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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고즈넉한 시월. 구절초 향기 그윽한 남산골. 바람이 전하는 가을의 전설 궁금했나요. 노랑 빨강 막 물든 느티와 은행 나뭇잎. 청학동천 청아한 물소리 타고 날아든 노란 나비. 생채기는 아직 덜 아물었습니다. 품속 깊이 간직해둔 낡은 수첩 하나 꺼내 써 내려 갑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남산 한옥마을 나들목에 십수 명이 모여든 건 10월 17일. 박정희가 불법 유신독재를 선언한 지 딱 48년 되는 날. 행사 이름이 '유신 올레'. 유신독재 흔적을 찾아 떠나는 도심 순례 여행이죠.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3공화국, 신군부 쿠데타로 이어지다 보니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제대로 된 심판이나 평가가 없었던 게 원죄였죠.

친일·수구로 남아 사회 곳곳 불공정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젊은 세대들의 '헬조선', '금·흙 수저' 한탄을 자아내고 있죠. '토왜'나 '일베'로 제나라를 모욕하고 미국·일본 수구보수를 옹호하는 기막힌 21세기는 그 때문이죠. 유신잔재 청산이 절실하다는 의지로 탄생한 유신청산민주연대. 도심 걷기여행을 주최한 단체입니다.
 
 중앙정보부 ‘지하 고문실’ 악명을 떨치던 6별관 자리.
 중앙정보부 ‘지하 고문실’ 악명을 떨치던 6별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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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총독(통감) 관저터에 들어선 위안부 추모 조형물 ‘세상의 배꼽’.
 일제강점기 총독(통감) 관저터에 들어선 위안부 추모 조형물 ‘세상의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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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향기 그윽한 남산골서 꺼내든 낡은 수첩

오전 10시 한옥마을. 한적합니다. 코로나19의 위력 때문이죠. 1994년 남태령으로 이전한 수방사 터에 조성한 시설. 순종 계비 순정황후 윤씨 친정집, 관훈동 민씨와 옥인동 윤씨댁 등 조선시대 여러 신분을 대표하는 한옥 다섯 채를 이전해 복원한 것이죠. 삼청·백운·옥류·쌍계와 함께 한양 5대 동천으로 꼽혔던 청학동천 골짜기에요.

일제강점 말기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경에 체포 기소된 이희승 선생 묘비. 영화 말모이에 보면 우리말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쳤던 이들을 잘 묘사하고 있죠. 해방 뒤 남산골 샌님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은 수필 '딸깍발이' 작가. 최현배 선생과 함께 한글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 기여한 국문학자를 기리며 남산골을 오릅니다.

순우리말로 마뫼. 이두음 한자표기 목멱. 중국에서 전래한 종남산(終南山), 개성 경사를 끌어왔다고 해 부른 인경산(引慶山). 조선의 수도 한양의 안산(풍수지리 정남쪽 산). 궁궐의 남쪽을 지키는 곳. 팔도의 전란을 한나절이면 왕실에 알리는 통신, 경봉수가 자리한 곳. 총독부가 인왕산으로 옮겨버린 목멱대왕 신사가 있던 영험한 땅이죠.

한옥마을에서 남산1호터널길 고가도로를 넘으니 숨이 콱 막혀옵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어둠의 땅. 박정희 정권의 서슬 퍼런 공작정치기관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자리에 들어섭니다. 72년 석관동 의릉에서 옮겨왔죠. 터널을 지나니 5별관. 대공수사를 맡은 건물입니다.

참가자 오용식 목사가 "여기 끌려왔다"고 흥분된 목소리를 전합니다. 도시빈민 목회와 사회선교 및 사회복지관장을 했던 그는 한신대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5별관에서 수사를 받았다는군요. 또 다른 분은 "떨리고 무섭다"고 그러네요. 울긋불긋 이리 아름다운 숲속에서 고문 폭행으로 간첩과 불순분자를 만들고 때로는 죽이는 걸 서슴지 않았다니 믿기지 않는다면서요.

목멱대왕 영험한 땅, 육중한 철문에 숨 막히는 터

유스호스텔로 사용 중인 중정 본부. 그 앞 지하 고문실로 알려진 6별관. 1백여 미터 아래로 중정 행정관(당시 기조실). 그 뒤 숲속 중정부장 관사와 경호실. 맨 아래 '기억6' 공원 조성 중인 6국(대학 민주인사 고문 수사로 유명한). 스무 채가 넘는 정보기관 건물 중 십여 채만 남아 서울시 재난본부 또는 문화시설로 쓰이고 있습니다.

말문이 막히는 또 한 곳. '기억의 터'입니다. 일본공사관에서 을사늑약(1905년) 뒤 들어선 통감부 관저. '경술국치'(1910년) 강제조약이 이뤄진 곳. 거기 위안부 추모시설이 들어선 겁니다. 소통하며 기억하자는 '세상의 배꼽', 김순덕 할머니의 '끌려감' 그림으로 장식된 '대지의 눈'. 눈 부릅뜨고 기억하고 지켜야 할 이유를 알려주네요.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을 새긴 위안부 추모 조형물 ‘대지의 눈’ 앞에서 해설을 듣는 여행자들.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을 새긴 위안부 추모 조형물 ‘대지의 눈’ 앞에서 해설을 듣는 여행자들.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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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김근태 선생 전기고문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경찰청 대공분실.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김근태 선생 전기고문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경찰청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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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회현동 예장동 일대는 총독부(이전 통감부) 자리. 임진왜란 때 한양 침략군이 주둔했던 터죠. '왜성대'라 부릅니다. 임오군란과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일본 무사들을 막다 희생된 이들을 추모한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만들고, 이토 히로부미 사당 박문사를 지었던 일제. 그들은 남산 일대를 왜색으로 뒤덮은 겁니다.

점심은 숭의여대 앞 목멱산방 비빔밥입니다. 3년 연속 미슐랭가이드에 등록된 음식점. 코로나19로 조심스럽게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후 행군을 시작하며 문득 올려다본 남산. 겸재 정선의 그림 '목멱조돈'이 떠오릅니다. 영조 때 진경산수화를 제창한 화가죠. 중국 산수화 모사 그만두고 우리 그림 그리자고 한 분입니다.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을 들어서니 안내를 맡은 두 분이 맞이합니다. 한국청년연합 자원 활동가들이죠. 경찰청(과거 치안본부) 대공분실, 85년 김근태 선생 전기고문과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현장입니다. '00해양연구소' 위장 간판을 걸었던 곳. 육중한 철문, 5층 조사실로 이어진 철제 달팽이계단, 물고문 현장을 보존해 놓은 8호실, 전기고문방. 말문이 막힙니다.

미슐랭가이드 3년간 스타 음식점 정갈한 비빔밥

서울시립미술관 가는 길.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서는데 수구 '태극기부대' 깃발을 든 이들이 지나갑니다. '유신올레' 배너를 본 듯 더 거센 목소리로 빨갱이, 문재인 정권에 쌍욕을 해댑니다. 사이를 비집고 도착한 구 대법. 일행 중 한 명이 '여기 어딘가에 있던' 서울지법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하네요.

사라져 버린 덕수궁 정문 인화문(仁化門). 이쪽저쪽 잘려 나간 궁궐.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고종의 길'. 을사늑약(1905년) 고통을 간직한 중명전. 영국대사관 당장 곁으로 덕수궁 내부를 관통하며 성공회성당을 지나 시청 앞으로 새로 난 길을 따라갑니다. 광해군, 고종의 체취가 스며있는 궁궐을 막 벗어나니 마주하는 서울시의회 건물.

일제 때 덕수궁 터를 일부 빼앗아 건립한 경성부민회관. 54년부터 75까지 국회의사당이었죠. 헐어버렸지만 길 건너 서울파이낸스센터 자리에 있던 2·3별관까지. 이승만 정권 사사오입 개헌, 유신체제를 열었던 71년 국가보위특별조치법 제정, 10월 유신 헌법 개정안이 확정된 곳입니다. 69년 3선 개헌 때 심야 '도둑 개회'와 '주전자뚜껑(의사봉 대신) 선포' 긴박감이 밀려오는 듯합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 국회의사당 논의가 여럿 있었습니다. 종로3가로 가자더니 유야무야. 조선신궁(현재 백범광장) 자리로 확정하고 공사를 시작했으나 군사쿠데타로 중단 폐기됐죠. 박정희는 여의도를 쿠데타 기념시설로 채우며 국회도 거기 건립했습니다. 75년 이사 전까지 세운상가 몇 개 층을 임대해 사용하기도 했죠. 유신독재가 지은 의사당에 앉아 옛일 기억 못 하는 선량들. 그들이 유신잔재청산에 나설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과거에는 의사당에서 지하 통로로 2·3별관으로 이동했는데, 요즘은 길 위 건널목이 생겼습니다. 건너편 프레스센터와 서울신문.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문구를 세긴 조형물 '굽히지 않는 펜'. 74년 동아에서 시작해 조선 등 여타 신문으로 퍼져갔던 '언론자유' 선언(이듬해 동아·조선 170여 명 해직) 기념물이죠. 80년 신군부의 중앙지(6개)·경제지(2개)·통신(1개)·방송(2개)·지방지(1도1사) 통폐합으로 해직된 1천여 명(45개 언론사 강제폐쇄)의 아픔도 서린 곳입니다.
 
 민주인권기념관 전시실.
 민주인권기념관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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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현장.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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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입·3선·10월유신 개헌(안) 날치기 의사당

'거짓된 글'을 경계한 언론인들의 반성 문구. 그 현장에 서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기러기'에 이어 '기더기'라 불리는 세상, 취재 수첩·펜을 들고 있는 게 창피해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경이지요. 조중동 등 유력 수구신문들이 앞다퉈 거짓·왜곡 기사를 써대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진보정치를 폄훼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4시간여를 걸은 여행자들. 지쳐 교보빌딩 앞 화단 경계석에 걸터앉고 말았네요. 좀 쉬면서 광화문 양쪽거리 해설을 듣습니다. 조선시대 동편(문반), 서편(무반) 기관들이 들어섰던 육조거리. 동쪽으로 의정부(일제 경기도청·경기경찰국. 해방 뒤 내무부 치안국에서 경찰청 및 서울시경별관으로 바뀌었다 헐린 시민열린마당) 터. 이조·호조·기로소 자리에 들어선 역사박물관(국가재건최고회의·중정 사무실에서 경제기획원과 문공부를 거쳐)과 미대사관(미경제원조처 건물에 한국정부 허락 없이 이전해 들어온) 역사를 되새깁니다.

삼군부·중추부·사헌부 자리에 70년 들어선 22층 정부 서울종합청사. 병조·형조·공조 자리에 1978년 들어선 세종문화회관. 이승만 치적으로 50년 건립된 우남회관(61년 시민회관을 거쳐 72년 화재로 철거)과 곁 예총회관(73년 철거)을 합쳐 탄생한 유신정권의 자랑거리였죠. 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둔 채 광화문 한가운데 이순신 동상(68년)을 세우고는 친일독재를 강화했던 유신체재의 기억이 스멀스멀합니다.

일행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둘러앉았습니다. 김재홍 상임공동대표가 유신청산선언문을 낭독합니다. 선언문은 "박정희 유신체제는 반공으로 남북대결 분단구조를 고착시켰고, 재벌경제를 구축해 양극화를 구조화했으며, 언론자유 등 국민 기본권을 억압 박탈했고, 군대·경찰·정보기관을 동원해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해 그 폐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유신헌법 무효, 불법 국회해산 사과, 잘못된 사법판결 오류 개정, 자유언론 실천 해직기자 복직,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종착인 북인사마당. 조선 충훈부 터. 일제강점기 출판사 건물이었는데, 해방정국에는 서울시 인민위원회 등 좌익 단체들이 활용했죠. 뒤이어 반탁학생총연 등 우익단체들이 대거 입주했고요. 67년부터 10년간은 야당이 터를 잡고 박정희 정권에 대항했던 곳입니다.

48주년 유신청산선언 "불법 무효화와 사법오류 수정"

뒤풀이는 종로경찰서 뒤편 한 탁배기 집. 홍어전에 쥔장이 직접 빚은 막걸리(딸기향이 은은한)를 들이키니 길라잡이 하느라 잠긴 목이 좀 풀립니다. 김재홍 대표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중정에 끌려갔을 때 첫 위협을 이리 회고합니다.

"너 죽이고 도망쳐 쐈다고 하면 그만이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유신청산선언’을 낭독하는 여행자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유신청산선언’을 낭독하는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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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전에 탁배기 한잔 기울인 뒤풀이.
 홍어전에 탁배기 한잔 기울인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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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무역, 콘트롤데이타, 청계피복 노동운동의 산증인들. 대학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항해 싸우다 붙들려 중정이나 대공분실에서 고문 취조를 당했던 유신 피해자들. 한 맺힌 이야기를 들으며 뒤풀이를 마쳤습니다.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나로 변신한 건지 모르겠다던 장자. 남산 기억의 터에서 노란 나비로 둔갑해 서울 도심을 훨훨 날아온 여행자. 고단함과 아픈 기억을 마음속 깊이 묻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취해 비틀거리고 어두워 날갯짓이 어눌하지만 평화와 민주, 그리고 온정 가득한 세상으로 발걸음을 뗍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저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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