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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한 사이라면 그 관계는 좀 더 특별해진다. 상대가 생명체라면 당연할 것이요, 생명이 없는 물건이라도 다르지 않다. 내게도 그런 특별한 관계가 있으니, 나와 햇수로 15년을 함께 해 온 내 '차'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고작 2~3년만 지나도 전과 다른 시대를 경험하게 되고, 특히 코로나19가 발발한 지난 2020년의 1년은 1년 전과 얼마나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던가.

이렇게 변화의 시기를 예상할 수도 없는 요즘 같은 시대에 15년을 같이 하다니, 참 나도 어지간한 사람이다. 원래 계획대로였더라면 2년 전에 이미 작별을 고했어야 할 사이었는데, 남편이 나 몰래 손댄 주식이 쪽박을 차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2년을 강제로 더 타게 된 것이다.
 
차주명은 남편 이름이었지만 실차주는 언제나 나였던 차였다.
 차주명은 남편 이름이었지만 실차주는 언제나 나였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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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10년이 가까울 무렵부터 새 차를 사고 싶어 틈만 나면 차량 검색에 열을 올리던 남편은, '새 차'의 'ㅅ' 자 입도 뻥긋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고, 내 차와의 인연은 그 긴 세월의 고리에도 끊기지 않은 채 이어져 오고 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더 용이했던 남편에 비해,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했던 나는, 주말과 방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차와 한 몸으로 움직여 왔다. 출근했다가 유치원에서 아이가 갑자기 열이 올라 병원에 가야 하면, 급히 조퇴하고 달려가야 하는 기동성이 필요한 쪽은 언제나 나였기에. 그래서 차주명은 남편 이름이었지만 실차주는 언제나 나였던 차였다.

처음 그(차)와 만났던 때, 크고 튼튼한 몸체와 그에 비해 섬세한 내구성까지 동시에 갖추어, 극과 극의 취향을 가진 남편과 나를 얼마나 만족시켜 주었던가. 그전에 운전하고 다니던 소형차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늠름한 모습에 먼저 반했고, 아이를 태우고 다닐 여성을 위한 배려가 엿보이는 실내 구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몇 년 간 애정을 나누었던 전 차와의 헤어짐에 일말의 서글픔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큰 몸은 체구가 작은 편인 내 몸을 안전하게 감싸 안아 세상의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보호해 줄 것만 같았다. 마치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들었던 그 '착각'처럼.

함께 살아야만 실상을 알게 되는 것은 부부 지간만의 일은 아니다. 운동 신경이 괜찮은 편이어서 첫 차를 시운전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자차 운전이 가져다주는 이동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던 나였다.

그런데 큰 몸체의 이 차는 두, 세 치수 큰 옷을 걸친 양, 내 몸과 따로 놀았다. 운전할 때마다 내 몸의 움직임 동선과 한참 동떨어진 느낌에 내가 차를 운전하는지, 차가 나를 운전하는지 모를 정도로 적응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시간은 어떤 불협화음의 관계도 일정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 주기 마련. 이내 큰 몸체에 익숙해진 나는,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으면 마징가제트나 로봇 태권 V(브이)(아, 옛날이여~)에 올라탄 주인공처럼, 무쇠 팔, 무쇠 다리를 가진 철의 여인이라도 된 듯했다.

전의 작은 차를 몰 때는 차량들이 항상 나를 추월해 앞질러 갔었다. 그런데 이 차의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차량들이 홍해의 바다가 갈라지듯 옆 차선으로 비켜나곤 했으니, 그때의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그래도 과유불급이라 했으니, 조심했어야 했다. 3년이 넘는 전 차 운전 경력과 시골길을 달릴 때 알아서 비껴주는 다른 차들의 양보에 도취되어 아찔했던 생과 사의 기로를 맞기도 했으니.

한여름 한적한 지방 국도는 가로등도 많지 않아 평상시에는 호젓하고 분위기 있는 드라이브를 하기에 그만인 운전길이다. 그렇지만,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이 여름휴가를 위해 렌터카를 빌린, 한껏 흥에 취한 20살 초보 운전자라면 이야기가 매우 달라진다.

우회전 길로 접어들기 위해 우측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돌던 내 차량 후미를,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려와서 들이 받쳤던 기억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오른쪽으로 향하던 내 차는 들이 받힌 속도에 못 이겨 앞쪽으로 팽개쳐졌다. 그대로라면 도로와 마을의 경계를 이루던 도랑으로 곤두박이칠 쳐지고 말았을, 절체절명의 순간!

오직 살아야겠다는 정신으로 왼쪽으로 살짝만 핸들을 돌리면 그 상황은 모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핸들은 내 마음처럼 살짝만 움직여주지 않았고, 그렇게 한 바퀴 회전한 내 차는 국도 중앙분리대와 격렬한 충돌을 한 후에야 멈춰 섰다.

그 시골길, 그 어둠에, 만에 하나, 호젓한 시골길 밤드라이브를 즐기던 어느 차량이 앞못보고 왔다가 갑자기 회전하는 내 차와 들이받는 봉변을 당하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가. 무서워 팔, 다리를 진정하느라 한참을 현장에서 덜덜거렸던,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순간. 어찌 되었건, 그 상황에서 나를 살려 주었던 건, 큰 충돌에도 견뎌준 튼튼한 차체 프레임 덕분이었다.

15년을 몰다 보니 여기저기 갈아줘야 할 부품도 많아지고, 그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이제 진짜 바꿔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여기저기 기관들의 교체와 고장의 신호를 받을 때는, 이 녀석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나 보다, 싶다.

유예했던 차 교체 시기가 곧 다가온다. 지은 죄가 있어 그동안 티 안 나게 몰래몰래 검색하던 남편은, 이제 대놓고 매일매일 차량을 검색한다. 4기통과 6기통 디젤 엔진의 차이를 설명하고, 자율 주행 차량을 옵션으로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국내 새 차를 사느니 그 가격이라면 2년 미만의 외제중고차를 사는 게 가성비가 좋다느니, 참 제대로 신나셨다.

내 쪽이 한 몸이었던 시간이 월등히 많았으니 당연히 더 정이 든 쪽도 남편보다는 내쪽일 터다. 직장 관계로 결혼 직후 3년간 떨어져 살던 시기에, 내가 아플 때마다 병원으로 데려가 주었던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내 차였다.

결혼 후 맞이한 시어머니 첫 생신 때 남편 없이 혼자 어머니를 찾아뵙고 미역국을 끓여드렸던, 처음이자 마지막 효도도 이 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친정 엄마가 봐주시던 딸아이에게 나를 데려다준 것도, 남편과의 언쟁으로 마음 둘 곳을 못 찾고 찾은 곳도 이 차 안이었다.

남편이 차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얘기를 주절주절거리는데 내 귀에 한 마디가 꽂힌다.

"지금 차를 사기 참 애매한 시기긴 해."

남편은 자율주행 옵션과 한동안 잦았던 국내 폭발 사고로 국내 유입이 중단되었던 외제차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었다. 운전만 했지, 차를 잘 몰라 벙어리처럼 듣기만 하던 내가 유일하게 한 마디 대꾸한다.

"그럼, 기왕 오래된 거, 1년만 더 타던가."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중고차, #차량, #SUV차량, #신차교체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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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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