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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률 53.32%을 언급하며 의사시험 합격률 95%를 문제 삼았다. 그런데 이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의 차이조차 간과한 비교육적 문제의식이다.

2002년 초임교사 시절 장학사 호출을 받았다. 수행평가가 화근이었다. 장학사의 "왜 모두에게 만점을 주었냐"는 물음에 모든 조가 훌륭하게 발표를 수행했으니 모두에게 만점을 주었다고, 사범대에서 배운 수행평가의 원칙 그대로 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어떻게 줄을 세웁니까, 단 0.1점이라도 차이를 둬야지"라고 호통쳤다.

사범대에서의 '보다 교육적인 평가는 절대평가이며, 특히 수행평가는 교육의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평가하는 만큼 절대적 기준에 의해야 한다'는 배움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고등학교에서는 모두가 같은 점수면 '1등급이 나오지 않'아 대학진학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모두에게 만점을 주어서는 안됐다. 어떻게든 줄세우는 평가를 해야 했다. 더이상 발표식 수행평가를 할 수는 없었다. 줄세우기엔 쪽지시험이 가장 적합했다. 교과서 문구를 누가 가장 정확히 그대로 썼는지로 점수 차이를 벌여야 학생들이 '공정'하다고 납득할 수 있으니. 하지만 그것은 '교육'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격차를 만들어내려는 시험은 학생들이 배워야할 것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다수의 실력이 어떻든 누군가는 승자가 누군가는 패자가 되게 하는, 시험을 위한 시험일 뿐이다.

우리 사회엔, 모름지기 시험이란 줄세우기 그 자체이며 좁은문 앞에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단 믿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경쟁은, 시험을 위한 훈련은, 교육이 아니다. 전체의 능력이 어떠하건 무조건 줄 세워 앞쪽 소수에게만 전리품을 허락하는 시스템. 서로 밟고 밟히며 경쟁하고 위쪽에 올라선 이가 아래쪽 이들을 차별하고 아래쪽 이들이 그 차별을 수용하는 시스템. 이는 진정 배워야할 것이 아닌 시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식 쌓기 훈련에만 전념케하며 관련 교육을 완전히 붕괴시키니 '반(反)교육'적이다. 또 대부분이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승자와 패자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니 '불공정'하다. 절대적 기준 앞에서만이 진정한 교육이 가능해진다. 진짜 필드에 나가 활용할 실용적인 교육, 교육다운 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것이 독일과 프랑스, 북유럽 등 교육선진국의 '학교'들에서 진정한 교육을 가능케하는 중요한 비결이다. 독일의 아비투어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도 모두 절대적 기준에 의한 고등학교졸업자격시험이며 대다수가 합격할 수 있기에 줄세우기와 치열한 경쟁을 수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전국 3천등 안에 들어야 의대에, 전국 4800등 안에 들어야 스카이에 갈 수 있다. 내 실력이 어떠하든 옆친구보다 점수를 조금이라도 덜 받으면 낙오하는 냉혹한 상대평가에 의한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정상적인 초중고 교육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고영인 의원이 '합격률이 높아 문제'라는 의사시험은 절대평가다. 필기시험의 경우 의료법 제9조, 동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의2에 따라 "전 과목 총점의 60% 이상, 매 과목 40% 이상 득점"을 하면 의사의 자격을 취득한다. 의사시험 합격률 95%는, 의대생 대부분이 의사의 절대적 기준을 통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이 절대적 기준을 통과했다고 그것만으로 그 교육기관의 교육을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전문교육기관의 상당수가 해당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곳의 존재이유를 의심해야 한다. 고영인 의원이 의대교육을 문제삼고자 했다면 파행적인 교육 장면을 하나라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의대생 하면 0.1점의 시험점수에만 목을 매는 고시생이 아니라 가운을 입고 실습에 전념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적어도 의대교육이 예비의료인 양성기관의 설립취지를 실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로스쿨은 얘기가 다르다. 너 아니면 내가 탈락하는 시험 앞에서 필드에 나가 활용할 실무적·전문적 교육도, 법조인의 바른 인성함양 교육도 사치다. 그저 내 옆사람보다 문제를 더 빨리 푸는 기술만이 중요하다. 이는, 대부분이 변호사의 업무를 수행할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다 해도 무조건 응시자의 절반 정도는 그 자격증을 받지 못하게 변호사시험이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변호사시험은 의사시험과 달리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자격의 절대적 기준은 변호사시험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1월에 변호사시험을 치르면 4월에 법무부에 15인의 변호사시험관리위원이 모여 합격자의 수를 결정한다. 이때 위원 과반수는 '현재 내지 장래 변호사'다. 공개된 관리위원들의 회의록에서 합격자 결정과 관련해 '대국민 법률서비스가 얼마나 더 필요한가'는 논의된 일 없이 '변호사시장의 어려움'만이 거듭 확인되는 것은 이들의 '현재 내지 장래 변호사'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커트라인의 변화는 합격자 수 통제의 역사를 드러낸다. 표준점수제를 활용함에도 커트라인은 제1회 720점에서 제9회 900점으로 무려 180점이나 상승했다.

그뿐 아니다.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엔 의대와 의사시험엔 없는 '미졸업자'와 '오탈자'가 있다. 미졸업자란, 로스쿨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해 졸업자격이 충분함에도 변호사시험 유사의 모의시험 성적으로 변호사시험 불합격이 함부로 예단돼 졸업장을 받지 못한 이를 말한다. 오탈자란, 로스쿨 졸업년도부터 5년이 지나 변호사시험에 평생 다시는 응시할 수 없게 된 이를 말한다. 현재까지 로스쿨의 미졸업자는 1112명, 오탈자는 891명이다.

물론 의대와 로스쿨 모두 '입구의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의도적으로 입학정원을 통제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국민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서도 각 전문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교육만 놓고 본다면 의대 아닌 로스쿨이 문제다. 의사시험을 절대평가로 하여 교육을 정상화한 의대와 달리 좁은 상대평가의 관문 앞에 로스쿨 교육은 완전히 붕괴되어 있다. 의사시험학원은 존재하지 않고 의사시험 낭인, 의대의 고시학원화와 같은 말들은 낯설지만, 변호사시험 고시학원들은 성업중이며 신림동엔 변호사시험 낭인이 넘쳐나고 로스쿨의 고시학원화에 관한 언론보도는 끊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떻게 변호사시험을 의사시험의 나아갈 길로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관련 전문교육기관을 두고도 상대평가로 상당수를 잘라내 관련 자격증을 주지 않는 분야는 로스쿨이 유일하다. 의대·간호대는 절대적인 표준화시험의 점수 기준을, 교대·사대는 절대적인 학점이수의 기준을 두고 있다. 또 로스쿨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변호사시험을 소수만 선발하는 상대평가로 운영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와 일본 밖에 없다. 미국의 변호사시험도 유럽의 그것도 모두 절대평가다. 한편 150%를 선발해 교육 후 50%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외교관을 양성하다가 결국 입학생 전원을 외교관으로 임용하는 방향으로 2017년 관련법을 개정한 국립외교원의 사례는 전문교육기관의 입구와 출구의 비대칭이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을 잘 말해준다.

로스쿨을 만들고도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수를 통제하는 우리의 법조계. 그리고 그런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의사시험 합격률이 본받아야 한다는 국회의원. 그들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다. 지금 당장 의대와 로스쿨의 교실로 가 어떤 교육이 펼쳐지고 있는지 한 번만 비교해보라고.

덧붙이는 글 | 법률저널에 중복송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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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이제 막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odette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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