을 시작으로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국 각지 도서관과 지자체를 찾아다녔다.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풍경을 만드는 비경쟁 독서토론 운동이었다. '도서관'이라는 하드웨어가 있다면, 이를 가동시키는 건 '책모임'이라는 소프트웨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독서 토론을 이끄는 운영자로 거듭나고, 이들은 전국 도서관에 뿌리내려 책으로 모이는 지역 사회를 만들어냈다.

- 독서 토론을 15년간 해오셨어요. 이렇게 꾸준히 해온 이유가 있나요?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이지만, 먼저 내게 도움이 되니 계속 할 수 있었어요. 독서모임을 위해 읽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 사이엔 책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가 다른 것 같아요. 오늘 오전 고전 책 모임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독서토론을 했어요. 토론을 위해 논제를 만드는데, 몇 번을 본 책이었지만 이제야 내가 주체적으로 책의 핵심을 짚어 나가기 시작하는 것 같더라구요.

작품 속 '지하'의 의미가 상당히 풍성하고 해체를 많이 해야한다는 것,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궁극적인 고독감을 작가가 깊이 있게 이해했다는 것을 예전에는 이렇게 깊이 있게 못 느꼈어요. 논제를 만들어가며 이 책의 가치를 알아가게 된 거죠."

- 독서를 대하는 매우 유익한 방법이네요.

"서평을 쓸 수도 있어요. 서평은 혼자 하니까 내밀하고 깊이가 있지요. 하지만 독서 토론은 쌍방이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나의 프레임이 넓어질 수 있어요. 저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개인적 오해나 상처들, 내 안의 뒤틀린 분노가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독서 토론을 하며 많이 치유됐어요."

- 나 자신이 깨지는 그 시간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독서 모임을 하기 전, 한 분야에만 치중해 책을 읽었을 때는 '자아가 비대해진 상태'에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대했던 것 같아요. 감정과 감수성만 있었지 '교양'으로서의 감수성은 없었죠. 한 사안을 다방면의 시각으로, 백 년의 거리로 볼 수 있는 안목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자기 만족적이기는 해도 다른 사람과 서로 의사소통하는 삶은 아니었지요.

독서토론을 하며 다양한 직업과 성별,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났어요. 산간 마을에 사는 사람부터 대학생, 고위 공무원, 회사 CEO까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가진 지나친 자기 주장, 자기 연민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불필요한 상처를 주는지 깨달았어요."

- 혼자 책을 읽을 땐 자신이 충만해지기도 하지만, 외로움도 함께 따라오는 것 같아요.

"불치병 같은 외로움이 오해를 만들어요. 이 오해는 상대가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낸 것이거든요. 이 오해가 계속되면 독서를 몇 년 해도 성장을 못해요. 독서토론을 하며 제일 좋았던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습관이 생겼다는 거예요. 부모를 이해하는 태도까지 달라졌죠.

그동안 어머니와 수많은 논쟁이 있었어요. 어머니를 향한 서운함과 분노가 있었지요. 독서토론으로 독서 방향이 달라지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어머니도 앉아있더라구요.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그 삶의 문맥을 이해해야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독서를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해도요. 비로소 사람 하나하나를 개체로 이해하게 되고, 그들과의 인간관계도 좋아지게 됐어요."

북클럽엔 어린이부터 시니어까지 전 연령층이 모인다.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독서 모임에 참여한 사람도 있고, 직접 '북클럽'을 검색해 찾아온 사람도 있다.

그의 블로그 '글 쓰는 도넛'에는 독서 모임으로 '꼬드기는' 글이 시시때때 올라온다. '이런 책을 혼자 읽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싶은 책이 있으면 바로 추천한다. 모임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 받기도 한다. 모임은 대체로 온라인이다. 2015년부터 온라인을 통한 독서 모임은 일상이 됐다.

'몇 시에 어디로 오세요'라는 지령은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없도록 한다. 지역과 권위를 뛰어 넘은 온라인 독서 모임은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나이는 몇인지 보다 책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한다. 성별도 스펙도 나이도 묻지 않는 자유로운 익명의 섬이 바로 책 모임이다.

- 책을 추천하는 사람들 사이 취향이나 관심사는 비슷한가요?

"하는 일도, 추천하는 책도 모두 달라요. 누구는 증권 회사를 다니고, 또 누군가는 마을 활동가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정치에 관한 책을, 또 누군가는 젠더, 한 작가의 문학 책을 추천하기도 해요."

- 추천한 책의 반응이 안좋을 때도 있나요?

"반응이 안 좋은 책이 당연히 있을 수 있어요. 책 자체가 형편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어려워 이해가 가지 않거나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경우에 그래요. 이런 반응이 나올 땐 긴장이 돼요.

하지만 그 책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싶을 땐, 분명 한두 명 정도 얘기를 잘 하는 사람이 있어요. 책 자체에 설득력이 있어 그 사람들의 말이 설득력을 갖거든요. 전원이 비난하거나 읽을 가치가 없다고 한 책은 다행히 없었어요."

- 진행자 자리는 많이 듣는 모습을 필요로 해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해 할 때도 있지 않나요?

"진행자의 자리가 적을수록 좋아요. 책 <침묵으로 가르치기>에서 말하는 최고의 교육은 '교사의 자리가 가장 적은 것'이에요. 학생들이 스스로 말하고 질문해서 교사의 자리가 거의 없어요. 교사는 매개만 할 뿐이죠. 좋은 독서 토론은 패널이 주인이지 진행자가 주인이 아니에요.

물론 제가 만든 논제로 토론하고 있지만 저는 조용한 주인일 뿐이에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어요. 듣는 걸로 충분히 이해 가고 해소돼서 말하는 것보다 생각이 넓어지고 정리될 수 있어요."

책을 통한 대화에서 다른 삶에 대한 관심과 관여는 사라진다. 즉물적인 사물보다 그 사람의 지성과 교양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결국 그 사람의 삶과 감정에 궁금증을 갖도록 이끈다. 개인사를 중구난방으로 쏟아붓지 않고도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도록 이끄는 대화가 바로 독서 모임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 - 북클럽 운영자의 기쁨과 슬픔

김민영 (지은이), 북바이북(2020)


태그:#책 모임,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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