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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집회를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열려 했던 극우단체들 계획은 실패했다. 경기도와 서울시에서 차량 시위, 1인 시위, 기자회견 등을 열었지만, 여론에 영향을 줄 만한 파워는 일으키지 못했다.

최대 규모 시위가 열린 두 곳 중 하나인 서울시 강동구의 경우. 오후 2시를 약간 넘긴 시각에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 2번 출구 쪽에서 차량 9대가 순차적으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대중교통으로 약 30분 거리인 강동공영차고지로, 그 인근에는 한강변 식당 거리로 유명한 미사리가 있다. 서울 외곽에서 경기도 하남시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위였던 것이다.

서경석 목사가 대표인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이 주최한 이 집회 현장에는 취재진과 경찰을 제외하고 최대 수십 명인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덤덤하게 관찰했다. 서른 전후로 보이는 두 남성은 '아홉 대'란 말을 언급하며 잠시 확인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인 뒤 사라졌다. 차량들의 출발 직전에는 대여섯 명 정도의 시민들이 4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들릴 정도로 박수소리를 크게 내며 응원을 쏟아냈다.

 
강동구 차량 집회의 한 장면.
 강동구 차량 집회의 한 장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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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들이 순차적으로 출발한 직후에는 굽은다리역 사거리의 좌회전 신호 때문에 대열이 흐트러졌다.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는 다른 자동차들이 대열에 끼어들면서 시위 차량들은 두세 대씩으로 갈라지게 됐다. 자동차로 몇 분 정도 가면 아홉 대의 대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여유 있는 도로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곳은 차량 이동이 상대적으로 한적한 곳이다.

강동구에서 가장 번화한 도로는 하남시와 서울 동대문을 잇는 천호대로다. 차량 시위가 열린 곳은 천호대로 근처의 비교적 한적한 도로다. 최근에 아파트 단지가 새로 조성되기는 했지만, 천호대로 쪽에 비하면 아직은 이동이 적은 편이다. 거기다 시위 행렬이 서울 외곽에서 경기도 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 심리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는 힘들었다.

강동구 차량 시위에 참여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제한이 워낙 많아서 사실 시위라고 하기보다는 아주 고행이 되겠습니다"라며 "제가 판단할 때는 제 인생 최고의 계엄령 상태인 것 같습니다"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말에서 나타나듯이, 차량 9대에 의한 시위는 국민들에게 심리적 영향을 주기보다는 참가자들 자신에게 제약을 주는 시위였다.

 
강동구 차량 집회의 한 장면.
 강동구 차량 집회의 한 장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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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에 따르면, 경기도청을 출발해 윤미향-조국-추미애 자택 쪽으로 이동한 차량 시위 역시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에서는 경찰의 철저한 관리로 광장 접근이 차단됐다.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이 있었고, 인근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40명 정도가 모였다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있었지만, 여론 형성에 영향을 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날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에서는 검문이 이뤄졌다. 광화문에서는 지하철과 버스가 정차하지 않았다. 삼엄하다면 삼엄하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보수단체들만 불만을 표시했을 뿐 일반 시민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경찰이 극우 시위를 제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작년 10월 개천절 및 한글날 집회는 물론이고 지난 8월 광화문집회와 비교할 때도, 이번 집회는 효과가 극히 미미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용하고 질서 있는 집회인 반면, 극우단체들의 입장에서 보면 행사를 치렀다는 요식만 갖춘 집회였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집회가 커다란 효과를 내기 힘든 것과 관련해 김문수 전 지사는 "코로나 계엄령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다른 집회를 일절 허용하지 않아서 궁여지책으로 차량 시위를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19 사태와 더불어 당국의 집회·시위 제한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이번 개천절 집회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것이다.

사랑제일교회 변호인단의 강연재 변호사가 대독한 전광훈 목사의 옥중 입장문에도 비슷한 인식이 드러났다. 전 목사는 입장문 서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를 이용하여 우리의 생명인 자유를 박탈했다"라며 "문 대통령은 경제 실정을 코로나에 전가시켰으며, 코로나를 이용하여 자의로 사기 선거를 저질렀으며, 코로나를 이용하여 광화문 집회를 탄압했다"라고 주장했다. 코로나 사태에 편승한 문재인 정권의 '박해'가 자신들의 활동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현 시국을 바라보는 극우세력의 인식을 반영하는 발언이다.

바이러스가 개천절 집회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고 문재인 정권의 집회·시위 제한이 동일한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본질을 따져보면, 바이러스도 문재인 정권도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판단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번 개천절 집회를 '억압'한 제3의 요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강동구 차량 집회의 한 장면.
 강동구 차량 집회의 한 장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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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발생해 2년간 세계적으로 2500~5000만 명을 희생시킨 스페인 독감(발원지는 미국 캔자스주로 추정)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1919년 1월 30일자 기사 '악성 윤감(輪感)의 사망자가 실로 14만 명'에 따르면 식민지 한국에서는 확진자가 760만, 사망자가 14만이었다. 정확한 수치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식민 당국은 그렇게 계산했다.

그 이전 시기인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이 발생하면 명절 차례 같은 모임을 자제했다. 따라서 스페인독감 당시의 한국인들 역시 전염병 때 다중이 모이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1919년 3월부터 2개월간 식민지 한국에서는 최대 2백만 명이 거리로 뛰어나와 '대한독립 만세', '일본 나가라'를 외쳤다.

1919년 3월에는 전염병 기세가 약간 수그러든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사실은 민중의 정치적 의지가 결코 전염병에 의해 꺾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염병보다 더 싫은 것이 있을 때 민중은 거리로 뛰어나오기 쉽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간의 역사서술 방식은 정치와 정치 외적인 것을 따로 떼어놓고 구분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만약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역사서술이 이루어졌다면, 3·1운동 때의 한국인들이 단순히 일제 헌병의 총칼에만 맞서 싸운 게 아니라 바이러스의 위험에까지 맞서서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이 한층 명확히 부각됐을 것이다.

20세기에 발생한 또 다른 대규모 전염병은 1968년 발생해 1, 2년간 계속된 홍콩독감이다. 이때는 세계적으로 약 7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0년 10월 4일 오전 7시 40분 현재, 코로나 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는 104만 1150명이다. 코로나 19의 피해 규모가 홍콩독감의 피해 규모를 능가한 것은 최근이다. 홍콩독감 역시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한국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정도 강조됐다. 1969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 '마스크는 해롭다 세계를 휩쓰는 홍콩감기'는 "지난해 10월 하순 우리나라에 상륙하여 연말연초를 정점으로 아직까지 물러설 줄 모르는 홍콩감기는 감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면서 이렇게 주의사항을 환기시켰다.

"이러한 독감이 유행할 때에는 극장과 같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신체의 피로를 빨리 회복시키는 길 외엔 더 좋은 예방책이 없다는 것이 관계 학자들의 말이다."
 

이처럼 강력했던 홍콩독감 때도 한국인들은 대문을 열고 거리로 뛰어나왔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가 그해 연말까지 이어졌다. 재야세력과 야당뿐 아니라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도 교문을 박차고 나와 인상 깊은 투쟁의 역사를 써나갔다.

이런 사례들은 그 어떤 정권도 바이러스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출 수 없음을 드러낸다. 물론 전염병이 발생하면 집단적 의사표시가 제약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최악의 정권은 어떤 식으로든 민중의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개천절 집회의 경우, 극우단체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코로나 방역에 나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국민들이 판단했다면, 개천절 집회가 이처럼 유야무야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국민들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극우단체들이 좀 더 유리한 조건에서 집회를 했을 것이다.

경찰이 도로를 막고 교통을 통제하고 검문을 실시하며 집회·시위를 제한하는데도, 국민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수긍했을 뿐이다. 법원이 허가해준 집회 방식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차량 9대에 각각 1명씩 타고 창문도 열 수 없고 구호도 외칠 수 없도록 하는 집회·시위를 허용하는 데 그쳤다.

이는 국민들이 광복절 집회와 관련하여 일종의 이익형량을 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극우단체들의 집회·시위를 보장해줌으로써 생기는 이익과 그것을 제한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을 비교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 극우단체들이 쏟아낸 주의·주장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 못했음을 반영한다. 그 같은 국민 여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문재인 정부와 경찰이 자신 있게 극우 집회를 제한하고, 법원 역시 최소한의 집회만 허가했다고도 볼 수 있다.

김문수 전 지사와 전광훈 목사의 발언에서 나타나듯이 극우세력은 코로나 사태에 편승한 문재인 정권의 '박해'가 자신들의 정치 활동을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인식이다.

'국민의힘'이 아닌 '국민의 힘'이, 개천절 집회 규모와 효과를 정해준 결정적 요소였다고 판단해야 올바른 인식이다. 코로나의 힘과 문재인의 힘은 부차적인 요소였다고 봐야 한다. 개천절 하늘이 열리면서 확인된 천명(天命, 국민의 의지)은 '극단적인 세력들은 입을 다물라'는 메시지였다고 해석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태그:#개천절 집회, #극우세력, #광화문 집회, #광복절 집회, #강동구 차량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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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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