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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추리 예당산단 화학공장 지붕 위로 솟아오른 굴뚝들.
 오추리 예당산단 화학공장 지붕 위로 솟아오른 굴뚝들.
ⓒ <무한정보신문>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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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산업단지가 꼭 백지화돼고향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으면 좋겄슈."

4일 오전 7시, 충남 예산군 고덕 상장2리 주민들은 충남도청 앞에서 예당2일반산단을 반대하는 손팻말을 드는 것으로 신축년을 시작했다.

지하주차장 입구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행렬의 대부분은 70~80대 어르신이다. 이날 아침기온은 영하 8도. 2시간여 동안 꼬박 자리를 지킨 이들의 눈썹 끝엔 하얀 얼음이 맺혔다.

한 어르신은 차가 들어올 때마다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생존권 위협하는 예당2일반산단 시행중단하라', '산업단지 몰아내고 사람답게 살아보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행여 못 보고 지나칠까 염려돼서다.

"산단을 유치해서 지역경제 활성화하고 일자리 창출하는 거 다 좋아유. 근데 그게 누굴 위한 것인디. 우리는 대대로 살아온 고향땅에서 쫓겨나고, 업자들만 돈 벌어 부귀영화 누리겠죠" 

또 다른 주민은 "군수님한테 얘기한 적 있어요. '이 산단이 마을 가까이에 들어서도 문제없는 시설이라면 군청 옆에 가도 되겠냐'고요. 상장2리엔 70가구가 모여사는데 고향 앞으로는 고속도로 뚫리고, 뒤엔 산업단지 들어서고, 폐기물매립장도 온다고 하잖아요. 이게 말이 되나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산단 예정부지가 우리집에서 길 하나 건너예요. 지금도 예당산단과 화학공장에서 발생하는 공해 때문에 어려운데, 하나가 또 들어온다고 하면 어떻게 살겠어요. 고생스러워도 살기 위해 이렇게 나와 우리의 뜻을 알리는 거에요."

올해 72세가 됐다는 어르신의 꼿꼿한 자세가 흔들림없다.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지곡리 화학공장 바로 옆에 사는 주민들의 '희망의 끈'은 예당2일반산단이다. 이를 반겨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악취와 분진 때문에 더 이상 조상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에서 살 수가 없어 산단이 들어서면 땅을 팔아 떠나겠다는 것이다.

이곳은 100세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다녔을 만큼 장수마을로 유명한 동네였지만, 언젠가부터 80살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화학공장이 여기서 200미터밖에 안 떨어져있어요. 일주일에 2번 이상은 심한 악취가 나 여름엔 문을 못 열어놔요.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분진 때문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새카맣게 때가 껴요"라고 호소했다.
 
고덕 예당2일반산단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덕 예당2일반산단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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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종을 앓아 수차례 수술대에 올랐다는 할아버지는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

"11년 동안 화학공장들 사이에서 살다보니 이렇게 됐어요. 집을 팔고 떠나려했지만 아무도 안 산다는 거야. 농사를 지을래도 몸이 안 좋아져 할 수가 없어요."

악취가 나 군에 신고해도 그때뿐이란다. 오죽하면 군청 공무원에게 방을 내줄 테니 며칠 묵으며 실상을 봐달라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공장에서 불도 몇 번 났어요. 군이 위험한 공장을 왜 여기 사람사는 데 앉혀놨나 이해를 못하겠어. 우리보고 살라는 건지 죽으라는 건지... 공해만 아니면 나갈 사람 아무도 없어요. 고향땅을 누가 떠나고 싶겠어요."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치는 모습에서 그가 겪어온 고통의 세월이 보인다.

주민들이 매일같이 거리로 나서고, 사고라도 날까 불안에 떠는 동안에도 공장은 돌아간다.

'기업유치를 통한 지역발전'이란 미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주민들이 새해에 던진 묵직한 질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화학공장, #산업단지, #공장 환경문제, #생존권,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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