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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브로이과 곰표 밀가루의 콜라보레이션 맥주
 세븐브로이과 곰표 밀가루의 콜라보레이션 맥주
ⓒ 윤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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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맥주 시장에서는 그동안 동일한 정체성으로 소비되던 수제 맥주의 분화가 예상된다. 작년까지 맥주 시장은 캐롤(Carroll)이 제시한 자원분할이론(resource partitioning theory)에 따라 대형 맥주 회사들이 만든 틈새 시장에서 수제 맥주가 생존하고 성장하는 모형을 따라 왔다. 하지만 캐롤의 이론이 적용되던 한국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함에 따라 올해부터 수제 맥주 회사들 사이에서도 본격적인 세분화가 시작될 것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 수제 맥주는 대중에게 이미지로 소비되며 성장했다. 오비와 같은 대형 맥주 회사들은 자사 브랜드인 핸드앤몰트, 구스 아일랜드 등을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하며 본격적으로 수제 맥주 시장에 개입했다. 실제로 오비는 자사 공장에서 생산되는 덕덕구스, 유미의 에일, 모카 스타우트 등을 통해 '수제'라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자산화하고 있다.

특히 자본력을 갖춘 수제 맥주 회사들이 '수제 맥주 4캔 만원 시장'을 형성하며 본격적으로 대중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대기업 맥주와 명확한 전선을 긋지 않고 대중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수제'라는 단어가 '고급'과 '로컬'에서 '재미'로 바뀌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곰표, 말표, 유동골뱅이 등 이종 산업 간 콜라보레이션 맥주는 '수제'라는 가치를 경쟁적으로 소비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결과는 그동안 '수제'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던 소규모 수제 맥주 회사들을 점점 분화시킬 것이다. 폴 브라이언(Paul Brian)의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공간 역학 이론'에 따르면 크래프트 맥주 계층(class)은 일반적으로 3개로 분화된다. 시에라 네바다와 같이 대중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스타일을 만드는 이스태블리쉬드(Established), 로컬 시장을 대상으로 작지만 혁신적인 맥주를 만드는 이노베이티드(Innovated), 그리고 대중적인 스타일을 만들되, 전국 시장이 아닌 중형 시장이 대상인 업앤커밍(Up-and-coming)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자본력과 생산력이 분화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4캔 만원과 OEM이 가능한 중대형 계층, 펍이나 주점같은 유흥용 시장 유통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형 계층, 브루펍 형태로 지역 상권을 중심으로 하는 소형 계층, 그리고 세컨들 브랜드를 통해 수제 맥주 시장에 진입하는 대기업 계층이다.

이런 분화에 따라 '수제'라는 단어는 크래프트 씬에서 용도 폐기될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대기업 맥주 회사와 자신들을 구분했던 가치가 무너지면서 '수제 맥주'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논란도 함께 예상된다. 전통주 업계에서 우리술과 장수 막걸리를 구분하는 것과 같은 움직임이 소규모 수제 맥주 업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프랜차이즈 맥주들

작년에 완화된 두 가지 규제는 프랜차이즈 회사들에게 새로운 사업적 기회를 만들었다. 음식을 동반한 주류 배달의 합법화 그리고 OEM 맥주 생산이다. 이 두 가지 규제 개선은 배달 위주의 사업을 펼치는 프랜차이즈 기업들에게 희소식이었다. OEM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 맥주를 대량 생산한 후, 가맹점을 통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맥주보다 낮은 가격으로 생산과 판매가 가능한 자사 브랜드 OEM 맥주는 추가적인 매출과 마케팅 진작이라는 가능성을 열었다. 교촌 치킨이 가장 적극적으로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는 가운데 치킨 업체 뿐만 아니라 맥주와 피자 프랜차이즈 등 다양한 업체들이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프랜차이즈 OEM 맥주 생산은 소규모 양조장보다 중대형 양조장에게 기회가 될 것이다. 캔 생산 라인을 갖춘 회사들이 적극적인 협업을 희망할 것이며, 롯데와 하이트 같은 대기업들 또한 이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향후 시장의 확대는 물량과 가격 그리고 유통력 등 모든 면에서 대기업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기획에 따라 프랜차이즈 유흥용 맥주뿐만 아니라 편의점 시장용 협업 맥주도 등장하며 가정용 맥주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대중들이 아는 '수제 맥주 시장'은 향후 대기업들 간 경쟁 시장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 이상 '힙'하지 않은 콜라보레이션 맥주

2018년부터 진행된 레트로 훈풍이 마침내 맥주에게도 다가왔다. 레트로 브랜드와의 이종 간 콜라보레이션 또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첫 주자는 오비 라거였다. 레트로 브랜드 진로 소주의 성공을 시작으로 오비 맥주도 자사의 레트로 브랜드를 복원했다.

크래프트 맥주 씬에서는 대한제분의 곰표와 세븐브로이의 콜라보레이션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곰표 맥주의 성공으로  말표, 유동 골뱅이와 같은 이종 간 콜라보레이션 맥주가 뒤를 이었으며, 웹툰의 주인공을 테마로 한 유미의 에일, 호랑이 형님 같은 맥주도 출시되었다.

레트로 마케팅은 기존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를 타겟으로 진행되었다. 기성 세대에게 옛 브랜드는 촌스럽고 올드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새롭고 참신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레트로 브랜드는 새로운 브랜드와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곰표와 말표 같은 맥주의 소비 기준은 향과 맛이 아닌 브랜드였다.

올해도 콜라보레이션 맥주 프로젝트는 유사하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그 중심이 맥주가 아닌 레트로 브랜드인 이상 이 흐름은 단순한 패션에 머물 것이다. 이런 트렌드는 초기에는 힙하지만 소비가 지속될 수록 피로도와 지루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2021년까지 이종 간 콜라보레이션은 이어지겠지만 그 흐름은 둔해 질 것이다.

오히려 하이트 맥주의 '크라운 맥주'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롯데와 같이 장수 브랜드를 보유한 대기업에서 이종 간 콜라보레이션 맥주가 출시될 가능성도 높다. 브랜드 확장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레트로는 남겠지만 맥주는 사라질 것이다.

주류 스마트 오더, 새로운 기회이자 탈출구
 
데일리샷 주류 스마트 오더
 데일리샷 주류 스마트 오더
ⓒ 데일리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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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스마트 오더는 온라인으로 주류 결제를 한 후, 정해진 장소에서 소비자가 직접 픽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온라인 주류 결제를 위한 성인 인증 시스템이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라인 주류 구매는 불법이다. 음주 확대로 인한 국민 건강 저하와 청소년 음주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절충안으로 나온 주류 스마트 오더는 온라인으로 주류 결제를 하고 픽업 장소에서 구매자 인증을 하면 직접 가져갈 수 있는 제도다. 온라인 주류 판매를 반 정도 풀어 준, 어중간 한 모습이지만 마트와 편의점 진열대에 납품할 수 없는 대부분의 국내 수제 맥주 업체들과 수입사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리적으로 한정된 진열대를 가지고 있는 편의점들은 온라인 속 가상 주류 진열대를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마트와 편의점에 상시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업체들은 비교적 낮은 진입장벽으로 메인 유통 채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매출이 줄어든 펍이나 맥줏집 같은 유흥음식점도 픽업 서비스를 통해 부가적인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현재 주류 스마트 오더는 새로운 주류 유통의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GS와 CU 같은 대형 편의점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소비자들은 GS 팝과 같은 자사 어플리케이션 내에 있는 주류 오더 시스템에서 결제를 한 후, 주위의 가장 가까운 가맹점을 선택해 픽업을 할 수 있다. CU 또한 네이버와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데일리샷과 같은 업체는 펍이나 맥줏집과 제휴를 맺어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사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결제를 마친 맥주를 주위의 가까운 펍에서 픽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와 유사한 회사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2021년은 이 제도가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0년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단계였다면 올해는 본격적인 성장과 경쟁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유통사와 제조사, 수입사 모두 주류 스마트 오더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며, 결국 마케팅과 기획력이 그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맥주 온라인 판매가 요원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그 대안으로 한동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어느 경쟁 시장과 마찬가지로 이 채널에서도 기획과 마케팅이 '구분'을 위한 핵심이 될 것이다.

생존과 성장이 가능한 시장을 바라며

2020년 코로나는 변수였지만 2021년 현재는 상수다. 코로나 인한 소비 문화의 변화는 산업 생태계를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역병이 상수라면 우리는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변화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사 결정에 반영하는가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업체만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2021년은 맥주 산업에 있어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시기다. 중요한 건 모든 시장 참여자의 생존과 성장이다. 새로운 변화가 굴곡이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해답은 언제나 등잔 밑에 숨어있다.

태그:#수제맥주,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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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서 작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며 맥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맥주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사)한국맥주문화협회를 만들어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beerg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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