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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기 박사와 아내 김정자 여사.
 한상기 박사와 아내 김정자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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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식량난 해결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추장'(농민의 왕)이 된 세계적인 육종학자 한상기(87) 박사의 아내 김정자(91) 여사가 오랜 숙환으로 고생하다 지난 27일 오후 10시 선종(善終), 오늘(29일) 충남 청양군 청남면 동강리 청주한씨 참의공파 선영에 고이 잠들게 됐습니다.

한상기 박사는 세계적인 식물유전 육종학자입니다. 한 박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식인 '카사바'(고구마처럼 생긴 식물)를 병충해에 강한 품종으로 개량에 성공하면서 기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식량난 해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에 대해 세계은행은 '조용한 혁명'이 성공했다면서 그를 혁명의 기수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한 박사가 개량한 카사바 품종은 아프리카 41개국에 보급됐고 고구마 품종 66개와 얌 품종 21개, 식용 바나나 품종은 아프리카 8개국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 교수로 재직하던 한 박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부터 연구원으로 초청받았습니다. 엘리트 학자로서 명성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한 박사는 1971년 큰딸은 한국에 두고 아내와 세 자녀를 데리고 나이지리아로 향했습니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내전과 아사로 200만 명이 희생된 비아프라 전쟁 종료 직후였습니다. 명성과 영광의 길을 두고 가시밭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한 박사는 콩고를 비롯해 카메룬, 르완다, 우간다, 말라위, 가나 출신 등의 제자 50여 명을 석·박사로 배출하고 아프리카 사람 1만여 명을 농업지도자로 교육시켰습니다. 한 박사는 학문적 탐구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과학지에 1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그는 스웨덴 국제과학재단 자문위원,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 국제구근작물학과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영국 기네스 과학공로상, 영국 생물학회 펠로우상, 미국 작물학회 펠로우상, 벨기에 보드윈 왕상, 서울대 개교 50주년 기념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생활 23년을 뒷바라지한 아내가 편안히 선종하였습니다"
 
 1982년 아프리카 추장에 추대된 한상기 박사와 아내 김정자 여사. (붉은 원안)
 1982년 아프리카 추장에 추대된 한상기 박사와 아내 김정자 여사. (붉은 원안)
ⓒ 한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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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치우쳐 아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아내의 아프리카 생활은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깨진 플라스틱 양동이를 기워 사용하고 슬리퍼가 낡고 헤지도록 신었습니다.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등으로 떠날 때마다 아내는 내 봇짐을 수백 번 싸주어야 했고 잘 다녀오라고 수천 번 손을 흔들며 혼자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렇게 저를 위해 희생했는데 병든 아내를 요양원에 두고 돌아설 때 부엉새도 울고 나도 울었습니다."

2년 전, 병든 아내를 요양원에 입원시킨 한 박사는 애통한 심정을 기자에게 이렇게 밝혔습니다. 한 박사는 아내를 10년 넘게 간병했습니다. 그런데 치매와 폐렴 등으로 자택 간병이 위험해지면서 요양원에 입원시켜야 했습니다. 한 박사의 애통함은 아프리카 생명을 살리느라 아내를 소홀히 하면서 아내가 병에 걸린 것 같은 자책감 때문이었습니다.

한 박사는 아내를 연구소 사택에 두고 카메룬, 가나, 토고, 베냉공화국 등 아프리카 대륙을 누볐습니다. 그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습니다. 연구소 동료 3명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기도 했습니다. 한 박사의 아내는 남편이 출장을 갈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무사 귀환을 빌었습니다. 그 세월이 한두 해가 아니라 자그만지 23년이었습니다. 한 박사는 아내의 부고를 이렇게 알렸습니다.

"김정자 필로메나(세례명)가 아프리카에서 23년간 저의 뒷바라지하느라 무진 고생하였고 지난 10여 년간 오랜 숙환으로 고생 많이 하다 2020년 9월 27일 오후 10시에 만 90세로 편안히 선종하였습니다."

본향으로 돌아간 아내 영전에 바친 <작물의 고향>
 
 한상기 박사가 2020년 8월 출간한 <작물의 고향> 표지.
 한상기 박사가 2020년 8월 출간한 <작물의 고향> 표지.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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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삼수갑산 가자 하니 선뜻 따라나서서 23년간 무진 고생하며 나를 뒷바라지해준 고마운 나의 아내 김정자 필로메나에게 이 책을 바친다."

한 박사는 지난 8월 <작물의 고향>(에피스테메)을 출간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국제열대농학연구소에서 작물을 연구해온 한 박사가 반세기 동안 지구를 수십 바퀴 돌면서 연구한 세계 농업의 실태와 문화·종교·정치·과학을 통해 살펴본 작물의 역사를 집대성한 책입니다. 이 책은 아내 영전에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 됐습니다.

한 박사는 1994년 61세로 은퇴하면서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21년 살았습니다. 아프리카 생활 23년을 합치면 44년을 조국 고향 산천을 떠나 살다 지난 2015년 귀국했습니다. 태어난 땅에 묻히기 위해서입니다. 한 박사 부부는 독실한 가톨릭 교인입니다. 한상기 '로렌조'(세례명)가 영광의 자리를 두고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은 굶주려 죽어가는 아프리카 생명들을 구하라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작물에게 고향(故鄕)이 있다면 사람에겐 본향(本鄕)이 있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돌아가야 할 본디의 고향 말입니다. 하느님의 소명을 다한 '필로메나', 가시밭길을 선택한 남편의 아프리카 생활을 뒷바라지 잘하라는 하느님의 임무를 완수한 추장의 아내가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하느님 아버지, 소명을 잘 감당한 필로메나의 영혼을 품어 안아주십시오. 

한 박사는 <작물의 고향>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식량이고
제일 아쉬운 것이 사랑이다."

 
 한상기 박사가 <작물의 고향> 서문에 쓴 글.
 한상기 박사가 <작물의 고향> 서문에 쓴 글.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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